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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May 09. 2023

이대로 도태되는 건 아닐까

챗 GPT가 글을 써주는 시대에 작가로 산다는 건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있냐는 질문만큼 어려운 질문이 바로 좋아하는 작가가 있냐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많이 보는 편은 아니다. 서점에 가는 건 좋아하지만, 서점 한구석에 앉아서 책 한 권을 독파할 정도의 독서광은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 책은 레퍼런스의 한 종류다. '이 사람은 이런 단어를 쓰는구나, 이 문장은 좀 참신한데?' 정도로만 쓰이지, 책을 쌓아두고 읽지는 않는다.


일단 좋아하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 뭐 이 정도는 너무 유명하고 진부한 수준의 답변이라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최근에 좋아하게 된 글은 박찬용 에디터의 글이다. 박찬용 님이 쓰고 계신 요기레터와 앤초비 북클럽의 애독자라고 혼자 마음속으로만 외치고 있다. 요기레터는 요기요와 박찬용 에디터의 협업으로 만드는 브랜디드 콘텐츠다. 앤초비 북 클럽은 박찬용 에디터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뉴스레터라 그분의 생각을 더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서 챙겨보는 편이다. 책을 잘 읽지 않는 나에게 제발 책 좀 읽어보는 건 어떨까?라고 착하게 권유해 주는 선생님 같은 레터이기도 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점심을 먹고 멍하니 '박찬용 에디터' 이름으로 보내온 뉴스레터를 확인했다. 순간 '나는 아무 의미 없는 걸 지키려는 걸까?'라는 제목에 정신이 확 들었다. 인도네시아의 한 군도에는 고래잡이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부족들이 있다. 고래를 한 마리 잡으면 부족 전체가 몇 달은 먹고살 수 있다. 그렇게 몇 천년을 살아온 부족에게 현대사회의 문명화가 찾아온다. 박찬용 에디터가 이번 뉴스레터에서 소개한 <마지막 고래잡이>라는 책의 내용이다. 


그래, 정말 어쩌면 나는 미래에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사라질 일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닐까? 순식간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작가는 멸종 위기종이다. 아직까지는 그 속도가 더디지만 분명 언젠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발 그 멸종이 부디 내 일생에서는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적어도 쓰고자 하는 마음과 펜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다른 일보다 훨씬 더 엄격한 평가 기준이 따른다는 말이기도 하다. 세상 당연한 이치다. 잘 아는 축구를 볼 때면 저마다 축구 감독이라도 빙의된 듯 한 마디씩 거들게 되지만, 룰을 잘 알지도 못하는 컬링을 볼 때면 "영미!"라고 외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서점을 가면 슬쩍슬쩍 책 몇 편을 들여다보며 '이 정도는 나도 쓰겠는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절대. 그렇게 못 쓴다. 써 봐서 안다.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에서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작가로 잘만 먹고살던데? 그건 드라마의 주인공이니까 가능하지, 우리 집에서만 슈퍼스타인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 비유하자면, 영화를 만드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영화를 보는 것은 정말 쉽다. 편안한 의자에 기대앉아서 다리도 꼬고, 딴짓도 하다 보면 영화는 금세 끝나있다.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일은 차원이 다르다. 연영과를 재학 중인 친한 지인 덕분에 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고스란히 접게 됐다. 영화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돈이다. 결국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영화가 그나마 글보다 나은 점은, 그래도 글쓰기에 비해 그 수고스러움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아직도 글을 쓰는 게 단순히 펜대를 굴리는 일인 줄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래서 참 곤란하다. 누군가는 멋있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고, 누군가는 첨단 기술을 활용한 일을 하고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멍하니 화면을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뿐이다. 나도 놀고 있는 게 아니라고,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괜히 혼자 찔려서 키보드를 더 세게 두드리기도 한다.


다행히 글을 쓰는 일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재밌다. 그래봤자 남는 것은 흰 화면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검은 글자들 밖에 없지만 내게는 이 글자들이 하나의 예술작품과 다름없다.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또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작가라는 일은 이래저래 참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그래서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정말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많이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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