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내 야생의 경험 2
내게 인도 여행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신비 탐구였다. 그래서 불교의 성지나 힌두교 성지 그리고 히말라야가 주로 내가 찾아다녔던 곳이었다. 히말라야로 가기 위해 네팔로 왔다. 타멜의 한 숙소에 배낭을 풀었다. 타멜은 네팔 왕궁이 있는 곳으로써 한국 음식점을 비롯 서양인들이 운영하는 여행사 등이 있고 온갖 맛있는 음식점과 저녁에는 라이브를 하는 맥주집까지 있는 곳이었다.
그 유명한 쿠마리 사원이 있는 곳도 타멜이다. 초경전의 여자아이를 선발하여 여신으로 모시는 사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우연찮게 들렸을 때 쿠마리가 관광객에게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잠깐 얼굴을 내 비추었는데 붉은 화장을 한 눈망울이 쏟아질 것 같이 예쁜 꼬마 소녀였다. 여신답게 짧게 서서 내려다보고 그리고 차갑게 등을 돌렸다.
히말라야를 탐구하는 이들은 주로 타멜을 거점으로 삼았다. 영국이나 미국인들은 며칠 간의 히말라야 등정이나 래프팅을 하고 돌아오면 지들끼리 전용으로 머무는 숙소에서 거하게 저녁 파티를 열고 떠들썩하게 즐겼다.
타멜은 또 저녁이면 어둑해진 골목에서 옆구리를 쿡 찌르며 하시시? 하고 마약류를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특정한 날은 합법적으로 마약을 할 수 있는 마약 데이가 있는 곳이었다. 마약 데이인 날은 카페마다 마약을 하러 올라가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난 가보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만난 친구들에게 가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여러 번 받았다. 창문으로 보면 뿌옇게 연기가 나오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내 여행의 원칙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여행지에서 현지인들과 술과 마약 등을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디선가 조용히 명상을 하고 싶었다. 히말라야의 감춰진 신비와 만나고 싶었다. 그게 내 여행의 목적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셀파가 굼부지역안에 있는 작은 오두막을 소개 주었다. 그 오두막은 명상을 하는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것이었는데 그곳을 지키는 여인이 자기 친구이고 잘 아니까 자기소개로 왔다고 하면 방을 내어줄 것이라고 했다. 배낭을 메고 히말라야 기슭까지 날아가는 헬리꼽터를 탔다. 헬리콥터 안에서 바깥을 내려다보니 무지개가 떴는데 도넛처럼 동그란 무지개였다.
헬리꼽터에서 내려서부터는 걸어가야 했다. 지역의 소년과 청년들이 너도 나도 가이드를 해 주겠다고 다가왔다. 그들과 가이드 비용을 흥정해야 했다. 그냥 가도 되겠지만 아무래도 초행길이니까 가이드 안내를 받기로 했다.
올라가다가 가이드의 집에 들러 감자로 점심을 때웠다. 그리고 또 걸었다. 산길은 험하고 높았다. 줄에 판자를 대 놓은 출렁거리는 다리도 몇 번 건너야 했다. 이 다리 건너 건 좀 무서웠는데 야크들이 짐을 잔뜩 싣고 겁먹은 큰 눈을 희번득이며 그러나 침착하게 건너는 것을 보고 나도 용기를 내서 다리를 건넜다. 야크도 건너는데 나도 건널 수 있어!
산은 4천 미터가 넘었다. 우리나라 한라산이 2천 몇 미터니까 한라산의 딱 두배를 걸어 올라가야 하는 것이었다. 올라가다가 로지에서 저녁을 먹고 잠을 자기를 연 이틀이나 했던 것 같다. 3일째 되는 날 간신히 목적했던 곳에 도달했다. 그런데 오두막의 여주인은 미국인 후원자가 있는데 그 후원자의 허락이 없으면 방을 내줄 수 없다. 나는 그녀에게서 연락이 오는 사람에게만 방을 내준다고 했다. 미국인이란 게 거의가 다 그랬다. 지들끼리만 묵는 숙소, 지들끼리만 사용하는 명상 장소 등 지들의 우월한 금전력을 이용하여 자기들만의 독점적인 세상을 구축하고 왕이나 여왕처럼 굴고 있었다. 명상센터란 센터는 가보면 다 미국애들이 자리를 차지고 하고 있었다. 영성도 돈으로 살 수 있고 독접할수 있다고 믿는 게 그들이었다.
다행히 그 오두막 옆에 티벳 절이 있었다. 방이 없어서 첫날은 법당에서 잤다. 티벳 스님 한 분, 보살님 한분, 아기 스님 한분이 그 절의 주인이었고 객으로는 스리랑카 스님 한 분, 토굴에서 명상 정진하는 타이완의 여성 수도자, 그리고 캐나다인 여자와 남자, 미국인 남자, 그리고 나였다. 마침 미국인 남자가 트레킹을 떠나기 때문에 언덕 위 오두막이 비워져서 내가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서도 미국인 남자는 혼자만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양 아주 거만하게 굴었다. 그들의 특권의식은 역겨울 정도였다. 캐나다인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끌리는 듯 이성적인 호감을 표시하면서 이상하게 내 주의를 끌려고 애썼다. 내가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자 그들의 애정 행각도 시들해져 버렸다.
그곳에는 먹을 것도 땔감도 참 귀했다. 큰 나무도 자라지 않았다. 보살님이 소똥을 거두어서 반죽을 만들어 햇볕에 말려서 그것을 땔감으로 썼다. 그것으로 아침에는 차파티를 굽고 저녁에는 뚝바를 끓였다. 뚝바는 칼국수와 아주 비슷한 형태의 음식이었다. 먹는 영양이 부족했는지 나는 거기서 배고픔과 허기에 시달렸다 아침은 넓적하게 구운 한 장의 차파티였다. 밀가루 반죽 넓적하게 한 개 구워서 소금을 찍어 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점심은 그나마 카레를 곁들인 밥을 조금 먹었나 싶다. 저녁은 언제나 둑바였다.
오두막에 앉아서 명상을 하는데 이건 뭐 완전히 음식에 대한 명상이었다. 먼저 '무엇을 먹을까?' 하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음식들을 떠 올렸다. 그러고 나서는 '어떻게 먹을까 '하고 또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음식에 대한 평을 하면서 맛을 기억하여 떠 올려 음미했다. 아침에 소금을 찍어먹는 차파티도 맛있기 그지없었다. 하나 더 먹었으면! 하지만 그건 아침에 딱 한 개씩 밖에 안 주는 거니까, 내일 아침에 차파티가 나오면 아주 조금씩 뜯어서 소금을 찍어서 아주 천천히 먹을 거야!...
이런 젠장, 젠장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참 한심하군. 음식 명상을 하려고 여기 온 거야? 한 2 틀이 지난 후 나는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꾸짖었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명상을 하려고 오두막에 앉아 있었다. 낮에는 가끔씩 마당에 나가서 햇볓도 쏘이고 또 들어와서 명상도 하고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밤이 되면 무서웠다. 다른 무엇보다도 골짜기를 내리 달리는 바람 소리가 울부짖는 괴물의 소리였다. 그게 신경이 쓰여서 저녁에는 좀처럼 명상을 할 수 없었다. 잠이 들 때까지 간신히 그 시간들을 버텨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다시 한심한 나 자신을 꾸짖었다. 그리고 온 힘을 모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집중했다. 잡념이 떠 오르면 칼같이 끝어버리고 다시 집중 상태로 돌아왔다. 어느 날 초저녁 마음을 다잡고 앉아서 명상을 시작했다. 어둠이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면 그 산과 골짜기 바람만 불뿐 세상천지는 고요하고 적막했다. 내 마음도 제대로 잡혀서 고요하고 평정한 상태에 흔들림 없이 머물러 있었다. 잡념도 없었다. 뭔가를 기억하거나 추억하거나 그에 따라 일어나는 감정도 없었다. 오직 고요하고 평정한 상태가 조금씩 조금씩 더 깊어질 따름이었다.
그때 갑자기 왼쪽 뺨에서 진한 액체가 한줄기 주르륵 흘러내렸다. 너무도 또렷한 감각이어서 나는 문득 피가 흘러내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시하고 다시 몰입했다. 조금 있다가 또 액체가 흘러내렸다. 시간을 두고 한 번씩 흘러내리던 액체는 어느덧 오른쪽 뺨에서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이전보다 훨씬 더 자주 흘러내렸다. 몸에서 이렇게 피가 많이 흘러내린다면 뭔 일이 있는 거 아닌가? 그러나 나는 그 고요한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뺨 위로 잠깐잠깐 돌아왔다가 다시 명상 상태로 돌아갔다.
그런데 조금 후에 코가 풀려서 콧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인지되었다. 그건 피가 아니고 눈물이라는 것을, 마치 울 때처럼 눈물이 흐르고 콧물이 흐르는 상태라는 걸, 그런데 나는 그때 울만한 어떤 생각도 기억도 떠올리지 않았고 어떤 감정 상태에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게 눈물이 그렇게 흘러내린다는 것을 인지할 수 없었다.
신비의 공간이 문을 열어주면, (그 공간의 문 앞에 다다르기고 힘들고 살짝 열고 뭔가를 경험하기도 힘든데 ) 그다음 발을 내디뎌 한걸음 더 들어가는 것은 참으로 무섭다. 나는 여러 번 그 신비의 문 앞에서 도망쳤다. 그때도 그랬다. 다음날 바로 짐을 챙겨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고 생각도 없는데 왜 눈물이 흘렀을까? 하고 물었지만 별다른 대답을 얻지 못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만난 필로님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필로님은 신비가 마크 헤드슬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크 헤드슬도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경험했는데 그때 스승이 "우리 의식이나 뇌가 감당할 수 없거나 혹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떤 일이 있을 때 우리 몸은. 소금기를 내보내서 그것을 해소하려 한다"고 말했다. 소금은 강력한 정화 작용을 하는 물질이다. 나는 이후 소금과 아주 중요한 인연을 맺고 큰 도움을 받게 된 일이 있었다.
명상 중에 접했던 액체의 느낌은 이후에 한번 더 있었다.
어떤 신비 체계에서 대천사 메타트론의 에너지와 닿았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때는 머리 위에서 이마로 기름이 떨어져서 흘러내리는 생생한 느낌을 감각했다. 그리고 조금 후에 등에 커다란 날개가 솟아서 날개로 나 자신을 감싸고 있었다. 스스로의 날개로 스스로를 감싸고 있음에도 조금도 부족하거나 치우침이 없는 깊은 평안과 따듯함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 스스로 자신을 깜 싸안는 것이 가장 깊은 평화와 따듯함을 가지는 것이라고 해석해버렸다.
이런 해석 또한 늘 보면 위험하다. 해석하고 나면 탐구가 멈추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20대 때 나는 가능한 신비체험을 즐기며 신비주의자가 싶었다. 당시 내가 명상을 하고 신비주의를 갈망했던 이유는 지혜의 갈망 때문이었다. 이 세상을 넘어선 신비 지혜를 알고 싶었다. 그런데 명상을 하고 신비주의를 경험하면 할수록 나는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점점 더 현실에 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s.사진은 제가 직접찍은 사진이 아니고 무료공유 싸이트에서 비슷한 느낌의 풍경 사진을 가져온것입니다.실망하지 마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