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어쩌면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쓰기 위해 쓰는 휴가는 독립출판물을 만들기 위해 떠난 집필 여행의 기록입니다. [J]와 [ㅈ]가 함께 쓰는 글이라, 같은 제목의 글이 두 편씩 업로드됩니다. 에피소드 제목은 그날을 가장 잘 담은 노래이니 들으며 읽으시길 권합니다. - J
첫 휴가의 저녁, 우리는 광화문광장에 서있었다. 암막 커튼으로는 광장의 소리를 막을 수 없기도 했지만, 1차 목표를 달성한 집회의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보고 싶었다. 하는 일이 그래서, 집회는 일과 사적인 생활 중 늘 일에 가까웠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일을 하지 않고 집회가 있는 광화문을 부담 없이 걷는 건 처음이라 그런지, 우리는 별것도 아닌 피켓을 보고도 한참 웃었다.
실컷 웃고 집으로 가는 5분 정도의 시간, 나는 왠지 시간을 끌고 싶었다. 집회의 웅성거림이나 열기라고는 없는 방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갑자기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별로 크지도 않은 오피스텔에서 화장실을 갈 때의 불편함보다는 놀랍도록 방 정리를 잘 하지 않는 내 게으름을 보고 ㅈ이 놀라는 순간 같은걸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휴가 전부터 구석에서 자라나던 걱정 같은 게 현실이 될 것 같았다. 일주일 동안 우리는 몇 개의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될까.
ㅈ과 나는 많이, 다르다. 한 사람의 성격에서 외향성과 내향성 비율을 따진다면 아마 우리 성격은 정 반대일 거다. 직감을 근거로 움직이는 나와는 다르게 ㅈ은 조용하고 찬찬히 자기 행동의 근거를 모아간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가끔은 ㅈ이 다른 세계에서 온 신비한 생물체로 보이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일 거다.
그날 낮부터 신비한 생물체는 나와 다르게 움직였다. 체크인 후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일자로 뻗어버린 나를 두고, ㅈ은 찬찬히 방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자기 손길이 묻은 방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얼굴이 들떠보였다. 공간 활용을 어떻게 할지 골똘히 연구하는 ㅈ의 모습을 신기해하며 나는 일자로 누운 채 잠이 들었고, 일어나자마자 내 캐리어를 강제로 마주했다. 내가 잠든 동안 자기 짐 정리를 끝낸 ㅈ은 내 캐리어를 끌어다 두고는 침대에 앉아 내가 짐 정리하는 걸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ㅈ의 즐거운 부탁은 늘 거절하기 어렵다. 나는 ㅈ이 자기 물건을 정리하고 남겨둔 내 공간에 조용히 내 짐을 채워 넣었다. 역시나 ㅈ은 신비한 생물이라 생각하면서.
집에 가자.
광화문을 조금 더 걷자고 대답해줬으면 하는 텔레파시를 쏘며 벌써 집에 가도 괜찮겠냐고 반복해서 물어보던 그때, ㅈ이 내 손을 잡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빌어먹을 오피스텔은 지나치게 광화문광장과 가까웠다.
옷을 이 타이밍에 걸면 게을러 보이지 않을까.
어차피 들통날 일, 하던 대로 옷을 던질까.
몸에 밴 듯 빈 옷걸이를 고르는 ㅈ 옆에서, 나는 ㅈ의 눈치를 살폈다. 실제로 몇 초인지 모르겠지만,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앞두고 머릿속은 치열하게 마비되어갔다. 어른들을 흉내 내보려는 애처럼, 서투르게 외투를 벗어 정리하려는 어색한 제스처가 극에 달했을 때쯤 ㅈ은 손을 내밀어 내 외투를 가져갔다. 자기 옷까지 익숙하게 정리를 마친 후, ㅈ은 살짝 웃었다. 배경엔 그가 열심히 머리를 굴려 정리해둔 우리의 물건들이 있었다. 방금 ㅈ이 걸어준 내 외투와 머플러까지.
나는 요리나 청소나 정리 같은, 사람이 멀쩡히 살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고 상상 이상으로 그 일들이 괴롭다. 요리를 하겠다거나, 금세 뭔가를 치워놓는 ㅈ과 너무 다르다. 그래도 같은 광장에서 같은 피켓을 보고 웃었고, 휴가라 좋다면서 광화문에서 결국 각자 조금의 일을 해버렸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느라 똑같이 차가워진 손을 꼭 잡고 집까지 왔다.
그러니 달라도, 나쁘지 않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저녁처럼, 내가 어색하게 정리라는 행위를 흉내내고 있을 때 ㅈ이 옆에서 옷걸이를 들고 내 서투른 제스처를 채워줄 테니까. ㅈ의 그 모든 계획성 있는 행동들, 어쩌면 그 계획에 내가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좀 달라도 괜찮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