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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Feb 11. 2022

맨데이트와 자유

마스크, 백신, 그리고 임신중절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가 어제 "(코로나19) 백신 안 맞았으면 실내에서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의무 규정"을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부스터샷까지 맞았고, 한국에 한 달간 다녀와서는 늘 마스크 쓰는 버릇이 다시 몸에 밴 덕분에 실내는 물론 밖에서 걸을 때도 웬만하면 마스크를 쓰는 나라서 당장 영향받을 일은 없었다. 그래도 궁금했다. 뉴요커들도 마스크 쓰기 답답했을 텐데 기다렸다는 듯이 마스크를 벗어던질까? 

점심 먹으러 우리 동네의 자랑 사이공섁에 갔다. 워낙 인기가 많아서 코로나 전에는 문 여는 11시 정각에 가서 이른 점심을 먹거나 2시 반쯤 아주 늦은 점심을 먹을 때만 갈 수 있는 베트남 쌀국수집이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인지 점심시간에도 바 테이블 구석에 혼자 자리 잡고 앉아서 한 그릇 뚝딱 하고 나올 만한 자리가 더러 난다. 

먹고 갈 거면 백신 접종 기록 보여달란다. 정책 바뀐 거 아니냐고 물어보려 했지만, 손님이 계속 밀려든다. 내 백신 접종 기록을 확인하는 둥 마는 둥하는 점원의 시선은 이미 테이블에 앉은 다른 손님에게 가 있다. 백신의 백 자도 꺼낼 틈이 없었다. 

쌀국수 국물은 진국인데, 이 가게는 현금만 받는 게 단점이다. 매출을 덜 신고해서 세금을 덜 내려는 건지, 신용카드 수수료를 아끼려는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직 뉴욕엔 그런 가게들이 꽤 있다. 사이공섁도 코로나 이후 배달 주문이 많아지자 배달 앱에 입점했고 거기서는 카드로 결제가 된다. 그러나 식당에서 먹고 가려면 여전히 'CASH ONLY'다. 현금 없으면 가게 한구석에 설치해둔 현금인출기에서 "쌀국수 안 먹고 말지!" 수준의 뜨악한 수수료를 내고 돈을 뽑아야 한다. 전 세계 금융 중심지라는 월스트리트가 뛰어가면 10분 거리지만, 소비자가 겪는 금융 서비스 경험은 미국 어디서든 골고루 형편없다. 어쩌면 이런 온갖 수수료, 터무니없는 이자와 벌금들이 쌓여 번쩍번쩍한 미국 금융 시장의 주춧돌을 놓았는지도 모른다.


사이공섁에선 늘 세 가지 다른 소고기 부위를 얹은 쌀국수를 먹는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을 하려다 문득 지갑 속에 현금이 얼마 있는지 확인 먼저 하자는 생각이 든다. 18달러가 있다. 응? 얼마 전에 80달러 뽑아둔 거 다 어디 갔지? 아, 유니온스퀘어 시장에서 장 한 번 봤고, 현금만 받는 이탈리아 식료품점에서 파스타 면이랑 판체타  삼겹살인지 베이컨인지 부위를 작은 조각으로 썰어놓은 이탈리아식 햄인데, 김치볶음밥 할 때 넣어 먹으면 맛있다  살 때도 돈을 썼다. 그래도 18달러로 늘 먹던 걸 먹을 수 있겠다. 가격이 12.95달러니까 세금 붙으면 14달러 조금 더 나올 거고, 거기에 팁까지 내면 17달러면 충분하다.

오늘 발표된 물가 지수. 40년 만에 가장 가파르게 물가가 오르고 있다. 쌀국수 가격도 예외는 아니었다.

잠깐! 40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는 인플레이션이 쌀국수집만 피해 갔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잖아? 쌀국수 값도 올랐을 거야, 메뉴를 확인해보자.... 확인하길 잘했다. 늘 먹던 쌀국수 가격은 15.5달러로 올랐다. 그런 줄 모르고 주문했다면 꽤 난처할 뻔했다. 세금까지 하면 18달러 가까이 나올 텐데, 팁을 안 내는 건 수입의 대부분을 손님들의 팁에 의존하는 식당 노동자들에게 대놓고 시비를 거는 거나 다름없다. 

미국에는 아직도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 직종이 있다. 대표적인 직종이 식당이나 카페에서 손님을 서빙하는 노동자들이다. 미국 연방법이 정한 최저임금이 시급 7.25달러,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 주요 도시의 최저임금은 시급 15달러지만, 식당 서버들의 최저임금은 여전히 2.13달러다. 이들은 손님들이 내는 팁에 생계를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국사람 눈에는 고용주가 제대로 된 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게 정해둔 제도가 이상해 보이지만, 어쨌든 그게 여기 방식이니 따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에선 식당에 가면 메뉴에 써 있는 가격보다 35% 정도를 더 내게 된다. 한국에서, 아니면 유럽을 여행할 때 식당에서 메뉴에 적힌 값만 치르고 나올 때면 뭔가 돈이 거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뉴욕 사는 덕분에 느끼는 일종의 상대적 충만감이랄까? 물론 가만 생각해보면 평소에 괜히 돈을 더 내고 산 것 같은 상대적 박탈감과 현타가 함께 오지만.

어쨌든 그래서 세 가지 소고기가 든 푸짐한 쌀국수 말고 기본 쌀국수를 시켰다. 부드러운 양지, 씹는 맛이 있는 고소한 미트볼이 빠지고 가장 퍽퍽한 부위만 얹은 쌀국수가 나왔다. 조금 아쉬웠지만, 국물 맛은 변함없이 훌륭했고, 수중의 돈으로 소울푸드 한 그릇 먹었으니 그거면 됐다.


오늘도 글은 산으로 간다. 나는 산보다 바다를 더 좋아하는데, 왜 내 글은 항상 정신 차려보면 첩첩산중인 걸까? 백신 접종,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 최저임금 이야기를...


밥을 먹고 나와서 웨스트빌리지에 새로 발견한 카페로 갔다. 이번 주까지 마무리해야 할 보고서를 열심히 쓰는 중인데, 작업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커피도 맛있고, 자리도 넉넉하고 식물도 많아서 실내가 초록초록하다. 앞으로 자주 와야겠다. 종로 서촌은 이미 너무 힙한 동네가 돼서 어딜 가나 붐볐는데, 맨하탄 웨스트빌리지는 확실히 주변 다른 동네보다 덜 붐벼서 좋다.

사진은 어제 말고 오늘 동촌(East Village)에서 새로 발견한 또 다른 카페.

"Is that for here or to stay?"

여기서 마시고 갈 거라고 하니까 백신 접종 기록 보여달라고 한다. 아니, 여기도 아직 소식을 못 들은 걸까? 쌀국수집과 달리 한가하니 물어보려는데, 내 뒤에 서 있던 아저씨가 불쑥 끼어든다.

"오늘 주지사가 규정 해제한 거 아녔어요? 백신 접종 기록 안 보여줘도 된다고, 마스크 쓰는 것도 의무 아니라고, 뉴스 보니까 그렇던데..."

바리스타는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어디까지 따질 것 같은 손님인지 흘끗 가늠해보는 눈치다. 

"어... 사장님한테 들은 바 없는데요."

뒤에 있던 아저씨의 얼굴에는 어딘가 실망한 내색이 비친다. 아저씨는 잘 들리지 않는 말을 중얼중얼 내뱉더니, 홱 돌아서 가게를 나갔다. 

'헐 뭐야, 설마 코로나19 백신을 안 맞은 사람이었나?'

백신 접종률이 미국에서 제일 높은 동네에서, 대부분 백신을 열심히 맞은 연령대(65세 이상)에 속하는 듯한 분이었는데, 아직 우리 동네에도 백신 안 맞은 사람이 있었다니. 역시 통계는 통계일 뿐 현실에서 마주치는 경험은 제각각일 수 있구나... 


아니다. 사실 그 잠깐의 일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다. 대충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유추의 조각들 뿐이지. 그 아저씨가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는 알 수 없다. 안 맞았다면 왜 안 맞았는지도 알 수 없고, 맞았더라도 백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길은 전혀 없다. 

확실한 건 내가 눈앞에서 겪고 본 것뿐이다. 호컬 주지사가 백신/마스크 의무 규정을 해제한다고 발표했지만, 일선 가게에선 여전히 백신 접종 기록을 확인하고 있더라는 것. 오늘 다른 기사를 찾아보니, 주지사의 발표와 별도로 에릭 아담스 뉴욕시장은 뉴욕시에서는 당분간 계속 백신 접종 기록을 확인하고, 실내에서도 계속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주 뉴욕시(New York, NY)니까 주지사가 시장보다 더 높기는 하지만, 방역 대책에서는 가장 좁은 지역을 맡은 지역 정부의 방침이 우선한다. 물론 주, 시, 카운티 정부는 긴밀히 협력하며 메시지를 조율한다. 

사실 호컬 주지사의 발표도 예외 조항이 언제나처럼 너무 많아서 어딘가 명확하지가 않았다. 또 어차피 지키는 사람만 지키지 안 지키는 사람은 마스크 안 쓰고 다닐 게 뻔하기도 하고, 이쯤 되면 사실 나도 정확한 기준이 뭔지, 누구 말을 따라야 할지 잘 모르겠다. 대신 이제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녀도 코로나19 중증 환자나 사망자가 다시 급증할 가능성은 작아진 것 같다. 그러니까 백신 접종 기록이 있어야 안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점원의 말에 가게를 나간 아저씨를 섣불리 백신 회의론자로 단정 짓고 비난하지 말자. 확실한 증거도 없이 덮어놓고 재단하고 비난하고 분노하는 자세가 만연하다 보니 지금 세상이 이 지경이 되지 않았나. 나까지 그러지 말자.


사실 그 아저씨를 섣불리 재단할 뻔했던 건 내가 어느덧 뉴욕에 익숙해져서 그런지도 모른다. 뉴욕에서 미국 뉴스를 보면 정말 뉴욕이 미국 같지 않을 때가 있다. 서울에 있다가 뉴욕에 오면 언어만 다르지 생활은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다. 반면 타라 웨스트오버가 나고 자란 아이다호주 산골짜기까지 갈 것도 없이 같은 뉴욕주의 작은 도시만 가도 분위기부터 사람들의 생각까지 많은 것이 사뭇 다르다. 그러니까 서울시와 뉴욕시가 대체로 더 비슷해 보이고, 맨하탄과 미국의 평균적인 소도시, 교외 지역 사이의 차이는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 카페에서 본 아저씨의 행동에 흠칫 놀란 것도 맨하탄에선 백신 안 맞은 사람들을 거의 못 봤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5세 이상이면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수 있는데 뉴욕시의 백신 접종률은 매우 높다.

가장 짙은 파랑으로 칠해진 곳이 맨하탄과 퀸즈다. 데이터: 뉴욕시 웹사이트

미국 전체로 놓고 보면 여전히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fully vaccinated)이 64%밖에 안 된다. (백신 접종 대상 아닌 5세 이하 어린이를 제외하고 계산하면 68%.) 대한민국 인구보다 많은 6천만 명 이상이 여전히 코로나19 백신을 한 번도 맞지 않았다. 백신이 거의 1년째 남아도는 미국이다. 아직도 안 맞은 사람들은 절대로 안 맞겠다고 버틸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차라리 코로나에 걸려 잘못되는 쪽을 택하지, 절대로 "정부의 압제"에 굴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백신을 못 믿는 사람들이 백신 접종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그들은 완강한 백신 반대 시위를 이웃나라 캐나다 수도까지 전파시켰고, 벌써 보름째 오타와 도심에 진을 치고 있다. 내가 놀라운 건 백신 회의론자들이 아니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 중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태도에 나는 깜짝 놀라곤 하는데, 그건 바로 (특히) 정부가 개인에게 의무를 지우는 데 대한 거부감이다. 사실 카페에서 내 뒤에 서있던 아저씨의 말투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Wasn't the mandate canceled?"

앞에는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두 단어는 분명했다. 명령이나 지시를 뜻하는 'mandate'가 드디어 '취소(cancel)'되지 않았냐는 물음이었다. 그래서 이제 자유를 되찾은 줄 알고 나왔는데, 아직 압제가 사라지지 않았단 말인가! 하는 말투였다. 물론 'mandate'를 압제로 옮기는 건 지나치지만, 적어도 내겐 그렇게 들릴 때가 더러 있다.

100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전염병에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백신을 의무적으로 접종하게 한 정부의 방침을 압제, 폭력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공무원 중에도 적지 않은 듯하다. 아담스 시장이 뉴욕시 공무원 가운데 코로나 백신을 맞지 않는 사람들을 해고하겠다며, 백신 접종 기한으로 제시했던 게 2월 11일이었다. 아직 백신을 맞지 않은 뉴욕시 공무원 수천 명은 2월 말일 자로 일자리를 잃을 예정이다. 그런데 이 사태를 바라보는 뉴욕 시민들 중에도 백신을 맞는 건 개인이 선택할 문제지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


모두가 같은 생각일 리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코로나 백신을 맞는 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미국은 백신을 맞는 사람들이 드는 이유가 결이 조금 다르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우리나라 질병관리청에 해당)나 미국 알레르기 전염병 연구소의 안토니 파우치 소장은 TV에 나와서 "나를 지키고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백신을 맞자"고 호소한다. 우리나라의 공동체 개념 미국의 가족 개념은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같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 개념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미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의 의미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지금 내가 딱 그랬다. 백신을 안 맞고 버티는 사람들이 꽤 많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트럼프도 지금은 백신을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임기 때는 백신 회의론에 교묘하게 발을 담갔다 뺐다 했다. 나는 백신 회의론자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뉴욕 사는 미국 친구들 중에는 그 사람들을 물론 한심하다고 여기면서도 "그럴 수도 있다"는 친구도 꽤 있었다.

"뭐, 그건 그 사람들 자유긴 하니까."

"뭐라고? 자유우우? 내가 백신 안 맞아서 다른 사람들이 아플 수도 있는데? 음주운전이랑 비슷한 거 아냐? 술 먹고 레이싱하고 싶다고 핸들 잡으면 안 되는 거잖아!"

나는 이렇게 항변하곤 했지만, 토론이 속 시원한 결론에 이른 적은 없다. 백신 안 맞는 사람들을 한 목소리로 규탄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며 어깨를 으쓱하고 마는 친구들 앞에서 나도 '역시 미국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며 넘어가곤 했다.


답이 없는 문제를 두고 돌고 도는 이야기를 더 해봤자 미궁에 빠질 테니, '맨데이트' 또는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개인의 책무에 대한 태도 차이라는 주제는 앞으로 두고두고 꺼내어 보기로 하자. 대신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하나 더 지적하고 싶은 모순이 있다. 

"검증되지 않은 백신을 시민의 몸에 주입하려는 건 뉘른베르크 강령 위반"이라는 터무니없는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분명 자신의 몸에 관한 결정권을 끔찍이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일 거다. 그런 사람들이 왜 여성이 자기 몸에 관해 내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결정이라 할 수 있는 임신을 중단할 권리(낙태권)는 인정하지 못해서 부들부들 떠는 걸까? 이 문제는 이미 토론이 가능한 영역을 넘어서긴 했지만, 올해 안에 6:3의 보수 절대 우위가 된 대법원이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때 다시 이야기를 하겠다. 글의 소재를 미리 적어두는 차원에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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