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징후, The Sign of Three
한동안 닥치는 대로 영국 드라마를 봤다. 시대극, 판타지, 수사물… 한 마리 잡식 동물이 되어 영드를 소비했다.
러닝타임 24분. 그 24분 동안 귀를 스친 말들 중 몇 개의 아까운 대사가 노트에 쓰여있다. 보통 그건 드라마 전체의 스토리 대신 나의 특별한 기억을 불러내는 문장이다. 화면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그 대사들에서 퍼져나간 개인적인 기억.
24 minutes는 그런 기억을 모은 글이다. 24분짜리 드라마의 일부에서 태어난 주관적 드라마를 한 편씩 소개하려고 한다. 아쉽게도 드라마를 소개하는 글은 아니다.
축가를 불렀다, 또.
2013년 이후 내 인생 두 번째 축가. 6명이 같이 부르긴 했지만, 혼자가 아니라고 해서 긴장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어쨌든 나도 마이크를 들고 있었으니까. 축가를 부르러 주섬주섬 일어서자마자 사회자가 ‘ㅇㅇ동 레인보우’라고 소개한 탓에 마이크를 들기도 전에 이미 심리적으로 너덜너덜해졌던 2013년에 비하면 이번은 훨씬 나았다. 그래도 이번 역시 땅을 파고 들어가고 싶었고, 식이 끝나고 아무도 “아까 노래 부르신 분들이죠?”라는 얘기를 안 해주길 바랐다. 축가를 부른 날은 늘 그렇다. 어쨌든 우리는 노래를 마쳤고, 결혼식은 끝났다.
Mary Watson: It’s my wedding day!
메리 왓슨: 오늘 제 결혼식인걸요!
친구 중 처음으로 결혼을 했던 은애는 우리가 25살이던 해에 시집을 갔다. 본인에게야 연애 기간이 길었겠지만, 25살이면 참 빨리도 갔다. 우리들 사이에서 첫 결혼이라,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 각자 은애와 추억이 담긴 곳에서 영상을 찍어오느라 나는 MT를 가던 길에 굳이 강원도 어느 해수욕장에 내려서 영상을 찍었다. 그때가 새벽 5시였다. 다른 친구는 새벽 1시에 우리가 처음으로 만났던 고등학교에 들러 영상을 찍었다. 결혼식장에서 틀 축하 영상도 아니고 그냥 은애한테 보여주기만 할 영상이었는데도 그렇게 정성을 쏟은 걸 보면, 다들 엄청 들떠있었던 것 같다.
처음엔 그랬다. 친구 결혼식이 내 결혼식 같고, 결혼식이 끝난 후 친구들끼리 모인 피로연 자리가 진짜 파티처럼 느껴지고. 지금 생각하면 가끔 신기하다. 대체 왜 그렇게 설렜지.
은애의 결혼 이후 지금까지 3명을 더 '보내'면서 친구의 결혼이 갖는 의미는 조금 바뀌었다. 이제 친구가 결혼한다는 건, 우리에게도 할 일이 생긴다는 의미다. 영상을 찍는다든지, 축가를 부른다든지, 혹은 들러리 촬영을 하느라고 뜻밖의 다이어트를 시작한다든지. 7년 동안 친구들과 나는 결혼식을 돕는 데엔 나름 베테랑이 되었다. 설렘이 사라진건, 이 일들이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2013년에 첫 축가를 부르고 돌아온 날, 아빠가 그랬다. 니는 언제 시집 가노. 이번 축가를 부르던 날, 버진 로드 끝에서 신부가 입장할 때 흔들 꽃을 들고 서 있다가 친구 하나가 그랬다. 야, 우리 이거 몇 번 더 하면 되냐. 남은 건 다섯 명이다. 그날 집에 돌아오니 이모는 물었다. 친구 결혼식 보니 니는 안 하고 싶드나.
찬찬히 되짚어보니 이런 게 설렘 도둑인 것 같다. 나는 줄을 선 적이 없지만 어느새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고, 누군가 그 줄에서 나갈 때마다 남은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것. 숙제를 하지 않았는데 숙제 검사 시간이 다가오는 그런 기분을 느끼면서 설렐 리가 없지.
Mrs. Hudson: It changes people, marriage.
허드슨 부인: 결혼은 사람을 변화시킨단다.
Sherlock Holmes: Mmm, no, it doesn’t.
셜록 홈즈: 음, 아뇨.
큰언니는 29살에, 작은언니는 32살에 결혼을 했다. 세 딸의 결혼이 인생의 과업인 아빠에게 이제 나만 남았다. 아빠가 나에게 처음으로 결혼 얘기를 꺼낸 게 작은언니의 결혼이 결정된 날이다. 그때 나는 28살이었다. 초반부터 강경대응을 한 덕에 아빠는 언니들 볶듯 나를 볶지는 않는다. 그래도 가끔씩 결혼 비슷한 얘기라도 꺼내는 아빠와 이모의 요지는 이렇다. 결혼을 해야, 부모가 돼야 어른이 된다.
물론 면전에서 말은 못 했고 아마 앞으로도 못 할 테지만, 결혼해야 어른이고 부모가 돼야 어른이라는 이야기는 마치 아프니까 청춘이고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것처럼 이상한 전제와 이상한 결론의 합작품이다.
어른이 된다는 의미는 잘 모르겠다. 살아가며 언제쯤 어른이 되었다고 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다. 나이가 있다고 어른이라고 할 수도 없다. 같은 의미로 결혼을 한다고 해서,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어른이라고 할 수 없다. 매번 다른 고민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고, 그때마다 서른 살이 처음이라서, 마흔 살이 처음이라서, 혹은 예순이 처음이라서 헤매게 된다. 그러니 언제쯤 흔들리지 않는 어른이 될지는 모른다.
대신, 어른이라는 묵직한 단어를 쓰지 않아도 살아가며 분명 조금씩 성숙해지는 계기는 있을 거다. 성숙해지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면, 나에게는 그 첫 번째 일이 결혼이 아니라 혼자 살기다.
Mrs. Hudson: I’m bringing you your morning tea. You’re not usually awake.
허드슨 부인: 너에게 차를 좀 주려고 왔지. 보통은 이 시간에 자고 있더구나.
Sherlock Holmes: You bring me tea in the morning?
셜록 홈즈: 부인이 저한테 아침마다 차를 갖다 주세요?
Mrs. Hudson: Well, where do you think it came from?
허드슨 부인: 그럼 차가 어디서 온 줄 알았니?
Sherlock Holmes: I don’t know. I just thought it sort of happened.
셜록 홈즈: 모르죠. 뭐, 그냥 어디서 나타났겠거니 생각했어요.
통학 때문에 이모랑 둘이 살기 시작한 지 벌써 17년째다. 아침에 나와 밤 늦-게 들어가는 지금의 생활 패턴으로는 혼자 사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기도 하다. 그래도 대부분의, 아니지 솔직하게는 집안일 전부를 이모가 한다. 막내 포지션이 주는 프리미엄 덕분에 이모를 포함해 우리 집에서 내가 그런 일을 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나 스스로도 딱히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눈을 뜨면 아침 밥상이 방에 와 있고, 내가 신경 안 써도 빨래는 다 돼있다.
영국에 있었을 땐 이런 일의 대부분을 스스로 해야 했다. 주말에 빨래나 청소, 옷 정리를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고 없었다. 그래도 그 일들이 좋았다. 뭔갈 만들어 먹고, 먹은 걸 치우고, 내가 입은 옷을 세탁하는 그 당연한 일을 태어나서 혼자 처음 해봤기 때문이다. 내 뒤치다꺼리는 내가 하면서 스스로 산다는 건 바쁘긴 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지금 같은 황제 생활을 관두고 다시 혼자 살겠다는 게 행복에 겨운 헛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내 살림을 내가 하는 게 너무 중요하다. 태어난 이상, 자기만의 생활 영역을 갖고 스스로 살아나가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사명 정도가 되겠다. 혼자 사는 건 그것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혼자 살고 싶다는 얘기를 진지하게 꺼내니 아빠가 그랬다. 까불고 있네.
혼자 살고 싶다는 얘기를 진지하게 꺼내니 이모가 그랬다. 왜?
'시집도 안 갈 거면서 대체 왜' 혹은 '아직 어린데 대체 왜' 같은 질문이 맨 앞에 나올 줄은 몰랐다. '차라리 결혼을 하지 그러냐', '지금 만나는 애는 별로냐' 같은 말이 그다음이었다. 결혼 얘기를 듣기엔 당연한 나이인데 혼자 살게 내보내기엔 어린, 애매한 키덜트 상태에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라는 걸 설득하는 데에 2~3개월 정도 걸렸다. 그 이후에 닥친 실전들, 예를 들어 혼자 살 집을 구할 예산과 살만한 동네를 고르는 일은 번거롭긴 했지만 어렵지 않았다. 혼자 살아야겠다 마음먹고 지금까지, 가장 어려웠던 건 이모의 상실감을 마주했을 때였다.
이모는 내가 아기였을 때부터 우리 집에 살았다. 통학 때문에 같이 살게 된 16살 이후로는 엄마 아빠의 자리를 이모가 다 채웠다. 그러니 지금껏 살면서 엄마랑 싸워본 적은 없어도 이모랑 싸운 건 셀 수 없이 많다. 이모와 나의 관계는 다른 집의 지지고 볶는 모녀 사이와 같다. 그러니 이모에게는 내가 딸이나 다름없었을 거다.
Mrs. Hudson: She cried the whole day, saying “Ooh, it’s the end of an era.”
허드슨 부인: 내 친구는 그날 하루 종일 울었어. "아, 이제 한 시대가 끝나버렸어" 라면서 말야.
시집도 안 갔는데 왜, 아직 어린데 왜, 혼자 살면 돈을 못 모으는데 왜 등의 각종 질문들을 하나하나 처리하고 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질문들을 걷어내고 나니 그 자리엔 그것들로 가려뒀던 이모의 상실감이 있었다. 내가 키운 애가 날 떠나서 가버리면 이젠 더 이상 우리 애가 아닐 것만 같은 그런 불안감과 상실감. 나는 아이를 키워 독립시켜본 경험은 없지만 예전에 큰언니가 결혼했을 때, 결혼식 중간에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꾹 참았었던 적은 있다. 우리 언니를 형부가 데려가버려서 이젠 우리 언니가 아닐 것 같은 불안감과 상실감.
그래서 이모에게 선뜻 무슨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상실감은 비논리의 영역이니까. 다른 질문들에 답해왔듯, 이성적인 말로 간단히 답을 준다고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혼자 살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좀 더 정확히는, 그래서 꼭 혼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모는 어린아이 키우는 부모가 가질법한 애착이 나에게 있고, 나는 이모가 내 뒤치다꺼리를 다 해주는 상황을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 집에서는 우리 둘 다 너무 서로에게 의지하는 부분이 커서 누구도 자기 삶을 온전히 살고 있지 않다. 그러니 황제 생활을 팽개치고 내가 굳이 혼자 살려는 건, 서로에게 의지하느라 방구석에 내팽개쳐둔 자기 삶을 찾고, 그 삶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다. 나 혼자 살면 당분간 엉망진창인 음식을 먹으며 집안일에서 허덕이겠지만, 그건 내야 거쳐야 하는 일이다.
Microft Holmes : Well, it’s the end of an era, isn’t it?
마이크로프트: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 아니겠니?
Sherlock Holmes: No, no, no- I prefer to think of it as the beginning of a new chapter.
셜록: 아니, 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 생각하고 싶은걸.
어른은 아마 평생 될 수 없을 거다. 그저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면서 조금씩 성숙해지고, 이걸 반복하다 보면 어른이란 것에 조금씩 가까워져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결혼과 출산, 혹은 독립은 그 행위를 했다는 것 자체로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준다기보다는, 지금보다 1cm라도 성숙해지기 위해 겪어야 하는 감정을 만들기 위한 일들 정도가 될 것이다.
내가 혼자 사는 일이 이모에게 상실감과 두려움을 주더라도, 내 선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모가 상실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내가 영원히 함께 살 수는 없는 거니까. 그리고 지금은 아니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내가 이모 나이가 되면 아마 나도 피할 수 없이 상실감을 겪을 때를 만나게 될 거다. 그것도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모가 겪는 상실감에 대한 내 대답은 이 정도다.
내 대답에 어느 정도 공감한 듯 하지만, 이모의 상실감은 언제든 고개를 들 수 있다. 그래도 기꺼이 부딪힐 생각이다. 내가 혼자 사는 것이 이모와 나, 우리 둘 모두를 성숙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이라면, 반가운 일이 될 거다. 아직은 내가 없이 어떻게 살지 걱정인 것 같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 이모만의 삶이 있었던 것처럼 분명히 앞으로도 자기 삶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시간이 지난 후에 이모 나름대로 삶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 참 기쁠 거다.
그러니 내일은, 집을 보러 가야겠다.
John Watson: Look, Sherlock,
this is the biggest and most important day of my life.
존 왓슨: 이봐 셜록,
이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