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 Nov 12. 2017

혼자 밥 먹는 여자

We are different



여행을 함께한 새미와는 2009년 요크에 있을 때 이미 일주일 정도 파리 여행을 함께했었다. 그 일주일의 파리 여행을 통해 새미는 같이 여행하기 좋은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행을 같이 한 건 일주일이지만 2009년부터 지금까지 알고 지낸 사이라 딱히 서로의 ‘다름’을 절감하게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 착각은 여행 첫날부터 깨졌다. 새미는 아침에 나를 깨우지 않았다. 첫날 나는 뒤늦게 일어나서 혼자 밥을 먹으러 내려가는 새미를 따라 뛰어 내려갔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랬다. 내가 일어나보면 이미 씻은 후거나 밥을 먹은 후였다.


심지어 같이 깨어있는 날도 ‘일어났으니 밥 먹으러 가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버젓이 깨어있는데 말도 없이 혼자 밥을 먹고 올라오거나 씻고 왔다. 그 집에는 화장실이 두 개였기 때문에 여행 중 흔히 일어나는 샤워실 배 눈치 게임도 필요 없는 곳이었는데 말이다. 여행이 시작되고 며칠 간, 나는 늘 늦게 일어나서 눈치껏 씻고 눈치껏 밥을 먹었다. 그런 여행은 처음이었다.


기분이 나빴다. 왜 날 안 깨우는 건지, 왜 깨어있는 날도 아침을 먹자고 하지 않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기분이 나빴던 며칠 간은 나도 혼자 내려가 밥을 먹고, 새미를 깨우지 않고 샤워를 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왠지 기분이 더 찜찜해졌다. 이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는 먼저 일어나 아침을 다 차린 후에 자고 있는 그녀에게 ‘일어나. 밥 먹자.’라고 했다. 자다 깬 새미는 무슨 말을 할 듯 2초간 멍하니 있다가 나를 따라 부엌으로 내려왔다.


그때 새미의 그 혼란스러운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긴 그 표정을 보고 알았다. 자는 사람을 깨워서 밥을 먹자고 하는 것을 새미는 전혀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새미에게 당연한 것은 상대방이 자면 일어날 때까지 깨우지 않는 것, 자기가 밥을 먹고 싶을 때 상대방도 밥을 먹고 싶을 거라 생각하지 않은 것이었다. 상대방 기분을 나쁘게 하려고 일부러 깨우지 않고 혼자 밥을 먹는 게 아니었다. 그냥 우리는 달랐다. 그날부터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후로도 새미는 5주간의 여행 내내, 한두 번을 제외하고 나에게 먼저 아침 먹자는 말을 하며 깨우지 않았다. 계속해서 혼자 밥을 먹고 조용히 일어나 씻고 왔다. 그리고 나는 나대로 5주 내내 아침을 먹자며 깨웠다. 그리고 서로 매일 아침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기분 나빠하거나 다투지 않았다. 먼저 일어나는 날이면 늘 아침 먹자고 깨우는 나를 향해 발길질 한 번 하지 않은 그녀의 인격적 성숙함에 소소한 감동을 느끼는 일상이었다. 그래서 새미와 여행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여행에 관련된 여러 가지 번드르르한 말 중에서도 특히 ‘여행은 다른 사람과의 차이점을 인정하는 과정’이라는 그 말 하나만큼은 매일 아침, 식사를 통해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 여기 길 잘 알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