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라파즈, 2017년
볼리비아 들어가면 한 번쯤은 장염을 겪는다는 말이 있다. 남미에 가면 설사는 피할 수 없으니 항생제는 필수라는 말도 자주 듣긴 했지만 생명과학도로써 항생제 남용은 용납할 수 없었다. 항생제는 짐에서 빠졌다.
볼리비아의 첫 도시였던 우유니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나에게 우유니는 사막에서 사진 찍기 좋은 날씨를 며칠 동안 기다릴만한 도시가 아니었다. 그래도 맛있는 건 많아서 좋았다. 볼리비아여서 맛있는 김치볶음밥, 계란후라이, 치킨, 피자 등등. 제일 맛있었던 건 우유니를 떠나는 날 마지막 끼니로 먹은 (무슨 고기로 만든 지 모르는) 햄버거였다.
우유니에서 온갖 걸 다 먹고도 배탈이 나지 않은 나는 거만해지기 시작했다. 다들 고생하는 고산 증세도 없는 나는 나를 적응의 왕이라 칭했다. 공포영화에서 제일 먼저 죽는 캐릭터는 거만한 캐릭터다.
라파즈로 가는 버스는 지옥 그 자체였다. 지대가 높은 데다가 사막을 지나가는지 버스 안은 몸이 덜덜덜 떨릴 정도로 미친 듯이 추웠다. 중간쯤 가선 바퀴에 문제가 생겼는지 버스가 연기로 찼고, 도로에 멈췄다. 최소 한 시간은 버스 밖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그래도 불행하지만은 않았다. 버스 안에는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발 냄새가 있었다. 죽도록 추운 버스 안에서 아주 작은 희망이었던 모포까지 포기하게 했던 발 냄새였다. 모포로 앞자리와 우리 사이의 확산을 최대한으로 막았다. 당연히 소용은 없었다. 후각이 마비될 때쯤 되면 다시 후각 귓방망이를 후려치는 냄새였다. 이 정도 복선이었으면 라파즈에서 바로 떠났어야 했다.
라파즈에 도착하자마자 시장에 가서 현지인이 많은 음식점에 들어갔다. 이 나라에, 공간에 섞이고 싶을 때 현지인이 많은 음식점만큼 효과적인 건 없다는 생각에 사람이 제일 많은 음식점을 골라서 옆 사람이 먹고 있는 이름 모를 무언가를 주문했다. 엄청 큰 닭다리에 감자, 검은 감자(이건 아직도 뭔지 모르겠다)가 들어간 수프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