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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Feb 26. 2020

영화 <해치지않아> 리뷰

마냥 귀엽다고 봐주기에는

1. 영화를 고르는 첫 단계-장르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는 이유는 무수히 다양할 것이다.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해, 유행하는 최신 영화를 보며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또는 좋아하는 배우를 스크린에서 보기 위해서 등등. 그렇다면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어떨까?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 감독 또는 스토리, 심지어 포스터의 디자인까지. 매우 다양하면서도 주관적인 평가기준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평가 기준을 배제하고 필자가 생각하기에 영화를 선택하는데 가장 영향력 있는 요소는 바로 영화의 장르라고 생각한다. 관객은 우선 제일 포괄적인 기준인 장르를 고르는 데부터 시작해서 감독, 배우, 시놉시스 등 세밀한 기준으로 평가 기준을 좁혀나간다.

이러한 점에서 장르란 그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틀이자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이다. 예를 들어 시사 영화를 보러 가는 관객은 현 시국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기대할 것이고 액션 영화를 보러 가는 관객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화끈한 액션신을 기대하고 갈 것이다. 코미디 영화를 보러 가는 관객은? 당연히 웃음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을 것이다. 모든 영화가 각자의 장르에 맞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코미디라는 장르만큼 방향성이 뚜렷한 장르가 없을 것이다.

단순히 웃기면 성공한다는 이 간단하면서도 제일 어려운 공식으로 인해 한국 코미디 영화 시장은 흥행실패라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안정된 틀을 선택하는 길을 택한다. 바로 코미디와 신파의 결합을 통해 코미디 영화라는 비교적 마이너한 장르에 한국적이면서도 확실한 관객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안정적인 신파를 끼얹으면서 '신파 코미디극'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것이다.

물론 이런 신장르의 탄생이 무조건적으로 잘못됐다고 질타할 수 없다. 신생 영화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안정적인 투자를 하고 싶은 배급사들의 입김 덕에 탄생한 지극히 한국적인 장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풍토 덕에 명절만 되면 비슷비슷한 스토리로 엉킨 영화들이 무분별하게 확산되었고 관객들은 점차 이런 영화들에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다.

2. 설정형 코미디의 부활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다시 한번 코미디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은 바로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이 천만 영화를 달성한 것이다. 그동안 명절용 영화 취급을 당했던 코미디 영화가 비로소 주류 영화로 재평가를 받고 당당하게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주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극한직업>의 흥행을 시작으로 <판소리 복서>, <미스터 주>, <히트맨>등 다소 마이너 한 풀롯을 내세우는 코미디 영화가 줄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욕설이나 화장실 유머나 똥 개그, 슬랩스틱 같은 유치한 개그로 승부를 보려던 코미디 영화 대신 참신한 '설정'으로 흥행을 노려보겠다는 영화들이 등장한 것이다.


오늘 다룰 영화 <해치지 않아>또한 동명의 웹툰을 기반으로 하는 설정형 코미디 영화이다. 사람이 탈을 쓰고 동물 흉내를 내는 동물원이라는 이 비현실적인 설정을 과연 영화는 어떻게 풀어낼까라는 기대를 가지고 영화를 보게 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우선 설정형 코미디라는 장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해괴망측하고 비현실적인 설정을 납득시켜야만 한다. <극한직업>에서는 마약조직을 검거하기 위해 치킨집을 차린다는 설정을 납득시키기 위해 극 내에서 어느 정도 합당한 이유를 설명했고 이 설정을 완성시키기 위해 마약반 멤버들이 치킨 요리 대결을 펼치는 듯 나름대로의 세부적인 설정 또한 놓치지 않았다.

3. 성의와 의지가 없는 연출

<극한직업>이 이렇게 하나의 설정을 납득시키기 위해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추가한 것에 비해 <해치지않아>는 이러한 노력들이 보이지 않는다. 수습 변호사였던 주인공이 시위대 한 번 막아준 걸로 로펌 대표의 눈에 띄어서 동물원을 떠맡게 되었다는 이 시작부터 말도 안 되는 설정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다. 마치 이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조차 이런 만화적 설정을 어떻게 스크린에 풀어낼지 감당이 되지 않는 듯 영화는 위험한 시도를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예측 가능한 플롯에 서민들의 일자리를 뺏는 '대형 기업'과 사기를 일 삼지만 각자의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딱한 처지인 '서민들'의 대립구조를 내세운 채 신선한 소재를 무난하게 마무리하려고만 한다. 배짱 있게 설정을 밀어붙이기는커녕 자극적인 요소를 배제한 채 영화 전체를 밍밍한 맛으로 만들어버렸다.

영화의 제일 핵심 소품이라 볼 수 있는 동물탈 또한 상당히 퀄리티가 많이 떨어진다. 인간이 동물탈을 쓰고 연기한다는 설정이 먹히기 위해서 최소한 동물탈이 진짜 같아 보일 정도로 공을 들이거나 아니면 아예 철판을 깔고 허접한 동물탈을 쓴 채 끝까지 연기하는 블랙 코미디적인 방식으로 연출을 하거나 했어야 했는데 영화는 아예 그럴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적법한 절차를 밟아 동물원을 매매하는 대기업 대신 결론적으로 봤을 때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사기를 치는 동물원 직원들을 옹호하는 연출 또한 도덕적으로 봤을 때 옳은 일인지도 의문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다소 위험요소가 있는 설정이라는 재료를 과감하게 칼질하지 않고 늘 하던 대로 하던 방식으로 아주 무난한 음식을 만들어 버렸다. 연출적인 방식에 있어서 조금만 더 과감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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