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여전히 미숙합니다.

폭망 한 학부모설명회

by 잉글맘

제4화. 여전히 미숙합니다.

폭망 한 학부모설명회


나는 4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생계를 꾸려가시는 부모님에게 4명의 자녀들은 바쁜 농번기에 일손을 거들 수 있는 무료 일꾼들이었다. 방학 때가 되면 늘 해야 하는 농사일이 가득했고, 부모님과 4명의 자식들이 한 팀이 되어 돌아가는 구조여서 아프다고 꽤 병을 부릴 수도 없는 처지였다.


자라면서 딱히 공부를 해야 할 이유도, 내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하고 싶다는 동기부여도 생기질 않았다. 나는 외모도 공부도 그렇게 뛰어나지 않은 중간에 낀 둘째였다.


그러던 내게 고1 겨울방학.

친구들이 영수 학원에 간다길래 일을 하기 싫어 부모님께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며 학원등록을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한번 고집을 피우면 말릴 수 없는 나의 성격을 아셔서 돈을 주시며 등록을 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의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순간이 왔다.

그때 등록한 영어학원에서. 내가 마주한 선생님은 너무 카리스마가 있으신 분이셨고, 나는 영어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영어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


나는 공부방을 사업기획하면서 아이들이 내가 영어학원에서 박호식 선생님을 만나 영어의 세계로 이끌려 들어간 것처럼 아이들의 인생에 우리를 만나서 영어를 좋아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영어가 즐거웠던 경험이 켜켜이 쌓이면 본격적으로 입시공부를 할 때 힘들어져도 아이들이 이겨낼 힘이 생긴다고 본다.


남편도 영어공부에 있어서 즐거움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영국에서 밴드부 활동, 축구, 외국어 배우기 등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을 찾는데 우선순위를 두는 환경에서 자라서였을까 늘 Are you enjoying it? 를 끊임없이 나에게 물었다. 심지어 설거지, 화장실 청소 할 때도 그런 질문을 받으면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책임감으로 하던 집안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다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남편은 아이들이 학습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스스로 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생기도록 환경을 조성해줘야 하고, 영어를 게임으로 연결하여 자연스럽게 말하기가 많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어 했다. 강압적으로 지식 정보를 전달하는 강의식 중심의 수업이 아이들에게 전혀 영어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공부방의 철학은 우리 둘 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즐거움으로 잡았다.

우리는 아이들이 영어와의 관계를 잘 맺도록 도와주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우리의 모토는 영어와의 첫 단추 긍정적으로 끼우기!


이제 공부방의 방향을 정했으니 가르칠 대상과 교재선정, 커리큘럼을 정할 차례였다.

남편은 교육청에서 영어선생님들을 연수시키는 베테랑 트레이너이지 않은가? 사실 대상을 정할 때 가장 많이 심적으로 힘들었다. 남편은 대화가 어느 정도 가능한 중. 고등학생, 대학생 또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고 싶어 했다. 그 대상으로 수업을 할 때 가장 자신감도 있고, 만족감도 높았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은 영, 유아들이 많았고, 남편이 원하는 대상으로 할 경우 동네에서 학습자를 찾기가 쉽지는 않아 보였다.


수업할 남편이 원하는 대상과 주변 상권분석을 통해 가장 학습자 모집에 유리한 대상을 문서로 정리해서 우리는 결정에 앞서 서서히 의견을 좁혀갔다. 결국 남편이 본인의 티칭 만족도보다는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유, 아동 대상으로 결정했다.


수업할 대상을 결정했으니, 무엇으로 가르칠 것인지로 넘어가 보겠다. 많은 교재들을 분석하고 가장 마음에 드는 말하기 시리즈 Incredible English로 결정했다. 커리큘럼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교재레벨에 맞춰 3개 반을 구성하여 일단 학부모설명회를 통해 우리를 알리는 계획을 세웠다.


거실에 모인 10여 명 남짓의 학부모님들.

책상 위에는 영어회화 책 시리즈가 놓여 있고, 남편이 영어를 설명하면 내가 통역을 하며 설명회를 진행해 갔다. 우리가 함께 영어를 배우면 영국 현지에서 배우는 영어를 경험할 수 있고 아이들이 정말 영어를 좋아하게 만들어드려요~! 그것이 우리가 첫 학부모설명회 때 했던 말이다.


어설픈 설명이 끝나고 질문시간. 한 어머니께서 물으신다.

1년 정도 배우면 어느 정도 영어 말하기를 할 수 있어요?

또 다른 분이 물으신다. 레벨이 세 개인데 3년이 지나면 그다음은 어떤 걸로 배우나요?

또 다른 분은.. 한 달에 배우는 영어단어는 어느 정도 되나요?


사실 앞이 깜깜했다. 초보인 우리들에게 계량화, 도식화를 할 수 없는 미숙한 부분들이 처절하게 보였다.

등에 굵은 땀방울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마지막으로 설명회가 끝난 후 나가시면서 한 분이 말씀하셨다.


별 것 없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별 것 없었지만 있어 보이게 포장하려 했지만 그게 안 되었던 우리의 첫 번째 학부모설명회. 며칠 동안 악몽에 시달리며 실패자가 다시 일어서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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