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살아가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촬영감독 Jan 11. 2017

보여지는 것과 보여주는 것

대답하지 않음도 대답이 될 수 있으며,

선택하지 않음도 선택이 될 수 있다.


정확한 이유가 없음도 어찌 보면

무엇보다 정확한 이유가 될 수 있다.


내가 여기에 머물러 있음도 어찌 보면

그 무엇보다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퇴근 후 친구 놈을 만나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했다.

일 년여의 긴 여행을 마치고 다시 직장생활을 이제 막 시작한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이놈아 이제 정착한 거야? 다시 안 나가고?"


"모르지, 언제 다시 또 휙 나가게 될지. 난 단지 오늘을 사는 거야. 내일은 내일 살자고"

하며 소위 "쿨하다"라는 식으로 대답을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쿨하다"는 식의 어법을 좋아라 하지 않는다. 그건 지극히 화자의 표현일 뿐

청자는 결국 그 말에 공감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감의 부재로 인해 '쿨하다'는 표현이 생긴 건 아닐까?)


그렇게 '공감력 없는' 나의 대답 뒤로 친구의 잔소리가 한참 동안 나의 귀를 두드려댔다.

여하튼, 친구의 수많은 잔소리를 정리해보자면

"너도 이제 직장도 자리 잡고 가정도 꾸릴 생각 해야 하지 않겠냐"라는

내 어머니의 속마음을 대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보이니? 별 생각이나 뚜렷한 계획이 없이 사는 것처럼 보여?"

"응, 이놈아 너도 나처럼 정착해야지. 언제까지 그리 뱃사람처럼 살래?"

(뱃사람.. 친형에 이어 두 번째 듣는 꽤나 충격적인 표현이다.)


그렇다. 나라는 사람을 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러했고,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겠지 라고 생각했다.

따뜻한 커피는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렸고, 우리는 자리를 일어나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또 다른 따뜻함을 찾아.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보여지는 것과 보여주는 것의 차이는 무얼까?


한량 같은 나의 모습 속에

누구보다 치열함은 있을 것이고


정확한 이유가 없음 속에도

뚜렷한 이유가 있을 것이며,


너의 물음에 대한 침묵도 때론 칼끝 같은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나를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