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의 벤치

by 잉글맘

할로윈 준비

오늘은 10월 31일.
동네 집 앞 정원마다 거미줄과 커다란 거미, 호박과 묘비가 놓여 있다.
밤이 되면 창가 사이로 해골과 유령이 손짓을 하며 웃고, 어딘가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영국의 할로윈은 마을 전체가 하나의 축제처럼 변한다.

우리 집도 일주일 동안 할로윈 준비로 분주했다.

딸이 종이에 빨간색 펜으로 핏자국을 연상시키는 글씨로 Happy Halloween을 쓰고, 하얀 실을 엮어 거미줄을 만들었다.
“엄마, TV 보는 것보다 훨씬 재밌는 걸.”
딸은 씨익 웃으며 눈을 반짝였다.
그 웃음이 방 안을 환하게 비추었다.


오렌지빛 벤치

이틀 전 조깅을 하다 큰 도로변의 벤치를 지나갔다.

며칠 전 헬멧, 장난감, 꽃 장식으로 꾸며져 있던 벤치는 이제 오렌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16살에 세상을 떠난 소년의 이름이 새겨진 자리.
작은 호박과 반짝이는 리본, 귀여운 유령 장식들이 벤치를 감싸고 있었다.

Forever and always in our thoughts, very much loved

and missing you everyday.

언제나 우리의 생각 속에, 매일 그리워하고 사랑한다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그 문장 아래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호박 장식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과 친구들은 할로윈을 함께 즐기고 싶었나 보다.


그들이 아무리 보고 싶어 해도 떠난 자와 함께할 수는 없지만, 소중한 장소에 놓인 벤치에 앉아 그를 생각하며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할로윈 저녁, 호박통에 좋아하던 초콜릿과 사탕, 젤리를 가득 담아 그에게 가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도
그리움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
그 마음이 벤치를 꾸미게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



비 내리는 할로윈의 밤

오늘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할로윈의 밤이다.
5시가 조금 넘자 아이들과 가족들이 하나둘 집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분장을 하고 의상을 입은 아이들이 긴장된 얼굴로 문을 두드린다.

“Trick or treat!”

딸은 문을 열며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You look great! Happy Halloween!”


비가 내리는 이 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고,
누군가는 아이의 행복한 웃음 속에서 사랑을 느낀다.
사랑은 그렇게 모양을 바꾸어
오늘도 우리 곁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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