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nch Bowl
영국엔 맛있는 음식이 별로 없다. 그래도 나는 English breakfast를 사랑해 마지않는다. 대부분의 펍과 식당에서 아침에 English breakfast를 파는 식당은 많지만 역시 최고는 미클게이트Micklegate쪽 펀치볼Punch Bowl이다. 이곳 음식은 참 정갈하다. English breakfast 계의 한정식 느낌이랄까.
펀치볼에 들어가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를 시켜놓고 크리스마스 선물 기다리는 아이 같은 기분으로 기다렸다. 다시 펀치볼이라니. 사실 밥 한 끼 먹는 것뿐인데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나는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최선을 다해 펀치볼과의 재회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눈에 들어왔다.
4인 테이블에 맥주 한 잔을 올려놓고 혼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들. 나와 새미가 음식을 폭풍처럼 흡입하고 있는 중에도, 우리가 음식을 다 해치우고 펀치볼을 떠날 때에도 맥주는 별로 줄지 않았다. 혼자 와서 혼자 앉아 혼자 시간을 보내는 할아버지들.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언제 맥주를 다 마시고 집으로 갈지 모를 그들이 펀치볼의 꽤 많은 테이블을 차지하고 정지화면처럼 앉아있었다.
아마 5년 전, 한 무리의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와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를 먹어치우던 그때도 이 할아버지들은 이 자리에 홀로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을 텐데 내가 왜 새삼스레 그날 할아버지들을 발견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왜 그렇게 그 정지화면 같은 모습을 보면서 쓸쓸한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20대 초반에는 아무런 감흥 없던 샤넬 백이 20대 중반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나게 예뻐 보이기 시작한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나이를 다섯 살 더 먹어서 그들을 발견하게 된 걸까.
혼자 있었다면 불쑥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말을 걸고 싶었다. 그 느릿해진 몸속에 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잔뜩 가진 소년이 있지 않을까, 고요함 뿐인 이 도시에서 그 몸을 탈출할 기회를 미처 찾지 못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다시 요크에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다시 펀치볼에 돌아와 꼭 말을 걸어보리라 다짐했다. 미처 늙지 못한 소년들이 영영 늙은 몸을 탈출할 방법을 잊어버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