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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Mar 08. 2022

빨래를 해야겠어요

세탁기와 뉴욕, 설국열차

"빨래 돌리고 올게!"

"세탁실 가는데 옷을 왜 이렇게 껴 입어?"

"에에? 왜 껴입냐고?"

새 마스크 포장지를 뜯던 나는 그새 잊은 거냐며 핀잔을 주려고 아내를 빤히 쳐다본다. 내 표정에 담긴 의도를 금방 알아차린 아내는 재빨리 기억을 되살려낸다.

"맞다, 맞다. 우리 건물 세탁실 닫았지. 언제까지였더라?"

"수요일. 수건이랑 속옷 똑 떨어져서 더는 못 버텨. 다녀올게. 빨 거 더 없지?"


맨하탄 아파트들은 대부분 낡았다. 우리집은 뉴욕대학교 교수와 박사 연구원들이 주로 사는 관사인데, 1957년에 지은 아파트다. 환갑이 훌쩍 넘었지만, 맨하탄에서 건물의 연식을 나누는 최상위 기준인 "전쟁 이전이냐 이후냐"에 따르면 우리집은 어엿한 신식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쟁은 세계 2차 대전. 그러니까 1945년 이전에 지은 건물(Pre-war building)이어야 낡은 건물 축에 들고, 이후에 지었으면(Post-war building) 아직 청년이다. 올해로 정확히 65살인데, 노인정에서 입구컷 당하는 청년이다.

1950년대에 아파트를 지을 땐 집집이 세탁기를 놓고 사는 세상이 공상과학 소설 속 세상이었던 모양이다. 건물에 (세탁기용) 배관이 설치되지 않은 탓에 집에는 세탁기를 들여놓을 수 없다. 대신 지하에 공용 세탁실이 있다. 꼭대기 펜트하우스에 사는 학장님 쯤 되시는 지위 높은 교수님이나 우리나 빨래를 할 땐 지하 세탁실에 가서 세탁기 한 번에 $1.6, 건조기 한 번에 $1.6을 내야 빨래를 할 수 있는 건 마찬가지다.

사실 지난 글에서 아내만 뛰고 나는 안 뛴다고 한 건 엄살이었다. 나도 가끔 같이 뛴다. 뛴 덕분에 빨래가 쌓였다. 사진은 지난 주말 뛰다가 찍은 뉴욕의 한 건물 벽화.

공평하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벌써 5년 째지만, 나는 빨래할 때마다 투덜이가 된다. 아내는 대학원 때 공동 세탁실을 쓰는 아파트에 산 적이 있지만, 나는 미국에 온 뒤로 늘 세탁기, 건조기가 있는 집에만 살았다. 집에 세탁기, 건조기가 있으면 돌려놓고 나서 아무 때나 빨래를 꺼내 널거나 개면 되는데, 공용 세탁실에 넣어둔 빨래는 늦지 않게 옮겨주고 제때 가져와야 한다. 자정부터 아침 6시까지는 세탁실 전원을 내려버리기 때문에 밤늦게 돌려놓고 잘 수도 없다. 평소에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해서 진득하니 일을 하는 편이 못 되는 나는 빨래 때문에 하던 일의 흐름이 끊기면 그걸 핑계로 더 열심히 딴짓을 한다. 그래서 가뜩이나 높지 않은 생산성이 더 떨어지다 보니, 빨래는 내가 맡은 집안일 가운데 가장 마지못해, 의무감으로 하는 일에 속한다.

그런데 대대적인 보수 공사라도 하는지 무려 열흘간 우리 건물 세탁실이 폐쇄됐다! 일주일은 어찌어찌 버텼지만, 아직 사흘이 더 남았다. 빨랫감을 낑낑 들쳐업고, 엘리베이터에 붙은 공고문에 따라 옆 동 지하 세탁실로 갔다. 바로 옆 동이지만 왔다 갔다 느려 터진 엘리베이터 탓에 한 번에 5분은 더 걸리는 여정이었다. 이걸 세 번 해야 한 번 빨래가 끝나니 총 15분이 더 걸리는 과제였는데, 어쩌다 보니 오전 내내 빨래에 붙잡혔다. 그나마 빨래를 돌려놓고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시간을 어느 정도 생산적으로 쓰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오늘 처음 본 옆 동 세탁실이 5년간 써온 우리 건물 세탁실보다 훨씬 좋다는 데 있었다! 면적부터 널찍했고, 세탁기, 건조기 대수도 많았으며, 빨래를 옮기는 카트, 지하실에서 직접 갤 수 있는 테이블도 더 많이, 깨끗하게 잘 정돈돼 있었다. 우리 세탁실에서는 느낄 수 없던 쾌적함마저 느껴지자, 마음 한구석에서 질투가 난다. 아무리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걸 고려하더라도 이건 좀 심했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바로 일러바친다.

"와 이 아파트 진짜 설국열차 맞았어. 세탁실도 클라스가 다르더라고!"


아파트 단지에는 총 4개 동이 있는데, 그중에 우리집 1동이 제일 오래됐다. (오늘 이용한 세탁실은 3동.) 아내의 동료 교수들이 대부분 같은 아파트에 모여 살아서 다른 동에도 다 가봤는데, 일단 1동만 엘리베이터가 3대고, 2~4동에는 4대가 다닌다. 늘 한 대는 점검 중 또는 절전을 핑계로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수의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 용량은 2대와 3대, 즉 50%나 차이가 난다.

처음에 뉴욕에 오면서 학교 하우징 오피스에서 집을 보여줄 때 최대한 깐깐하게 굴라는 조언을 수없이 듣고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우리 잘못이기도 하다. 실은 건물 외관만 보고 한국의 '성냥갑 아파트' 같을 거라고 지레짐작한 우리의 부족한 상상력 탓이기도 한데, 사실 이 아파트 단지의 비밀은 그야말로 똑같은 집이 단 한 채도 없다는 점이었다. 모든 집을 일일이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적어도 지금껏 우리가 본 10여 가구를 토대로 내린 진단은 그렇다.

한 번은 아내가 일하는 학교 학과장님이 집에서 학과 교수와 그 가족들을 모두 초대해 기말 파티를 했다. 그런데 이메일에 적어준 집 주소의 호수가 좀 이상했다. 우리집은 9층 S호라서 9S인데, 이 집은 16층에 호수가 QRST인가 그랬다. 뭐지? 메일을 쓰다 오타가 난 건가? 집에 가 보니 궁금증이 풀렸다. 집 4채의 벽을 터서 펜트하우스 한 채를 만든 것이었다. 방이 도대체 몇 개인지, 다 둘러보지도 못했다. 마치 설국열차의 호화로운 앞 칸을 본 것 같아서 그때부터 아내와 나는 아파트의 별명을 설국열차로 지었다.


방과 화장실이 많은 넓은 집, 좋은 집은 가족이 많은 교수에게 우선 배정된다. (파티에 우리를 초대했던 학과장님은 자녀 4명이 모두 뉴욕에 살아 6인 가족일 때 지금의 집을 얻었다.) 그러나 가족 수 외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있다. 예를 들어 다른 학교에서 모셔가려 하면, 즉 몸값이 높아지면 이를 활용해 연봉 협상을 할 수 있는데 이때 더 좋은 집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고, 학교 측도 교수를 잡고 싶을 때 더 좋은 집을 카드로 활용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도 정말 드문, 뉴욕이라 가능한 일이긴 한데, 참으로 매정한 시장 논리다. 마치 학교가 "지금까지 뉴욕 아파트는 잊어라! 더 큰 집, 더 좋은 뷰에서 뉴욕을 느끼며 연구하시라!"고 회유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집이 싫은 건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긴 하다. 사실 우리집은 아내와 나 둘이 살기에는 매우 넓다. 수납공간도 넉넉하고 부엌도 친구네 집에 비해 넓고 좋다. 그러나 남과 비교하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아파트 단지 안에 똑같은 집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는 자꾸 다른 집과 우리집을 비교하고 거기서 묘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집착을 버리기 위해 불경이라도 외며 명상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항공사들이 일반석을 이용하는 승객에게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은 슬쩍 보여주는데, 일등석은 보여주지 않는 이유에 관해 예전에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일반석 좌석으로 가는 길에는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을 지나쳐서 가게 돼 있다. 그 정도 차이는 일반석 승객에게 부러움을 유발하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나도 저 자리에 타야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런데 일등석은 아예 이용하는 출입구 자체가 다르다.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서비스를 보게 되면 일반석 승객이 부럼움을 넘어 좌절과 분노를 느낄 수도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치기 전, 관광 업계 안에서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각광받던 크루즈선 안에도 부자들만 누리는 딴 세상이 있었다. 100년 전 타이타닉호는 어쩌면 객실 구분만 놓고 보면 오늘날 크루즈보다 더 평등한 배였을지도 모른다.

크루즈 여행 상품도 자세히 보면 등급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사진=Unsplash

비행기 일등석을 본 적도 없고, 크루즈는 타본 적도 없다 보니 화가 치밀어 오를 만큼의 절망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적어도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맛보기 수준으로 부를 슬쩍 보여줘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건 괜찮고, 혹시나 체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수준의 완전히 다른 세상은 어떻게든 보여주지 않는 편이 낫다. 설국열차 앞칸의 지배층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실은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뿐 아니라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가 철저히 계급에 따라 나뉘어 있는 거대하고 복잡한 설국열차일지 모른다. 지하 세탁실까지 가는 게 귀찮다고 투덜대던 나지만, 사실 건물 안에 세탁실이 있어서 추울 땐 종종걸음으로, 비 오는 날엔 우산 받쳐 들고 빨래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할 일이다. 아마 맨하탄 아파트나 연립주택 가운데 집안에 나만 쓰는 세탁기가 있는 집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떤 알고리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며칠 전 유튜브에 뉴욕 초호화 아파트 엿보기 동영상이 추천 목록에 떴다. 실제 매물로 나온 집이라는데, 집값이 4천만 달러, 그러니까 500억 원쯤 됐다. 억 소리 나는 집답게 온 집안은 번쩍번쩍했다. 집에서 내려다보는 맨하탄 전경도 황홀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영상을 끝까지 다 보기 힘들었다. 비 오는 날 구름이 자욱한 맨하탄 마천루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갑자기 지난여름 허리케인 아이다가 끌고 온 비구름이 뉴욕, 뉴저지 일대에 뿌린 폭우에 50명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은 일이 떠올라서였다.


빨래가 늘어진 탓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 설국열차까지 소환하고 말았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 바로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부쩍 포근해진 봄날에 부는 바람이 시리도록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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