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린 속도로, 다시 저를 읽고 있습니다.
“그림책은 아이에게 설명하기 위해 읽기 시작했지만, 정작 위로를 받은 쪽은 저 자신이었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그림책을 펼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림책은 늘 ‘아이들의 것’이었고, 제 삶에서는 이미 지나간 세계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다섯 살 아들을 출산하고 육아를 시작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바뀌었습니다.
처음 그림책을 다시 손에 쥔 이유는 온전히 아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말문이 트이고,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들려주어야 할까’라는 고민이 늘 따라왔습니다.
그 답 중 하나가 바로 책이었습니다.
아들을 위해, 아들의 교육을 위해 그림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욕심도 많았습니다.
당근마켓을 통해 누군가 나눔으로 올려둔 그림책을 받아오고,
다 읽고 나면 다시 다른 가정으로 나눔을 하기도 했습니다.
좋다는 책이 있으면 직접 구매하기도 했습니다.
그저 ‘이 책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 하나로
그림책을 고르고, 쌓아두고, 다시 정리하는 시간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변화가 생겼습니다.
책을 고르는 기준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육적인지, 유명한 지보다 ‘이 이야기가 지금 우리 아이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이 장면을 함께 읽으며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저는 어느새 그림책을 아이보다 먼저 읽는 어른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의 옆에 앉아 책을 펼치고 있었지만 사실은 제 마음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짧은 문장 앞에서 멈춰 서고, 단순한 그림 한 장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으며,
이유 없이 마음이 먹먹해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림책은 아이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 읽기 시작했지만 정작 위로를 받은 쪽은 저 자신이었습니다.
어른이 되며 애써 외면해 왔던 감정들,
말로 꺼내지 못했던 마음들이 그림책 속 한 장면에 조용히 놓여 있었습니다.
육아는 늘 바쁘고 정신없으며, 정답이 없는 일의 연속이지만 하루의 끝,
아들과 나란히 앉아 그림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세상이 잠시 느려지는 순간이 됩니다.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저는 ‘아이의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 숨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른이 된 뒤 다시 그림책을 펼치게 된 이유는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저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림책은 아이를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어른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는 창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도 아들과 함께 같은 페이지를 넘기며 조금 느린 속도로, 다시 저를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