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에 한 페친이 올려주신 NTD의 아주 짧은 이야기를 전하는 동영상을 하나 봤습니다.
전화 교환원이 전화를 연결해주는 유선 전화기가 처음 나왔을 때 이야기입니다.
9살인 꼬마는 전화기를 들면 "안내원입니다." 하는 목소리에 매료되었습니다.
꼬마는 망치로 손가락을 쳤을 때 집에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전화기를 들고 안내원에게 말했습니다.
"손가락이 아파요."
피가 나는지 다쳤는지 묻던 교환원은 노래를 부르면 아프지 않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눈물을 떨구며 노래를 불렀고 신기하게도 손가락이 아프지 않았습니다.
키우던 카나리아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교환원에게 왜 노래를 하던 새가 움직이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교환원은 새는 다른 세상에서 노래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여기서 중략하겠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환원의 대화에 대단한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가 왜 이 대화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소년의 대화를 받아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자기가 직업적으로 해야 할 영역을 떠나 소년의 일상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아름다움을 느낀 것은 그녀가 평소 나라고 생각할 그녀의 몸이나 그녀의 생각 혹은 신념이나 가치관이 아니라 그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역"이었습니다.
나는 그녀를 그녀의 "관심의 영역"속에서 만나고 알고 느끼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여기 있고, 그 내가 너에게, 자연에게, 사물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것입니다. 여기 나라는 것은 따로 없습니다. 오직 내가 뭔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나 자신일 뿐입니다.
왜? 여기 내 몸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내가 아닐까요? 위의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그녀의 영혼은 그녀의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관심을 가지고 대하는 그 영역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기 이 몸과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을 나라고 여기고 산다면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인공지능 로봇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인공지능 로봇도 자기 몸이 있고, 자기 생각이 있고, 지성 즉 정보를 가지고 움직입니다. 로봇도 우리처럼 감각을 지각하는 센서가 있고, 좋고 싫어하는 감정적 프로그램을 가질 것입니다. 우리 인간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로봇은 점점 진화해서 피부나 외모 또한 인간과 같아지고 전선이나 기계는 생물학적인 것들로 대체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를 떠나 자유로이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이 몸이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가질 것인가를 떠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고 보는 다른 사람들 혹은 다른 사물들을 아름답게 할 수 있고, 따뜻함을 느끼게 할 수 있고 , 행복과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만이 우리를 로봇과 다르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것만이 우리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