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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인희 Oct 06. 2020

아이 앞의 섬-3

거의 정반대의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누군가는 알고 있을까?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은 나와는 거의 정반대의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가끔씩 찾아와 내 심장을 들썩이는 지난 기억들이다. 비현실이다. 그 속엔 그리움과 함께 노을 같은 환상이 번져 있다. 


육지에서 나고 자란 이에게 섬은 실제와는 동떨어진 곳이다. 현실엔 대입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서 움직이는 게 대부분이다. 제주에 산다고 다를 것 없다. 일상은 길가의 낭만적인 야자수나 흐드러진 꽃잎, 눈이 시리도록 파란 바다와는 상관없이 굴러간다. 


이제 와 인터넷으로 찾아 본 라무 섬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적과 반군이 종종 출몰해 여행경보가 내려지기도 했고, 중국 자본으로 석탄화력발전소가 지어진다는 기사도 보인다. 물론 라무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한다. 8 년 전에도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쉬는 이가 태반이라 했다. 처자식이 딸린 이들은 몸을 쓰거나 여행객 시중을 들며 겨우겨우 주머니를 채우고 있었다. 다우 배를 타던 그 청년은 별종이었을 수도 있다.



제주로 온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남편이 직장을 옮겼고, 사무실이 제주에 있었다. 이직 소식에 '앗싸'를 외쳤지만, 모험을 하기엔 너무 어린 아이가 있다. 아이가 불안정한 환경에서 유년기를 보내길 원치 않는다.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 그의 사무실은 서울과 마찬가지로 정글이다. 다만 버텨내려 최선을 다할 거라 곱씹는다. 출퇴근 길에 중산간 도로를 달리며 구름을 보는 일, 회사를 나와 보내는 자연 속 여유로움은 무척 달콤하기 때문이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일과 육아로 보낸다. 가끔은 사은품 때문에 장바구니를 무겁게 채운다. 집에 와선 쓸모 없는 그것들을 분리 수거하는 바보 같은 일도 한다. 1+1 앞에선 손이 먼저 반응한다. 무섭게 번식하는 집안일 더미 속에서도 살 것은 계속 생긴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면 뭐라도 돈 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아이는 아직도 새벽에 자주 깬다. 잠과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한 달에 일주일 정도는 우울하고 화가 많이 난다. 미친 여자처럼 길에서 아이에게 소리지를 때도 있다. 그럴 땐 어떻게든 바다로 나가보려 한다. 아이는 바다가 반짝일 때마다 까르르 웃는다. 섬의 제멋대로인 날씨는 지질한 나 같아 좋고, 대부분의 감정에 자연은 뭐라도 답한다. 내가 끊임없이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임을 반복해서 깨닫게 된다. 그 사실에 안도한다.



평일의 한적한 해안을 가면 홀로 섬이 된 사람들을 자주 본다. 그들은 바다를 앞에 두고도 보지 않는다. 그저 곁에 두고 있다. 각자가 하나의 물줄기이자 파도가 될 수 있는 지점에 서있다. 누구나 가장자리이며 변두리다. 저마다 하나의 객체이자 섬이 된다.



언젠가 아이가 현실을 벗어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내비칠 때, 이 글을 보여줘야겠단 마음을 가져본다.


네가 탐하는 비현실의 세계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넘실대는 청보리 밭에, 새빨간 동백꽃이 뚝뚝 떨어진 이름 없는 골목에, 온종일 웅크리고 잠을 자는 것 같은 맹그로브 뿌리 같은 것에 있다. 답을 모를 땐 가끔은 구름 너머에 그 비슷한 것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말해주면 좀 고지식해도 괜찮은 엄마다울까? 어떤 엄마가 되면 좋을까 고민하다 '모서리'라는 단어를 택했다. 혹시나 하며 사전에서 찾아보니 제주 방언이 있다. 모가 난 서까래(지붕의 뼈대를 이루는 나무)라는 뜻이다. 그래, 나는 라무의 모서리 같은 사람이 되는 게 맞겠다. 반듯하고 고르진 않지만, 지붕을 받쳐주는 뼈대 같은 존재.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 섬처럼 느긋하고 즐겁게 살라고 지어준 이름, 라무야. 나도 그런 마음으로 너와 자라고 싶다. 꽃 피면 계절 바뀌고, 바람 불면 비도 다녀간다. 어느 때든 우린 멈춰서 그것들을 바라보자. 웃자라지 않고 느릿느릿 흘러 다니자. 볕에, 바람에, 나부끼며 말라가는 얇고 너른 담요 자락을 바라보자. 여기, 지금, 네가 아직 어린 섬의 모서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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