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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Jun 22. 2023

떡볶이를 좋아하세요?

엄지 분식과 학교 앞 분식.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에는 두 분식집이 있었다. 엄지 분식은 말 그대로 엄지처럼 작지만 쉽게 굽히지 않는 강직한 맛이 일품인 곳이었고, 학교 앞 분식은 이름 그대로 학교 앞에 있는 곳이었다. '학교 앞'이라는 상권을 선점한 지리적 조건과 '맛'이라는 음식점의 기본적인 조건의 대결.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초등학생들은 두 분식집 모두의 손을 들어줬다. 그때의 시장 경쟁에는 복잡한 경제 논리를 뛰어넘은 어떤 낭만이 있었다.  


굳이 초등학교 시절 얘기까지 꺼낸 이유는 바로 오늘 이야기 할 음식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학교 앞 분식집으로 미각을 단련한 한국의 성인들은 이제 웬만한 떡볶이에는 지갑을 열지 않는다. 찍먹과 부먹, 아아와 뜨아 등등. 음식 하면 떠오르는 그 유명한 난제들에, 어깨를 펴고 당당히 '밀떡 VS 쌀떡'이 들어가 있는 것만 봐도 이 나라에서 떡볶이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감히 소울푸드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식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떡볶이가 있다. 물론 소울푸드의 왕좌에 앉기까지 '맛이 없는 음식'이다는 오명부터, 여러 가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지만 이제 떡볶이는 누가 뭐래도 국민적인 지지를 받는 음식인 것은 확실하다. 오죽하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책까지 나왔을까. 어린 시절 추억으로만 끝났을 뻔한 떡볶이는 바쁜 현대 사회 속에서도 변화의 흐름에 누구보다 가볍게 적응하며 살아남는 중이다. 짜장 떡볶이부터 로제 떡볶이까지, 떡볶이의 변신은 무궁무진하다. 다른 음식들에 비해 소스 하나만 바꾸면 된다는 간편한 점 덕분이기도 하다.  


누구나 만들기는 쉽지만, 재료들의 미묘한 비율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라 똑같은 맛을 내기 어렵다는 것도 떡볶이만의 특징이다. 이제는 프랜차이즈의 떡볶이집의 간판들이 거리를 점령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내 입맛에 맞는 떡볶이를 찾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내가 찾은 인생 떡볶이는 떡볶이의 메카인 신당동도, 대형 프랜차이즈도 아닌 역삼역에 위치한 작은 분식 집이다. <김밥친구들>이라는 텍스트가 흐물흐물한 글씨체로 쓰여진 간판이 인상적인 이곳은, 맛만큼은 결코 흐물흐물하지 않다.


이 곳의 떡볶이는 다른 곳에 비하면 눈에 띄게 평범하다. 후추를 넣어서 자극적인 맛을 더 한다든지, 다른 곳에는 없는 비법 소스를 쓴다든지 하는 숨겨진 레시피는 없다. 딱 어렸을 때 한 번쯤 먹어본 적당히 맵고, 적당히 짭짤하고, 또 적당히 달달한 맛이다. 쉽게 말해 개성이 없다는 점인데, 오히려 그게 더 매력 포인트다. 자극적인 맛이 없는 덕분에 물리지 않고, 부담 없이 가볍게 술술 들어간다. 항상 2인분을 사들고 오기는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3인분 정도는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 맛이다. 게다가 가격도 1인분에 3천 원, 예전 추억의 가격 그대로다. 퇴근 후에 무거워진 발걸음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어주는 일등공신은 바로 이 가게의 떡볶이다. 밥은 먹기 싫고, 그래도 든든하게 무언가로 허기진 텅 빈 위장을 채워 넣고 싶을 때면 항상 이 가게를 찾는다.


누군가에게는 퇴근 후 시원하게 맥주 한 캔을 들이켜는 것이 낙이라면, 나에게는 이 가게에서 떡볶이 2인분을 포장해 쿨피스와 같이 먹는 것이 낙이다. 배도 부르고, 노트북에는 재밌는 예능이 흘러나오고, 에어컨에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나오는 걸 느끼다 보면 그날 하루도 어찌저찌 마무리됐다는 안심이 든다. 괜히 소울 푸드라는 타이틀을 붙인 게 아니다. 떡볶이를 먹는 이 순간만큼은 모두들 각자의 굴레에서 벗어나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세상 이렇게 공평한 음식이 따로 있을까. 과장 조금 해서 떡볶이 때문에 타임머신의 발명이 늦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치킨 값이 슬그머니 2만 원을 넘기고, 떡볶이도 점점 프랜차이즈화 돼가고 있는 현실이 야속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떡볶이만큼은 추억의 그 가격을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사소한 바람이 있다.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새롭고 맛있는 음식이 나와도, 결국 우리는 모두 다시 떡볶이를 찾을 테니 말이다. 이런 걸 보면 지난 13년 만에 라면 값을 인상한 오뚜기가 새삼 대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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