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기치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스 Apr 22. 2016

목표를 따르는 길, 두려움을 따르는 길

삶을 살아가는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목표를 따르는 길이 주는 허망함과 우울


삶을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마음의 길을 따를 수 있다. 하나는 크고 작은 목표를 설정하여  목표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들을 마주하고 넘어서며 살아가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우리는 어려서부터 크고 작은 목표를 정해서 그 목표를 하나씩 이루며 그것을 징검다리 삼아서 더 큰 목표를  향하며 살아가도록 이끌어져 왔다. 크든 작든 목표를 이루는 것은 우리에게 성취감을 주고, 자아를 확장시켜 주고,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끊임없이 목표에서 목표로 내몰려 왔다. 


사회에서 신문지상에 이름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기업가들, 거부들, 정치가들, 혹은 천재들은 자신을 완전히 목표에 맞게 통제하여 결국 그들의 가장 커다란 삶의 목표를 이루어 낸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으로 인해 우리는 더더욱 목표를 향해 내 달리도록 강요받게 된다.   


그러나  오히려 성취되지 못한 목표는 우리에게 좌절과 우울 그리고 절망감을 남긴다. 좌절과 우울을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우리는 목표를 세우는데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목표가 크면 클수록, 목표를 이루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자신은 더욱 작아지게 느껴지고 마음의 우울은 깊어간다. 심한 경우는 심각한 무기력이나 자기효능감의 부재로 고통받게 된다. 그렇치않다 하더라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 허둥지둥 대고, 갖은 약은 수를 쓰고, 사람을 속이고 그러다 결국 나가떨어지기도 부지기수다.


우리가 어찌어찌하여 작은 목표를 이루고 나면 기쁠 것 같지만 그 또한 결코 그렇지 않다. 작은 목표를 이루고 나면 오히려 허망함이 찾아오는 경험을  누구나 몇 번씩 경험했을 것이다. 작은 목표를 이루고 나면 시야가 넓어져서 더 많은 경쟁자들이 보이고 더 큰 목표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코 우리는 한개의 목표나 혹은 한번의 작은 성취에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된다. 


또한 나름대로 큰 목표를 이루어서 자손 10대가 황제처럼 놀고먹을 수 있는 어떤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사실 궁극적인 삶의 목표에 다다랐는가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목표를 쫒는 한 궁극적인 목표에 이르는것은 있을수 없다. 외적으로 쫒는 목표란 끊임없이 내적으로 허망함을 만들어내면서 결국 길을 잃게 만든다. 그래서 목표를 쫒는 대다수의 그들은 행복하지 않다. 그들은 그 성공을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경쟁에  내몰리며 사회적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또한  그들 내면에 차오른 허망함과 우울을 타인의 우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대신 채우려 한다. 그것이 용이치 않을 경우 그들은 각종 크고 작은 폭력으로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려 하다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크고 작은 목표를 설정하여 이 목표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중에 정석과 같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또하나 목표를 따르는 길에는 '가슴뛰는 것을 하라 '는 조언이 있다. 요즘 청소년들은 아무리 해도 가슴뛰는 것을  찾지 못하겠다고 하고 다급해진 어떤 웅변가는 돈을 먼저 버는 길을 따르라고 조언하는 것을 보았다. 아직까지 자기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자기 가슴을 뛰게 하지 않는 일, 즉 자기 두려움이 있는 길을 따르면 된다. 가슴이 뛰는 길은 어쩌면 어느정도 정보가 있고 예측이 가능해야 느낄수 있겠지만 가슴이 뛰지 않는 길, 두려움이 있는 길은 전혀 어떤 정보도 예측도 없을수 있다. 아니 잘못된 정보나 편견같은 것들이 길을 더욱 꽉 막고 있을수 있다. 그러나 이 길에는 그래서 감춰진 삶의 신비와 지혜가 있는 것이다.   


두려움을 따르는 길이 주는 용기와 지혜


만약 누군가 크고 작은 목표를 세웠다가 좌절과 우울만 맛보고 더는 어떤 목표를 따라 살 의욕을 잃고 있다면 그는 사회에서 부요나 어떤 자기 위치를 얻거나 자기 효능감을 실현 할수 없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괴로울것이다. 

또한 목표를 이루는 길로 나아가 어느 정도 빛나는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 하더라도 성취했을 때  결코 허망하지 않고 보석처럼 빛나는 진정한  삶의 목표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 모두에게 두려움을 따르는 길에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두려움을 따르는 길이란 크고 작게 자신이 두려워하는 찾아 극복하고 넘어서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 속에서 내가 무엇이 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하는 성취와 곧바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군자의 길이다. 어찌 보면 둘러가는 길이고 대기만성의 길이지만 제대로 가면 반드시 천하를 품안에 품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는 길이다.     

 

자신이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보다 명확하다. 자신이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다면 우리는 보통 가능한 그것을 피하려 하고 감추려 한다. 


그러나 두려움을 직면하고 넘어서가는 것이 삶의 비밀이다. 아무리 불리한 상황에 있더라도 삶을 통과하고 전환시키는 방법은 대개가 두려움을  넘어서 가는데 있다.  어릴 때부터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에 삶의 비밀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 가르쳐 준다면 그는 분명 천하를 품을 수 있는 인재가 될 것이다.  두려움을 따르는 길을 가는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리더가 나오고, 가장 지혜로운 큰 스승이 나올 것이다. 


 우리가 뭔가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두려운 그것들을 나보다 더 크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들보다  나를 작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여기면 나는 평생 작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온갖 것에 놀라고 온갖 두려움에 갇혀 살아가는 것이다. 반대로 내게 두려움을 주는 그것들을 작게 여기고 나를 크게 여기면서 살아가면 결과적으로 나는 점점 크게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키워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용기, 이런 것은 요즘 교과서나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것들이다. 하지만 인류 문화에는 용기로 두려움을 넘어서는 때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던 때가 있었다. 


어떻게 두려움을 넘어갈 것인가? 

 

두려움의 길을 따르기로 했다면 우리는 자신을 가두고 있는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어떻게 넘어갈 것인지를 탐구하고 시도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의 두려움을 넘어서기까지 수십 번의 시도가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실패하고 넘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시도하고 실패하는 과정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분명히 두려움을 직면하고 넘어서는데  필요한 자질들을 일깨워주고 단련시켜 줄 것이다. 용기를 키워주고, 근성을 키워주고, 끈기를 키워주고, 그리고 탐구심과 지혜를 키워줄 것이다. 그것은 점점 실패에 대하여 우리에게 빛나는 갑옷을 입혀 줄 것이며, 성장하고 성취하는 방법에 대해 마스터가 되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두려움을 넘어서게 되었을 때는 그 두려움에 대해 온전히 지배자가 될 것이다. 두려움은 우리를 가장 강하게 단련시킨 스승이자 조력자로서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자신의 마지막 빛깔과 향기까지 주고 사라지는 나뭇잎처럼 그렇게 우리 삶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자기 미신 벗어나기 


두려움은 맨 처음 직면하기로부터 시작한다. 그 어떤 두려운 것이 있어도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힘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때 이미 많은 두려움들은 스스로 변장했던 옷을 벗는 경우도 많다.  


페르시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산속에서 큰 동굴을 발견했다. 그 동굴 속으로 들어가 보니 커다란 용이 있었는데 그 용이 아주 빛나는 커다란 진주를 품고 있었다. 그는 그 진주가 탐이 났지만 용이 두려워서 집으로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집에 돌아와서 일하는 내내 그 진주를 잊을 수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그는 다시 동굴로 갔다. 여전히 그 진주는 용이 품고 있었다. 하지만 용은 맨 처음 보았던 것보다 많이 작아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용이 두려워 집으로 돌아왔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그는 다시 동굴로 가보았다. 여전히 용이 진주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용은 이전보다 더 작아져 있었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몇 번 한 후에 마침내 용은 너무도 작아져서 남자는 쉽게 용의 품에서 쉽게 진주를 빼내 가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많은 경우 두려움은 우리의 오해나 무지 그리고 자기 생각이라는 환상으로 덕지덕지 옷을 입고 있다. 이 환상은 자기 미신이다. 누구나 평생 자기 미신에 빠져 산다. 그래서 우리는 존재의 실상을 결코 보지 못한다. 페르시아인이 동굴 속에서 보았던 용이 이 자기 미신이다. 그는 이 두려움의 실체를 자기보다 크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바라보자 점점 이 사람 속에서는 용기가 생겨나고 그리고 자기 미신을 떨구어내는 힘이 생겼다. 그러자 용은 아주 작아져 있었고 어렵지 않게 진주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이렇게 자기 미신이 떨구어 지면서 우리의 용기는 점점 커지고 실재를 보는 안목은 점점 날카로워질것이다. 예리한 판단력이 생기고 어떤 일을 하든방법에 대한 확신이 생길것이다. 그 어떤 목표를 쫒던  사람보다 더 목표를 성취하는 강력한 힘을 내재하게 될것이다.  

만약 그렇게 목표를 쫒지 않는다면 우리는 경전 숫타니파타에서 말하는 자유로움을 얻게 될것이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따돌림, 네 잘못이 아니야" 출간과 따돌림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다음 카카오에서 스토리 펀딩이 진행 중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319 


매거진의 이전글 자기 자신을 알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