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서울, 인왕산
백수여서 등산할 날씨도, 요일도, 시간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중충한 평일, 애매한 오전으로 선택했고 계산대로 사람은 많이 없었다. 경복궁역에 내려서 인왕산 자락길을 따라 황금 호랑이상을 찾아갔다. 은근한 오르막이어서 그런지 땀도 은근히 나기 시작했다. 호랑이상에서 왼쪽으로 꺾고 긴가민가하면서 길을 걸어 들어가니 금방 입구였다.
왼쪽에 한양도성을 끼고 아주 천천히 올라갔는데도 5분 만에 도심이 아래에 깔렸다. 왜 인왕산이 인스타그램 피드에 자주 떴는지 단번에 이해됐다. 5분 등산으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산은 많이 없다.
초반엔 잘 정비된 계단이 쭉 깔려있었는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길이 험해졌다. 갑자기 경사가 급해지는 구간이 있었는데 앞 선 사람이 한숨을 내쉬었다. 신발을 보니 컨버스였다. 한숨이 나올만했다. 밧줄에 매달려서 올라가야 하는 구간도 있는데 타잔이 된 기분이었다.
이런 계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 볼 때마다 신기하다. 산 전체가 화강암이어서 그런지 위로 올라갈수록 흙보단 돌이 많아졌다. 도성을 계속 따라가다 보니 금방 정상(338m)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부터 정상까지 딱 30분 걸렸다. 정상 쪽에 험한 구간이 있어서 난이도가 아주 낮은 산은 아닌 것 같은데 걸린 시간을 생각해보면 난이도를 낮다고 해야 하나 헷갈린다. 확실한 건 컨버스보단 러닝화(등산화까진 아니더라도)가 더 나은 선택이라는 거다. 짧고 굵은 산행이었다.
경복궁역에서 시작하는 제일 무난한 코스로 올라왔는데, 내려갈 때는 다른 코스로 내려가 보고 싶어서 부암동 쪽으로 내려갔다. 사실 부암동으로 향하는 길인지는 모르고 그냥 도성을 따라내려갔는데 부암동이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는 야경을 보러 가고 싶은데 그때는 부암동에서 시작하는 코스로 올라가야겠다. 부암동에는 맛있는 치킨집이랑 맛있는 빙수집이 있으니까.
버스를 타고 은평구까지 넘어가서 맛있는 오마카세에 맥주까지 마시고 집에 와서 뻗었다.
백수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