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혁 Aug 08. 2021

영화 <모가디슈> 리뷰

이념의 갈등이 낳은 또 다른 화합

영화인들에게 있어 북한은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이다. 결국 애국주의나 한민족 중심주의로 항상 마무리되는 소재의 한계성은 아쉽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영화가 매해 쏟아지고 있는 것은 북한에 대한 적대적 또는 호의적 관심의 결과물인 것은 틀림없다.   


대중영화 속 북한은 크게 두 가지로 묘사된다. 애국주의적 성향을 가진 영화에서는 집단으로 그려지는 이데올로기적 '악'으로 표현되는 반면, 한민족 중심주의로 향하는 영화에서는 개인으로 그려지는 하나의 '인격체'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남북이 힘을 합쳐 외부의 세력에 대응한다는 설정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등장하는 북한군들이 각자 저마다의 개성과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인간'으로 등장하는 반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 <연평해전>에서는 철저히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대변하는 안타고니스트로 등장한다.


<모가디슈> 이런 이분법에 속하지 않기 위해 공을 들인 영화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념의 갈등-동포애로 극복하는 서사 대신, 재난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나약한 인간상으로 남북을 표현한다.


영화  등장하는 북한은 분명히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존재이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전쟁이라는 외부적 위협에 의해 생존을 도모하려는 하나의 개인으로 그려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라는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통해 영화 속 철천지 원수였던 남과 북의 대사들은 극적으로 화합하게 된다. 정치적 사상 대신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이라는 원초적 문제로 회귀한 이 둘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재앙이 들이닥쳐서야 비로소 이데올로기라는 색안경을 벗고 개인과 개인으로 서로를 대면하게 된다.


서로를 경계하는 불편한 분위기에서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깻잎을 잡아주는 장면은 이념과 이념 속에, 집단과 집단속에 바로 하나의 개인이 있음을 보여준다. 식구라는 뜻이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라는 뜻인 점을 생각하면 인격적인 소통이 '식사'라는 장치로 비유되는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한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북한이라는 소재를 떠나 영화의 가장 큰 줄기는 바로 집단의 갈등과 개인의 희생이다. 영화는 계속해서 왜 집단과 집단의 충돌에서 희생되는 것은 개인이며, 이념이라는 것이 생존의 문제로 이어질 만큼 중요한 요소인가?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있다.


영화 속 모가디슈 전투의 참상은 우리에게는 한국전쟁, 혹은 군사독재의 탄압이 연상되는 비극이다.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시체가 즐비한 밖을 바라보는 림용수 대사의 시선을 통해, 두 이익집단의 충돌로 인해 개인이 희생해야만 했던 비극은 어쩌면 우리가 걸어왔고, 가까운 미래에 다시 걸을 수도 있는 과거라며 영화는 경고하고 있다.


또한 남북에게 재앙을 불러일으킨 소말리아 정부나 반군은 절대적 '악'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이 비극이 일어난데는 우리의 잘못도 있다고 말한다. 자신들은 소말리아를 위해서 왔다며 연설하는 한대사의 목소리가 총알이 빗발치고 무고한 생명이 죽어가는 현장에서 울려 퍼지는 장면은 우리 또한 이 재앙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소말리아에게 있어 우리 또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대변하는 또 따른 '집단'일뿐이며 우리의 이익을 위한 행동은 결국 누군가의 피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성공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총기를 난사하는 아이들은 또 어떤가. 내 편을 만들기 위한 적을 만들어내는 상황에서 과연 이 이데올로기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한 사람은 있을까, 아이들에게는 그저 이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그저 하나의 놀이 같은 것에 불과할 텐데 말이다.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실제로는 백기가 아닌 태극기를 흔들었다는 사실은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보여준다. 전작 <군함도>가 역사 왜곡 영화라는 뭇매를 맞은 것을 의식해서 인지 일부러 태극기 대신 중립적인 의미를 담은 백기로 수정한 류승완 감독은 아이들의 눈을 가리는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우리인지 아니면 타인이지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데올로기라는 색안경에 갇혀 서로를 바라보지 못했던 남북이, 그들이 걸어왔던 과오를 저지르는 또 다른 집단의 갈등으로 인해 자신들의 과거를 바라보고 화합한다는 결말은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집단과 집단으로서의 대면이 아닌 집단속에 묻혀있는 개인과 개인이 마주하고 서로를 받아들여야 제2, 제3의 모가디슈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화합이라는 정치적 메시지 대신 철저히 개인의 생존을 위한 이데올로기의 희생이라는 메시지를 택한 류승완 감독은 화려한 액션 씬 대신 현실감 있는 모습으로, 진부한 신파 대신 배우들의 담담한 표정 연기와 연출로 훌륭하게 전작의 오점을 씻어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해치지않아>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