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글을 쓰면서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쓰기 위해 쓰는 휴가는 독립출판물을 만들기 위해 떠난 집필 여행의 기록입니다. [J]와 [ㅈ]가 함께 쓰는 글이라, 같은 제목의 글이 두 편씩 업로드됩니다. 에피소드 제목은 그날을 가장 잘 담은 노래이니 들으며 읽으시길 권합니다. - J
아빠는 가끔 나를 혼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다. 하긴, 어린 게 어른들 말을 곧잘 받아치니 그대로 두면 버릇없어 보일까 그랬을 수도 있겠다. 숨만 쉬어도 칭찬을 들을 나이에 나는 말을 한다고, 그것도 잘한다고 혼났다. 불행히도 아빠 차원에서 벌인 내 입단속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나는 그 후로도 쭉 말을 했고, 잘했다. 아빠가 아닌 어른들에게도 혼난 적이 있지만, 모든 입단속은 아빠의 그것처럼 별 효과 없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아빠와 어른들이 단속하려던 내 말, 그것이 빛을 발하는 순간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 뭔갈 설명할 때였다. 그 '뭔가'는 시시때때로 변하곤 하는데 주로 내가 꽂혀있는 것들, 지금으로 치자면 영국 드라마나 화장품, 노트쯤이 되겠다. 그래서 내 주변에는 내가 설명한 영국 드라마를 보거나 내가 설명한 화장품을 똑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 마음먹고 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면, 뭘 팔았어도 지금쯤 영업왕이 되어있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영업이 통한다. 그런데 ㅈ은 다르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예전,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친해지고 있었던 6개월 전쯤만 해도 ㅈ은 힘든 영업 대상이었다. 책, 노트... 내가 ㅈ을 대상으로 영업한 거의 모든 아이템이 ㅈ에게는 잘 먹히지 않았다. ㅈ은 말이 잘 통하긴 하지만 영업 대상으로서는 참 의심 많고 고집 센 사람이었다.
오직 먹고 자기를 반복했던 오늘, 우리는 밥을 먹으며 영드 셜록을 봤다. 셜록은 내가 ㅈ을 상대로 성공한 영업 중 하나인데, 다행히 ㅈ이 셜록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한 듯하다. 고객만족은 영업왕의 힘이다. ㅈ이 뒷 내용을 궁금해하는 바람에 살짝 다음 에피소드를 스포 하는 건 뜻밖의 재미다. 뒷 내용을 전혀 모르는 ㅈ에게 거짓말을 섞어 스포 하는 건 뜻밖의 잔재미다. ㅈ에게 스포 해준 내용 중 사실은 거짓말이 더 많다.
마치 뽀로로를 보는 3세 어린이처럼 뭘 틀어주면 눈이 빠질 듯이 보는 ㅈ을 바라보다 문득, 고집 센 ㅈ을 상대로 요즘은 꽤 높은 승률을 올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뒤늦게 해리포터를 읽기 시작했고, 함께 해리포터 영화를 보고, 예전에는 좀 시큰둥해하던 몰스킨을 이제는 같이 구경한다. ㅈ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은 이 방에는 내가 좋아해 ㅈ도 시작하게 된 해리포터와 셜록, 건담이 있다. 꽤 높은 승률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100퍼센트다.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 하게 된다고, 예전에 ㅈ이 말했다. ㅈ은 열심히 나를 따라 하고 있다. 먹고 자는 것 이외에 오늘 시간을 채운 건 셜록뿐이다. 시간을 잘 쪼개 쓰는 ㅈ은 무려 오고 싶었던 집필 여행을 와서도 나를 따라 하고 있다. 시간을 기분에 따라 보내는 내 패턴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내가 한껏 묻은 휴가를 또 다른 나처럼 나른하게 보내고 있으면서도, ㅈ은 휴가지까지 일거리를 달고 와서 우울한 표정으로 구겨져있는 나를 찬찬히 잘 달래준다. ㅈ은 늘 나를 달래고, 그걸 참 잘한다.
위가 약해 먹고 바로 눕는 건 평소에 절대 하지 않으면서도 졸린 내 옆에 누워 함께 낮잠을 자고, 나보다 더 열심히 셜록을 봐주면서 거짓말 투성이인 스포에 일희일비하고, 우울한 나를 달래준다. ㅈ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면 없었을 이 여행은 내가 생각했던 도쿄 여행과 너무 달랐지만, 정작 이걸 꿈꿨던 ㅈ보다는 얼떨결에 합류한 나를 위해 흘러간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 나를 따라 해 주려는 ㅈ 덕분에.
언제 어디든 잠들 수 있는 사람들이 있지
예를 들면 지금 내 옆에 한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