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 Nov 12. 2017

나 여기 길 잘 알아

길을 잃었다




집주인 Jelle는 경험 많은 호스트였다. 이미 많은 여행객들이 그 집을 거쳐 갔다. 첫날 아침을 먹다 마주친 Jelle는-아마도 늘 하던 대로-우리에게 시내로 가는 길을 알려주려고 했다.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나 여기 길 잘 알아.” 


그날 시내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가도 가도 새로운 집들뿐이었다. 나는 요크에서 웬만한 길은 다 알았지만 사실 그쪽 길은 몰랐다. 호기롭게 길을 안다고 말을 했던 건, 내가 일 년을 보낸 요크를 모를 리 없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길을 헤매는 동안 비는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새미가 내 멱살을 잡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몰랐던 그 길에는 집이 아주 많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전형적인 영국 집들이었지만 분명 우리가 알던 것은 아니었다. 쭉 늘어선 집들 사이에 잘 가꿔진 작은 정원들이 그리 예쁜지도 처음 알았다. 길을 헤매는 30분간, 정말 많은 꽃을 봤다. 끝까지 길을 찾지 못해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다시 그 집과 꽃을 찬찬히 살펴봤다. 익숙하다고만 생각했던 곳에서 낯선 것을 발견하는 건 예상 못 한 즐거움을 주었다.


시내로 들어서니 다시 내가 그리워 한 익숙한 것투성이였다. 5년 만에 돌아갔지만 그날 하루 종일 한 번도 헤매지 않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걸을수록 ‘역시 내가 요크에서 모르는 곳이 있을 리가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새미와 나는 사람들과 함께 강가를 걷고 있는 오리떼를 만났다. 그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리떼를 만났다. 이곳에 오리가 많은 줄은 알았지만 매일 이곳에서 산책하고 밤을 보내는 지 그전에는 몰랐다.


자세히 살펴보니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시내에도 곳곳에 처음 보는 찻집, 새로 생긴 가게들이 많았다. 내가 몰랐던 것들을 발견하는 것은 요크에서는 기대하지 않은 일이었다. 낯선 것들과 마주하는 매 순간이 행복했다. 이 낯선 것들 때문에 나는 다시 요크에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이곳에는 볼 것이 많고, 나는 이곳을 잘 모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요크, 그리고 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