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져서 슬픈 것들
2009년, 그러니까 처음에 요크에 갔을 때 은행계좌를 열기 위해 1주일을 기다렸다. 계좌를 열려면 먼저 계좌 개설 약속을 잡고 와야 했고, 계좌를 개설하는 날은 1시간이 걸렸다. 뚱뚱한 할아버지 은행원과 테이블에 마주 앉아 내가 준비한 서류를 늘어놓고 그 은행원이 서류를 다 검토하고 지루한 입력과 복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도 은행카드가 발급되기까지 며칠이 더 걸렸다. 주민등록증과 손가락만 준비해가면 어서 옵쇼 하며 계좌를 열어주는 한국과 너무 달랐다.
답답했다. 계산대 8개가 있지만 직원이 있는 계산대는 고작 3개뿐인 가게들도, 우체국에서 우표 하나 사려고 20분을 줄 서서 기다리는 것도 답답했다. 느릿느릿, 자기들끼리 농담해가며 다음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직원들도 이상했다. 제일 이상한 건, 그 긴 줄에서 두리번거리고 한숨 쉬는 사람이 나 혼자뿐이었다는 것이다. 기다림이 당연한 도시에서 급하게 사는 건 나 혼자였다.
요크에서 살면서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졌다. 물건을 사느라 좀 더 기다린다고 해서 손해가 없었고, 그동안 빨리빨리 재촉해서 아낀 시간을 딱히 가치 있게 쓴 기억도 나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아도 인생에 별문제 생기지 않더라는 걸 그곳 사람들을 통해 배웠다. 내가 누군가를 기다려준 만큼 내 뒤에 서 있는 사람도 내 일이 끝날 때까지 여유를 갖고 기다려 줄거란 믿음, 당연히 있어야 할 인간 간의 신뢰였다.
여행을 가면 그곳 우표가 붙은 엽서나 편지를 보내는 습관 때문에 이번에 다시 우체국에 들렀다. 이상한 말이지만 당연하게 줄을 서는 그 생활이 조금 그리웠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우표를 파는 기계를 발견했다. 20분을 기다려야 살 수 있었던 우표를 전혀 줄을 서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우체국을 나서는 기분이 이상했다.
한국에서 지내면서 지하철을 타거나 물건을 사는 너무나 흔한 일상에서 요크를 떠올렸다. 누군가 밀거나 새치기를 하거나 내 차례가 끝나기도 전에 자기 물건을 턱 하니 올려놓으며 나를 재촉할 때마다 요크가 그리웠다. 마치 이것이 인생의 마지막 지하철인 것처럼 나를 밀고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을 때면, 기다림이 당연한 그때의 기억은 마음속으로나마 도망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하지만 나의 요크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기계로 산 우표가 신기하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해서 한참 쳐다보았다. 스티커 우표에도 예전처럼 여왕의 옆 모습이 있지만, 종이 우표를 만질 때 느꼈던 그 촉감이 아니었다. 요크도 그렇다. 여전히 기계보다는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지만, 줄을 서지 않으면 안 되던 예전과는 다르다. 여전히 어디나 느린 곳이지만, 다음에 돌아오면 누군가는 한숨을 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줄 서는 것을 답답하다 여기지는 않을까. 이곳도 한국처럼 모두가 남보다 먼저 뭔가를 하기 위해 달려가게 될까. 모를 일이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