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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인희 Oct 06. 2020

아이 앞의 섬-2

다우 배와 맹그로브가 있었다.

이제 곧 두 살, 아이의 이름은 라무다. 받아 적는 데 고생 좀 할 법한 작명을 한 지도 8년이나 됐다. 신혼여행으로 다녀 온 섬 이름이다. 우리는 그곳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라무(Lamu)라 부르자고 5초 만에 합의했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마을버스 같이 이곳 저곳에 서는 경비행기를 타고 두어 시간 남짓 들어가야 하는 곳. 지도를 웬만큼 확대하지 않는 한 보이지 않는 작은 섬, 라무. 스와힐리 문화의 초기 정착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아직까지도 이슬람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마사이마라 초원에서 사파리를 마친 뒤 이 섬에서 쉬는 게 우리의 일정이었다. 당장 지구가 멸망한대도, 오늘 잡은 고기로 밥상을 차리고 한가로이 물가를 유영할 것 같은 이들이 사는 곳. 우리가 기억하는 라무 섬의 모습이다.


무엇이든 느려지는 마법 가루라도 뿌려놓은 듯 바다 결도, 사람도 느긋하다. 조금만 건드려도 훅하고 밀려나가는 다우 배가 수평선을 벗삼아 둥둥 떠다닌다. 발길 들여놓는 이 누구든, 무지근했던 속엣것 가볍게 비워낼 수 있으리라. 우리도 섬의 대세에 따라 한없이 느려졌다. 닷새 동안 두 번 수영하고, 열 번 정도 낮잠을 잤으며, 네댓 번 주인이 다른 배를 탔다.



다우(Dhow) 배는 돛과 바람만으로 동력을 얻어 나가는 라무 전통 돛단배다. 과거 라무 섬이 동아프리카 해상무역의 중심지였을 때부터 고기잡이와 교통수단의 역할을 해왔다. 우린 다우 배를 타고 일몰을 즐기는 투어를 신청해 섬을 둘러싼 맹그로브 군락지까지 다녀왔다. 물속으로 뿌리와 열매가 자라는 기묘한 식물들이 깊은 잠을 자는 것처럼 숨죽이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 그 아들의 친구로 보이는 이가 선원이었다. 모터가 달리지 않은 배만 다녀 물결은 꿀처럼 미끄럽고 탐스러웠다. 배에서 내릴 때 팁을 조금 주었다. 고맙다는 표현을 하면서도 팁을 주지 않아도 우릴 욕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돈을 주머니에 넣고서 곧장 돌아서지도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 했다. 젊은 친구에게 너희 라무 섬에 계속 있을 거냐 물었다. 이렇게 배타고 흘러 다니면 걱정이 있어도 없는 듯 살 수 있어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호객행위를 하면서도 랩인지 노래인지를 흥얼거리던 젊은이들. 우리가 거절하면, 본인도 그럴 줄 알았다면서 같이 콜라나 마시자고 건배하는 웃긴 녀석들. 헤어지기 전엔 사진이라도 찍자며 턱을 치켜들던 '쿨내' 진동하던 투박한 무리들이 라무 섬을 지키고 있었다.


작은 섬 안엔 오래 전부터 그들만의 방식으로 지은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집은 산호와 맹그로브 목재로 만든다. 스와힐리, 아라비아, 페르시아, 인도, 유럽의 건축 양식이 독특하게 뒤섞여 있다. 섬의 모든 길은 미로 같다. 좁고 구불거리면서도 어딘가로 얽히고설켜 뻗어나간다. 골목이 비좁아 차가 다닐 수 없다. 배를 제외한 교통수단은 당나귀뿐이다.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른다. 당나귀 전용 병원도 있다. 라무 섬에는 사람보다 당나귀와 고양이가 더 많이 사는 듯했다. 골목마다 이들이 버티고 있었다. 당나귀는 딱히 묶여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밤이면 자유의 몸이 되어 날뛰는 발굽 소리가 곳곳에 울려 퍼졌다. 슬픈 건지 신이 난 건지 알 수 없는 기묘한 울음 소리를 냈다. 이슬람 사원에선 새벽 4시부터 기도 시간을 알렸다. 그 즈음이면 울음도 잦아들곤 했다. 내 눈엔 엇비슷하게 보였지만, 주인들은 기가 막히게 자신의 당나귀를 알아봤다.



우리가 빌린 집엔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옥상이 있었다. 산들 바람이 지나다녔다. 푹 꺼진 커다란 소파에 앉으면 뭘 해도 나른했다. 번갈아 낮잠만 자던 우리의 동선은 고작 십 분 거리인 쉘라(Shela) 해변까지가 거의 다였다. 오가는 길엔 골목에 딱 하나뿐인 상점을 지나야 했다. 구멍가게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음료수와 과자, 간단한 식료품 몇 개만 들여놓고 히잡 쓴 여인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우린 매번 물건을 사면서도 별다른 말을 건네지 못했다. 히잡이 어색했던 것 같다. 길모퉁이마다 고운 모래 뒤집어 쓴 까만 아이들이 누런 우리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쳐댜봤다. 지금이라면 말도 걸고 사탕도 주고 그랬을 텐데. 이십 대의 나는 잠보(Jambo), 하고 인사만 겨우 했다. 그 아이들, 지금쯤 다우 배를 끌기도 하고, 이른 결혼도 하고 그랬겠지 싶다.


'라무'의 뜻이나 어원은 알려진 게 없다. 언젠가부터 라무라 부르기 시작했고, 섬을 닮고 알라를 믿는 사람들이 그곳에 산다. 그러니까 그저 라무다. 아이가 제 이름 뜻을 궁금해하면 뭐라 말해줄지 가끔 생각한다. 맹그로브 나무가 바다에서 잠자고, 그 나무로 만든 집에 사는 사람들이 꿀같이 반짝이고 미끄러운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곳이라 해볼까. 내 엉뚱한 대답을 듣고 아이가 도화지에 라무를 그려주면 좋겠단 생각을 잠시 해본다. 라무야, 라무야. 엄마, 엄마. 우린 하루에 백 번도 넘게 서로를 부른다. 이렇게 찾는 것도 많이 물렁해지는 때가 오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라무는 온전히 라무가 되어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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