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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Nov 12. 2017

써클카페

좋은 사람과 이별하기는 어렵다.




우즈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끝, 그곳에 써클카페가 있다. 작고 조용해서 지나치기 쉬운 그 카페에는 테이블도 몇 없다. 나는 그 작은 카페를 좋아했다. 특히 써클카페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고작 세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숨은 방을 좋아했다. 오후 수업을 빼먹고 동현 오빠와 새미와 셋이 숨은 방에 앉아있으면 꼭 우리만 아는 공간에 있는 것 같았다. 그 숨은 방이 아니더라도 써클카페에 있는 손님들은 저마다 이 세상에서 동떨어진 것처럼 한참 속삭이다 가곤 했다. 써클카페는 모두에게 아지트였다.





5년 만에 새미와 다시 써클카페를 찾았다. 여전히 몇 없는 테이블,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운 손님들이 재잘재잘 속삭이는 모습. 그곳은 모든 게 똑같았다. 동현 오빠가 없다는 것만 빼면,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오빠는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도 써클카페에 같이 올 수 없다. 그는 세상에 없다. 동현 오빠가 없어서인지 우리는 늘 앉던 그 숨은 방에 앉지 못했다. 이미 다른 손님들이 그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처음 앉는 작은 테이블에 앉아 처음으로 크림 티를 시켰다. 나는 숨은 방과 우리가 마시던 커피를 그리워했지만, 그곳에 앉지 못한것도, 같은 메뉴를 시키지 않은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빠가 없으니까 어차피 같지 않다.


동현 오빠는 좋은 사람이었다. 운동을 하다가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오빠는 근육질의 다정한 언니 같았다. 그래서 아주 길게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 같았다. 오빠는 늘 자기가 가진 것에 온전히 감사해 하고 만족했다. 그래서 늘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했다. 그게 참 신기하고 부러웠다. 오빠를 알고 지낸 몇 달 동안 오빠는 자존감이 낮은 내 세상을 갈아엎어 놓았다. 그래서 나는 오빠를 참 좋아하게 됐고, 제대로 감사인사나 작별인사를 하지 못한 게 늘 미안했다.





이번에 다시 요크에 돌아오면서 이제 작별인사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가 뿌려진 인천에는 둘 다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한 번도 셋이 같이 있어보지 못한 한국에서 작별인사를 하기보다는, 우리가 좋아하던 써클카페에 앉아 예전처럼 그때를 추억하는 게 최고의 작별인사가 아닐까. 물론 아직도 할 인사가 많이 남았다. 요크에서 내가 아는 곳 중에 오빠랑 같이 가지 않은 곳은 없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을 보내는 데는 시간이 참 오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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