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영국 학교 적응기

믿고 기다려주는 용기

by 잉글맘

딸아이는 영국에서의 학교 생활을 1월부터 시작했다.
우리가 정착한 곳은 영국 중산층이 모여 사는 작고 조용한 동네. 대부분의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서로 알고 지내서, 여자아이들 사이엔 이미 ‘절친 그룹’이 형성되어 있었다.

딸아이가 영국 학교에 적응하면서 가장 힘들어했던 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쉬는 시간마다 밖에서 뛰어놀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교 적응 초창기엔, 학교에서 읽겠다고 한국어 책을 가방에 챙겨 가곤 했다. 딸아이는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며 쉬고 싶다”고 했지만,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함께 뛰어놀며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영국 교육에서 중요하다”고 하셨다.


하교 시간, 딸아이가 혼자 교실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짠했다.
"오늘 학교 어땠어?"라고 물으면
“어, 좋았어.”라고 대답했지만,
“누구랑 놀았어?”라는 질문엔 대답이 없었다.
영국 아이들 무리에 끼지 못하고 혼자서 기웃거리는 딸아이의 모습이 점점 안쓰럽고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친해지려면 엄마들끼리 연락해서 ‘플레이 데이트’를 잡는 문화가 있다.
집에서 만나거나, 공원, 수영장, 영화관 등 아이들의 관심사에 따라 장소가 정해진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반 엄마들 단톡방에 들어가는 것도 어려웠던 나. 영국 엄마들과는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했다.


다행히 딸아이 반에 K-POP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아이의 언니는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었고, 올여름에는 고려대학교로 교환학생을 간다고 했다.
딸아이와 그 친구는 잘 어울리는 듯해, 방과 후에 우리 집으로 초대해 김밥과 고구마 맛탕을 함께 먹었다. 아이돌 이야기로 노래하고 춤추며 신나게 노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지만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일어나는 미묘한 문제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원래 둘이 절친이었던 친구 사이에 딸아이가 끼게 되며 셋이 함께 놀게 되었고, 늘 한 명은 소외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 두 친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고, 화해하고, 딸아이는 중간에서 눈치를 보며 맞춰주는 역할을 하게 됐다.

며칠을 고민하던 딸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 그 친구들은 좋은 친구가 아닌 것 같아.
이랬다 저랬다 해서 좀 피곤해.
그냥 둘이 친구하라고 말했어.”


영국에서 처음 사귄 친구들에게서 상처받은 딸아이를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엄마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것임을 알기에…
나는 슬픔을 삼키며 말했다.


“그래. 친구는 다시 찾으면 되지 뭐.
평생 가는 좋은 친구는 원래 찾기 어려운 거야.
시간이 지나면 너를 알아봐줄 친구가 생길 거고,
너도 좋은 친구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생길 거야.”



그날 나는 담임선생님께 연락을 드려 상담을 신청했다.
영국 초등학교에서의 상담은 약 20분. 미리 신청해야 하며, 그 짧은 시간에 궁금한 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나눠야 한다. 혹시 영어가 부족해 말이 막힐 상황을 대비해, 태도·학습 수준·대인관계 등 궁금한 항목을 미리 정리해 갔고, 딸아이가 집에서 공부하는 교재도 함께 챙겼다.


상담 자리에서 가장 먼저, 감사 인사를 전했다.

“딸이 학교 가는 걸 너무 좋아하고,
학교생활도 즐거워해요.
학교와 선생님들께서 신경 써주시고 배려해주시니 가능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딸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나는 집에서 공부하고 있는 교재를 보여드리며, 이 방법이 괜찮은지,

앞으로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도 여쭈었다.
선생님께서는 딸아이가 파닉스가 약하니, 기초부터 글자 규칙을 다시 공부하고, 소리 내어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원래 1~2학년 대상 파닉스 보충반이 있지만, 딸아이를 위해 특별히 따로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다고 했다.


그리고 친구 관계에 대해서도 여쭈었다.
선생님은 딸아이가 적극적으로 어울리기보다는 많이 관찰하는 아이라고 하셨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딸아이와 다른 친구 둘의 상황을 말씀드리며, 거리감을 둘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드렸다.
선생님은 그 셋이 친하게 잘 지내는 줄 알았다며, 다른 그룹 아이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겠다고 했다.


긴장이 됐지만, 1:1 상담을 신청하고 나니

막연했던 불안이 많이 사라졌다.
내 궁금증도 해결되고,
조금씩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드려 보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마다
엄마는 용기가 필요하다.
영국에서 딸아이를 키워내기 위해서.


#영국생활 #학교상담 #이민적응 # 친구관계 #딸이야기

이전 06화시부모님과의 동거, 그래도 오늘은 김치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