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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May 20.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이유

언젠가 애매한 재능은 ‘저주받은 재능’이라는 만화를 본 적이 있다. 분명 남들보다 조금은 더 낫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은 재능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였다. 만화 속 주인공은 결국 자신이 가진 애매한 재능을 포기하지도, 계속 밀고 가지도 못 한 채 쓸쓸히 최후를 맞이한다. 물론 애매한 재능도 재능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재능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글쓰기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나름대로의 자부심도 있고, 그래도 글 좀 쓴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글은 냉정히 말하면 누구나 쓸 수 있다. 누구나 할 수 있기에 누구나 평가도 쉽게 내릴 수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은 결국 그 평가의 기준이, 다른 일보다 월등히 높다는 말이다.


글을 잘 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지만, 나는 아직도 정확하게 그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읽기 쉽다는 것인지, 재미가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내용이 좋다는 것인지. ‘잘 쓴다’라는 말이 가끔은 칭찬이 아닌 애매하게,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말처럼 들릴 때도 있다. 못 쓰지는 않지만 그래도 괜찮은 글. 내가 쓰는 글이 딱 이 정도가 아닐까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남들이 좋다고 하는 작가들의 글을 찾아보곤 ‘뭐야, 나랑 별 차이 없는데?’ ‘이 정도는 나도 쓰겠는데’라는 오만함에 몇 장 읽지 않고 책장을 덮은 경험이 수두룩이다.


그래도 글을 쓴다. 이유는 다양하다. 직장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집에서는 취미 생활을 위해, 심지어 지금은 취업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고 돈을 주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을 거냐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다. 글을 쓰는 건 이제 하나의 취미를 넘어선 일이다. 재미보다는 일종의 등산 같은 일이다.  


산을 정복하면 꼭 ‘야호~’를 외치듯이 나도 글 하나를 쓰고 나면 마음속으로 ‘야호~’를 외치기도 한다. 복잡하고 꼬불꼬불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엉켜 붙어 있을 때, 그것들을 하나하나 꼬챙이로 풀어서 잘 만든 것처럼 보이는 하나의 작품으로 다시 만들어 내는 게 내 일이다. 또 취미이기도 하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하는 걸 보면 글쓰기는 내게 이제 하나의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영역의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쓴다. ‘남들이 좋아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아요.’라고 말하기엔 너무 많은 신경을 쓴다. 구독자 수가 오늘은 몇 명이 늘었고, 조회수가 얼마나 떨어졌고. 그런 것들이 좋은 글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이제 와서 다른 취미를 찾기엔 너무 늦은 것 같으니. 당분간은 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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