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낙원이 이런 곳이 아닐까?"

달콤한 2주 휴가 - 터키 안탈야로!

by 잉글맘

국제부부 자녀의 언어 딜레마

많은 분들이 나에게 말한다. 딸 아이는 좋겠어! 영어, 한국어 둘다 잘 할테니까..

국제부부의 자녀들은 영어, 한국어 모두 능통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세상 일 중에 쉽게 얻어지는게 있을까?

우리 부부는 아이가 영어, 한국어 두 언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길 바라는 마음에 어릴 적부터 이중 언어교육을 했었다. 요일을 정해서 영어, 한국어를 말하는 규칙은 없었지만, 일상 생활에서 최대한 언어 노출을 시켜주고자 했다. 딸아이가 세 살쯤, 영국에서 2주동안 시부모님과 휴가를 보내고 있었을 때였다.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때 아이는 한국어로 천천히 또박또박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할아버지! 밖에 가요.

밖에요!

밖!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시부모님 앞에서 아이는 당황하는 기색이 보였다.

딸아이는 영어와 한국어를 구분하지 못했다.


영어 거부하는 딸, 망연자실한 우리 부부

남편은 한국어를 쫴 능숙하게 잘 하는 편이었다.

딸아이는 아빠가 말하는 영어를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대부분 한국어로만 말하기를 원했다. 특히 영어책 읽기와 단어 쓰기에는 거부감이 심했다. 아이의 영어 거부는 점점 더 심해졌고, 코로나 시기에 영국을 3년 이상 들어가지 않으면서 "왜 자신이 한국에 사는데 영어를 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집에서 영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영어교육 전문가인 우리 두 부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영어를 잘 가르쳐주지만, 정작 우리의 자식,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의 영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했었다. 세상에서 자기 자식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일은 제일 어려운 일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1월 초부터 영국 학교 5학년이 된 딸은 아직 영어 단어를 잘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데 수업 시간에 배우는 책은 "이만큼 두껍다"며 두 손을 펼쳐 설명해주었다. 사실 그 정도는 아니라는 걸 알지만, 학교생활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면 저렇게 과장되게 말하는지 알기에 딸아이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딸이 다니는 학교는 95%가 영국인들로 구성된 곳으로 다른 문화권에서 온 학생이 절대적으로 적은 곳이었다.

영어 말하기와 듣기 실력은 또래 아이들과 비슷했지만, 읽기와 쓰기에서는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아서 거의 까막눈에 가까웠다. 영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 눈에 딸아이는 이상한 나라 앨리스와 같았다. 인지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혹은 게으른 아이 이거나. 말을 저렇게 잘하는데 cat, dog을 쓸 줄 모른다니..


각자의 스트레스, 그리고 나의 어색한 여유

영국에서 초임 교사로 일하고 있는 남편과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딸아이의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맛있는 음식 만들어주며 이 어려운 순간을 잘 헤쳐나가도록 격려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한국에서 공부방 일을 하며 정신없이 지냈던 나에게 남편의 출근과 딸아이의 등교를 시키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청소도 해보고, 저녁에 먹을 메뉴도 찾아보고, 밖에 나가서 조깅도 하고 독서와 일기까지 썼지만, 시간은 여전히 12시를 채 넘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여유로운 시간을 어떻게 쓸지를 몰라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 내가 너무 이상했다. 감사의 마음이 생기기보단 '이 시간에 내가 시간을 이렇게 보내도 될까?' 막연한 초조함과 긴장감이 엄습해왔다.

딸아이가 오면 간단히 간식을 먹고, 영어 숙제를 했다. 문제는 딸아이가 나의 영어를 지적질한다는 것이었다. 그 집에서 나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영국인들이라 내가 서열상 제일 영어를 못하는 건 사실이었다.

'학교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엄마한테 풀겠지..' 라며 이해를 해주는 노력을 많이 했지만, 엄마를 무시하며 영어 발음과 표현법을 지적질하며 평가를 할 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우리 영국으로 잘 온 거 맞지?



2주간의 구원, 터키행 티켓

영국에서 적응하느라 고생하고 있는 남편과 딸아이. 그리고 스트레스받는 그들에게 더 해줄 것이 없어서 안쓰러워하는 나. 우리 세 명에게 2주간 휴가가 주어졌다.

10일 동안 터키 리조트에서 수영하고 먹고 쉬는 것만 하는 힐링 여행이었다. 영국에 있으면 유럽의 다른 국가로 여행하는 게 정말 가격도 저렴하고 가깝고 너무 편리하다.

여러 곳을 찾아보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터키의 안탈야(Antalya). 터키 남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안탈야는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로 유럽인들의 휴양지로 인기가 있는 곳이다.

4월의 날씨는 25도 내외로 한국의 봄 날씨와 비슷했고,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기에는 물이 조금 차가운 면도 있었지만 한낮에 기온이 올라가면서 야외에서 쉬기에는 딱 적당한 날씨였다.


지상낙원, 올 인클루시브의 달콤함

각국의 유럽인들이 휴양을 하기 위해서 오는 곳이다 보니 호텔, 리조트 등 다양하게 있는데, 우리는 아침, 점심, 저녁 모든 것이 포함된 올 인클루시브를 선택했다. 맛있는 부페와 늘 먹을 수 있도록 제공되는 간식들과 음료, 그리고 모든 종류의 술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아이들을 돌봐주는 키즈 클럽이 있었는데 각국에서 온 아이들이 모여 함께 노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딸아이를 키즈클럽에 보내고 나면 남편과 나는 함께 산책을 다녀왔고 낮잠을 자고 독서도 하며 맘껏 술도 마시고... *'지상낙원이 이런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그동안 각자가 감내해오던 고통과 어려움들을 잠시 잊게 해줄 만큼 모든 서비스들이 너무 달콤했다. 그리고 우리 둘은 그런 달콤함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다국적 사람들과의 소소한 인연

리조트에서 하루 종일 지내다 보니 같은 공간에서 마주치는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스몰토크를 하기 시작했다. 독일, 폴란드, 영국, 프랑스, 체코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직업도 다양하고 각자의 집에서 떠나와 휴식이 필요한 그들에게 이곳 리조트는 최고의 쉼을 제공해주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지상낙원인 이곳에 더 있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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