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달린 시간을 기억하는 벤치

by 잉글맘

Running was your passion and as you leave the impression of your footprints around these lakes behind you, the impression you made on our hearts will last forever. We love and miss you always.

우리가 사랑했고, 지금도 그리워한다.
네가 남긴 발자국은 호수 주변에만 남은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도 영원히 남아 있다.

러닝을 사랑했던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벤치를 세운 가족. 그리움과 사랑이 고요하게 스며 있는 벤치였다.



남편과 나는 연인이 되기 전, 오랜 친구였다.
그가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외국인과의 연애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친구라는 안전한 거리에서 머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느 날, 남편이 조심스레 마음을 고백했다. 나는 겁이 난다고 말했다. 그 말을 솔직히 표현하면, 거의 ‘거절’에 가까웠다.

그때 남편은 이렇게 제안했다.

“30대 중반까지 네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들만 해왔다면,

이번에는 나랑 함께 네가 잘하지 못하는 걸 해보면 어떨까?”


친구로 지내며 서로를 관찰해 온 시간 덕분일까.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출근 전 이른 새벽, 공원에서 조깅을 시작했다.
사랑의 힘이었을까. 운동이라면 질색이었던 내가 새벽 5시면 저절로 눈이 떠지곤 했다.

뛰는 것을 특히 싫어했던 나였는데, 어느새 남편과 나란히 공원 길을 달리고 있었다.

2년 동안 함께 운동하며 주말마다 마라톤 대회를 찾아다녔다.
함께 뛰는 동안, 그는 내 평생을 맡기고 싶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 내가 그에게 고백했다. “좋아한다”라고.

우리 두 사람에게 러닝은 관계의 시작을 열어준 다리가 되어주었다.


결혼을 하고 딸아이가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러닝과 멀어졌고, 다시 심장이 뛰는 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러던 작년 가을. 배우자 비자가 거절되면서 우리는 서로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때 내 불안은 최고조로 치달았다.

‘나를 견디는 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러닝화를 꺼내 집 근처 강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뛰는 동안만큼은 가파른 호흡과 무거운 다리 때문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불안이 멈추는 시간, 오직 내 호흡에만 집중하는 시간.

러닝을 마치고 나면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했던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의 러닝 인생이 다시 시작되었다.


영국에 와서도 나는 거의 매일 뛰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고통과 불안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뀌기 위해서, 나는 달려야만 한다.


지난주엔 공원에서 러닝 하던 한 할아버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가 떠난 후부터 혼자 러닝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내는 살아 있을 때 함께 달리는 것을 정말 좋아했지만, 그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함께 많이 달리지 못했다고 했다.


“공원을 뛸 때면 아내가 웃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요. 그게 좋아서 계속 뛰게 돼요.”

그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와 함께 달린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이렇게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구나 싶었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발자국처럼 남아
누군가의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것.


나는 다시 천천히 공원 길을 걸었다.
오늘도 뛰고, 내일도 뛸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발을 내딛는 이 반복 속에서
나는 매일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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