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꽃잎을 남기고 떠나고
강물은 맑음을 남기고 떠난다.
바람은 생명의 숨결을 남기고 떠나고
아궁이 속에서 타 오르던 불길은 온기를 두고 떠난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떠나나?
시장에서 하루 먹을 야채와 채소를 산 우리는 그곳에 무엇을 남기고 떠나나?
친구와 격렬한 논쟁을 한 뒤에 우리는 친구의 가슴에 무엇을 남겨놓고 떠나나?
사랑했던 사람들을 뒤에 남겨두고 떠날 때 우리는 그에게 무엇을 남겨두고 떠나나?
풍요로운 식탁에서 먹고, 아름다운 옷차림을 하고, 요정같이 고운 얼굴을 하고,
좋은 차를 타고, 품격 있게 움직이는 우리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떠나나?
우리는 언제나 무엇을 가지고 떠날 수 있었는지에 골몰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언젠가 우리가 떠났던 곳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언젠가 우리가 남겨두고 떠났던 것들이다.
우리가 영원의 시간 속에서, 다시 돌아왔을때
우리가 남겨두고 떠났던 것들이
제발! 폐허가 아니기를! 죽음이 아니기를!
전쟁과 굶주림, 상처와 고통이 아니기를!
봄마다 나무는 꽃을 피우고 꽃은 꽃잎을 두고 떠난다.
여름의 저녁 하늘은 붉은 노을을 두고 떠나고,
붓다는 걸음마다 연꽃을 두고 떠난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