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변하지 않고 느리고 반복되기만 한다고 느껴진다.
우리는 우리 삶의 변화 속도에 만족할까?
우리가 삶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짜릿함, 설렘, 흥분, 기대와 같은 것들을 느낄 때는 삶이 드라마처럼 느껴질 때이다. 이럴 때 시간은 오히려 천천히 흐르는 것 같지만 가장 큰 폭으로 변화하는 때다. 이 때는 마치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나비로 탈바꿈하여 몇 번의 날갯짓을 하면 곧 아름다운 꽃송이 위로 날아 올라 달콤한 꿀 속에서 영원을 맛볼 것 같은 때다. 또 어쩌면 마치 세상이 나를 중심에 놓고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이 느껴질 때다. 춤을 추고 있는 우주의 한 가운데 내 모든 몸짓과 손짓이 우주가 추는 춤과 함께 리듬에 맞추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때다. 삶은 무한으로 열려있고 나는 어떤 제한도 없이 자유로움으로 날아오를 것 같다. 이런 때는 그 자체가 축복 가득한 인생의 선물이지만 그러나 이런 때는 보통 우리가 무지하고 철없을 때 우연히 온다. 그리고 그다지 자주 오지도 않고 그다지 길지도 않다.
하지만 우리가 실연의 아픔을 당하거나 사업에 실패하거나 경쟁에 뒤쳐지거나 혹은 우울해질 때면 시간은 마치 나만 내려놓고 달려가는 기차처럼 느껴진다. 시간은 기차처럼 달려가고 그 시간 속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삶의 목표와 성공 그리고 행복을 향해 달려 나가는데 나만 오직 그 시간밖에 낙오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때 정말 문제는 실연이나 실패 등 기타 큰 어려움들이 이미 지나갔거나 현재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또 나름대로 꾸준히 노력을 해 왔는데도 삶이 느리고 지루하기만하고 변하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나비의 탈바꿈이나 우주와 함께 추는 춤과 같은 삶은 고사하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애쓰고 있음에도 우리 삶은 변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우리는 이때 제대로 철이 든다. 아주 조금 삶을 이해하게 되고 복잡 다단한 삶의 실마리를 한가닥이라도 찾아내려 노력하면서 비로소 삶으로부터 깊은 가르침을 받게 된다.
수용과 저항
우리의 삶이 변하지 않을 때는 마음속 저항을 살펴봐야 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수용과 저항에 대해 배운다. 우리 마음속 저항은 뿌리가 깊다. 우리가 어린아이였을 때는 종종하기 싫은 일이 있을 때는 이 저항 뒤로 숨곤 했다. 울음을 터트리거나 주저앉아 발버둥을 치는 이 저항의 행동은 곧잘 아주 작은 이익이나 성취를 주기도 해왔다.
또 우리는 본능 속에 있는 좋고 싫은 느낌에 따라 자기에게 좋다고 여겨지는 것은 수용하고 싫다고 여겨지는 것은 저항함으로써 자신의 몫이나 처지를 개선하기도 했다. 수용과 저항은 인간의 삶의 축을 만드는 것이고 내용물과 껍질을 만드는 것이다. 수용은 우리 그릇의 크기를 키워주고 저항은 그릇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저항은 때때로 우리의 소중한 사람이나 재산 그리고 생명과 삶을 지켜 주기도 한다. 그러나 저항이나 수용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그 자체로 우리는 상처를 받거나 위험에 처해지게 된다. 우리는 평생을 수용과 저항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비틀비틀 그 범위 안에서 균형잡으며 살아가야 한다.
어떤 것을 수용하고 어떤 것을 저항하여 밀어낼 것인가 하는 기본 바탕은 마음속의 좋고 싫은 느낌이다. 그러나 점차 좋고 싫은 느낌에 더하여 개인적인 실익과 공익을 위한 분석과 판단 작용을 더하여 조금씩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이 수용과 저항의 양태는 같은 나이 같은 환경이라 하더라도 상당히 다른 성격적 특질을 만든다. 경험과 배움을 토대로 어떤 것을 수용하고 어떤 것을 저항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점점 더 복잡한 일이 되어 가는데 문제는 기꺼이 이런 지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려는데서 생겨난다.
그저 어린 시절 주어졌던 좋고 싫음 그리고 자신의 이익과 편의에 따라 형성된 습관과 취향에 따라 무심코 무의식적으로 계속해서 저항 모드를 선택할 때 우리의 삶은 변하지 않게 된다. 또한 같은 일을 해도 일의 속도, 성공의 크기, 힘과 에너지적 측면에서 차이가 나게 된다. 계속해서 같은 계절이 돌아오듯 같은 일들이 반복되지만 우리는 조금도 나아지거나 새로운 선택을 하지 못한다. 마음속 좋음과 싫음을 내려놓고 면밀하게 깨어있는 마음으로 주시해야만 우리는 새로운 선택이 비로소 가능해질 때가 많다.
똑같은 시간을 똑같은 선생님에게서 배우고 열심히 노력도 하지만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그런 친구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많은 경우 공부와 자기 자신에 대해 회의와 저항이 많다. 즐겁게 하는 공부는 성적이 잘 오른다. 그러나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는 과목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저항이 많다. 어떤 엄마들은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것에 대해 어려워한다. 마음속에는 조건적 저항이 가득하다. '내가 이 아이만 할 때 받지 못했던 사랑을 준다면 그때 나도 이 아이에게 사랑을 줄 거야!'
또 우리는 어떤 장소, 어떤 일, 어떤 경험 그리고 어떤 스타일의 사람에도 이유 없는 저항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경우는 우리와 거의 인연이 닿지 않게 된다. 저항하는 것은 그것을 우리에게서 밀어내기 때문이다.
시간을 붙드는 그물-저항
그러나 정말 우리를 변화하지 못하게 붙잡아 매 두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저항이다. 우리 마음속을 한번 들여다보자. 무엇에 대한 저항을 가지고 있는지, 대부분 그 저항들은 그저 무의식적인 것들일 것이다. 무엇이든 이 마음속 저항에 한번 붙들리면 그것들은 속절없이 우리의 시간들을 잡아먹는 괴물이 된다. 시간은 저항에 걸려서 한없이 한없이 붙들려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저항, 외모나 학벌 성격 성장과정 마음속 상처 그리고 나아가 엄마 아빠 혹은 가족에 대한 배경에 대한 저항으로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시간을 낭비한다. 또 어떤 특정 이념이나 가치관 삶의 방식에 대한 저항이나 편견들은 우리 마음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 중 하나이다.
저항에는 편견이나 타인을 부러워하기 또 계산하기 등이 포함되는데 저항을 가장 단단하게 깨트리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혐오다. 만약 오랫동안 어떤 것을 혐오한다면 그 부분에 관한 한 우리는 미경험자로 그리고 미성 장한 채로 남아있게 된다. 예를 들어 동성애나 특정 종교 특정 피부색이나 특정 인종 또 특정한 사람을 혐오한다면 우리는 자연적이고 다양한 문화와 삶의 어떤 부분에서 아주 미성숙한 채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미성숙은 그대로 두어 좋은 게 아니다. 미성숙한 것은 그대로 굳어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고통을 일으키고 질병을 일으키고 문제를 일으킨다.
품어낼 때 변화되는 생명의 온기
삶이 변하지 않을 때는 마음속에 어떤 저항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두 갈래 길이 있을 때 우리가 한쪽 길로 가야만 한다면 심지어 우리가 가지 못하는 다른 쪽 길을 혐오하거나 싫어하기까지 한다. 혐오나 저항은 우리 무의식에 뿌리가 깊다. 이유 없이, 그냥, 자동적으로 미워하고 저항하고 싫어하고 혐오하는 것들을 마음속에서 내려놓을 때 우리는 그때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우리를 잡고 있는 매트릭스는 결국 그런 저항들로 가득한 내 마음이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자유로워진다는 것 또한 내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는 새가 알을 품듯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품어내야 한다. 삶이란 품어낼 때 변화하게 된다. 품어내야 온기가 생기고 온기가 생겨야 생명이 생기고 자라게 되기 때문이다. 자연은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충족하지만 이 생명의 온도만큼은 우리에게 스스로 품어서 만들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