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 골딘 (Nan Goldin, 1953~)
사진은 진실을 기반으로 한 기록이다. 그 무엇도 숨기지 않는다. 가끔 어떤 목적을 위해 조작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렌즈 앞에 펼쳐진 한 순간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한 작업이다. 하지만 이 ‘온전함’에는 한 가지 조건이 붙는다. 바로 카메라를 쥐고 있는 사진가의 시선이다. 같은 피사체를 같은 카메라로 찍는다고 해도 셔터를 누르는 손의 주인에 따라 전부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될 거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여기 한 여인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보글거리는 붉은 머리, 창백한 피부, 양 귀에 걸린 은빛의 귀걸이, 새빨간 립스틱을 얹은 붉은 입술. 그리고 그 뒤에 어렴풋이 보이는 나른하게 걸린 흰 꽃 자수의 레이스 커튼. 하지만 그녀의 두 눈엔 멍이 든 자국이 선명하고, 심지어 한쪽 눈은 검은자위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붉게 충혈되어 있다. 이 충격적인 작품엔 <얻어터진 한 달 후의 낸 Nan one month after being battered, 1984>라는 제목이 붙었다. 여기서의 낸(Nan)은 바로 작가 자신, 낸 골딘(Nan Goldin)이다. 어쩌면 이 작품은 작가의 셀피인 셈이다. 3년간 연인으로 지냈던 파트너 브라이언의 무차별한 폭력이 그녀를 이렇게 참혹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한 브라이언을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으리라는 강렬한 의지와 함께, 수면 아래에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데이트 폭력의 실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인다. 이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선언하는 경고인 것이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 뉴욕 다운타운의 뒷골목 풍경을 피사체 삼아 찍어낸 낸의 사진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너무 낯설고, 거의 날 것에 가까운 적나라함으로 우리를 움츠리게 한다. 당연하다. 그녀가 선택한 피사체들은 성, 알코올과 마약 중독, 에이즈 등 금기라는 편견 안에 갇힌 소수자들과 너무 극단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이들의 모습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날 것’의 이미지에서 삶을 이루는 또 다른 결의 ‘에너지’를 마주하게 된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대신, 응당 숨겨져야만 한다고 믿었던 것들을 굳이 목격하도록 만든다. 이를 통해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긍정과 부정이 비선형적으로 반복되는 이 세계의 묘한 규칙을 예감하도록 이끈다.
낸의 작품에 깔린 근원적인 어두움은 그녀의 삶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 그녀가 11살이 되던 해, 친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는 상실에 대한 심각한 트라우마로 이어진다. 이후 그녀는 자신이 보고 느낀 모든 것들을 기록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게 된다. 14살에 가출을 하고, 방황 끝에 우연히 만난 친구들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위치의,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인 시선 속에 얽혀있던 소수자들과 무질서한 하루를 연명하는 중독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 스스로도 약물 중독에 빠져버리게 된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다. “10대의 나의 꿈은 내가 동경하던 여러 락스타들처럼 마약 중독자가 되는 것이었다. (…) 나는 정상적인 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삶의 풍경은 범죄와 고통, 배신, 중독과 자살로 가득했다. 때문에 그녀의 하루는 온통 소외와 방황, 우울함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참담한 풍경들을 담담히 사진에 담아낸다.
누군가에겐 어색하고 낯선 순간들이지만, 그녀는 그런 순간들을 망설이지 않고 포착한다. 그 고립된 순간 속에서의 고통이나 슬픔을 일부러 지워내고 미화시키기보단, ‘있는 그대로’ 다루기 위해 노력한다. 때문에 그녀의 사진은 더 꿈틀거리는 생생한 스토리를 품게 된다. 사회의 범주 밖으로 밀려난 이들의 경계를 뛰어넘어 그들의 일상에 밀착된 느낌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는 낸과 피사체들, 사진 속 주인공들의 친밀감 때문이기도 하다. 그 친밀감은 오직 낸 골딘이라는 사진가만이 찍을 수 있는 순간들을 탄생시킨다. 익숙한 그녀의 카메라 앞에서 피사체는 긴장을 풀고, 치열함을 내려놓게 된다. 그리고 이 섬세한 기록들 앞에서 우리 역시도 비난과 판단의 시선을 잠시 거두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진이 가진 힘이다. 사각의 프레임 안에 찍힌 이들의 모습을 대면함으로써 마치 프레임 바깥에서 이들을 마주 한 것 같은 환촉의 경험을 선사하는 것. 우리는 이를 통해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조금 나아가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구체적이며 능동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낸 골딘. 그녀의 위대한 작품은 비록 어두운 경험들과 결부되어 있지만,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써 그 풍경들을 기꺼이 사진으로 품어낸다. 그녀가 제시한 사각의 프레임 안에서 비로소 그 프레임을 벗어난 피사체들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 주단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