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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Mar 10. 2022

3월 선거

개표방송 보기 딱 좋은 날씨

지난 주말엔 낮 기온이 20도를 넘을 만큼 포근했는데, 오늘은 다시 함박눈이 내린다. 입춘이 한참 지났고, 그저께인가가 경칩이었는데, 봄인 줄 알고 깨어난 센트럴파크 개구리들이 화들짝 놀라겠다. 아니면 전에 말한 것처럼 미국 날씨엔 절기를 적용하지 말아야 할 수도 있겠다.

일요일이면 서머타임이 시작해 한국과 미국 동부 시간대의 시차가 13시간으로 한 시간 줄어든다. 지금은 14시간 차이인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20대 대선 대표방송이 한창이다. 눈도 내리고 날도 스산하니 밖에 안 나가고 오늘은 집에서 일하며 남은 개표방송을 보면 되겠다. 옛 직장인 SBS 선거방송을 튼다.

봄을 맞아 사놓은 튤립과 창밖의 함박눈이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개표방송 시청 인증샷을 타임스탬프로 남기려 했으나... 사진 설명이 없으면 왜 찍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진이다;

대통령 선거를 12월에 했던 10년 전엔 보스턴에 살 때였다. 일찍 날도 어두워지고, 학기도 끝나 할 일도 별로 없던 동네 유학생들이 보스턴 비공인 살롱이었던 우리집에 모여서 함께 선거 방송을 봤다. 밤새 술 마시며 이야기하다 정작 개표가 시작됐을 때는 전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술에 취해 해산했던 기억이 난다.


지난 2020년 아내의 안식년 때 원래는 프랑스 리옹에 1년 머물 계획이었다. 그때 프랑스어를 좀 잘해보려고 인터넷을 통해 서로 언어 가르쳐주는 교환 프로그램을 신청해 매칭된 소피라는 프랑스인 친구가 있다. 벌써 2년 넘게 매주 일요일 아침에 한 시간씩 한 번은 내가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한 번은 소피가 프랑스어를 가르쳐주는 걸 계속해오고 있다. 통화 말고도 스스로 공부를 해야 언어가 늘 텐데 그걸 못하고 있어서 내 프랑스어 실력은 제자리걸음이지만.

아무튼 소피랑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는 3월에, 프랑스는 4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그래서 한 번은 프랑스어로 한국 대선을 쭉 정리해준 적이 있다. 물론 커피랑 크롸상 시키고, 기차역에서 몇 번 플랫폼에 가야 파리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는지 정도나 간신히 더듬더듬 댈 수 있는 프랑스어 실력으로 후보가 누구고, 지지율이 어떻게 되며 전망이 어떤지 설명하는 건 불가능해서 구글 번역기를 열심히 돌려가며 준비했다. 그래도 한 마디 정도는 구글 번역기 도움 없이 내가 직접 문장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고민 끝에 한 말은 ni... ni... 구문을 활용한 한마디였다. "나는 1번도, 2번도 뽑지 않을 생각이다."


이번 대선을 두고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말이 많다. 실제로 주변의 가족,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지지하는 (또는 너무 싫어하는) 후보가 대충 5:5로 갈리는 것 같았다. 나는 될 사람 안 찍고 내가 좋아하는 후보에게 투표했으므로, 승리의 희열도, 패배의 씁쓸함도 맛볼 일이 없을 듯하다. 

그래도 거창하게 민주주의의 근간에 관해 꼭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바로 합의한 룰에 따라 공정하게 치른 선거라면 패자는 결과를 받아들이고, 승자는 패자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 미국은 그 기본적인 원칙이 무너지면서 전례 없는 내홍을 겪었다. 선거 결과를 최종 추인하는 1월 6일에 일방적으로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총을 들고 의사당에 쳐들어갔던 테러리스트들은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결정적인 오점을 남겼다. 테러에 대한 조사와 재판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치 가운데 하나가 다원주의다. 세상에는 너랑 나랑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 달라서 다행인 것들이 수없이 많다.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몰아세우는 데 환호하는 이들이 가득한 곳에선 민주주의가 번창하기 어렵다. 투표도 시민의 덕무이자 책임을 다한 일이지만, 투표 결과가 내 바람과 다르게 나오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고 다음을 준비하는 자세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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