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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Sep 05. 2021

영화 <미나리> 리뷰

동화되는 이방인, 융화되는 이방인

현대 사회는 우리를 이방인으로 만들고 있다. 하나의 유행에 편승하지 못하면 금세 도태되고, 자신의 의견이 주류임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편을 만들고 자신의 의견을 정론화 시키려 애쓴다. 현실에서의 유대감 대신 온라인 상에서의 교류가 더 중요하고, 실질적으로 받아들여진지는 오래이다. 온라인에서는 익명성이라는 가면 아래 모두가 마음껏 자신의 다름을 드러내지만 오프라인에서는 누군가 정해준 기준이라도 있는 듯 조용히 발맞춰 '같음'대로 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이방인이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숨기거나 아닌 척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영화 <미나리>의 삶도 그렇다. 제이콥 가족의 유일한 보금자리는 트레일러다. 분명 여기에 속해있지만 속해있지 않은 집,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그들의 삶과 닮아있는 공간이다. 아무리 영어를 쓰고 물 대신 마운틴 듀를 마셔도, 세상은 이 가족을 자신과는 다른 분류로 바라본다. 유일하게 이 가족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인물은 정작 자신의 커뮤니티에서조차 괴짜, 이방인 취급을 받는 '폴'이라는 미국인이다. 


이방인을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이방인밖에 없다는 현실을 반증한 듯한 설정이다. 이 두 명의 이방인이 힘을 합쳐서 하는 일은 농사다. 병아리 감별사부터 농사일까지, 모니카와 제이콥은 특별한 기술을 요구하는 직업 대신 오직 시간과 끈기로 얻어낼 수 있는 직업을 택한다. 이들의 직업은 미국에서의 이들의 삶과 맞닿아있다. 하나의 주류에 속하기 위해 시간을 쏟고, 하나의 집단에 속하기 위해 끈기 있게 버텨나간다. 이것이 제이콥과 모니카가 선택한 '뿌리내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정작 순자라는 새로운 이방인이 등장하자, 이방인의 처지였던 가족들은 자신들이 당했던 것처럼 순자를 이방인으로 대하기 시작한다. 


입에 욕을 달고 살고, 쿠키도 만들지 못하는 순자는 데이빗과 케이트에겐 '일반적인 할머니'가 아닌 유별난 인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순자는 이들과는 다르다. 다름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제이콥의 가족이 하나의 주류가 되고 싶어 하는 이방인이라면 순자는 이방인임을 인정하고 자신이 들고 온 미나리 씨앗처럼 스스로를 이 낯선 땅에 퍼뜨리려 한다. 


제이콥의 가족이 저들과 동화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방인이라면, 순자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은 채 융화되는 이방인이다. 이 생존 방식의 차이는 문제 해결 방식에도 차이를 보인다. 


극 중 순자와 데이빗의 갈등은 순자만이 갖고 있던 이방인의 특성으로 인해 해결된다. 혹독하게 데이빗을 나무라는 부모님과는 달리, 애정으로 데이빗을 포옹하는 순자는 결국 데이빗의 마음을 얻어내고 자신의 위치를 당당하게 인정받는다. 그렇게 순자라는 미나리는 척박한 야생에서도 마침내 뿌리를 내리고 자생하기 시작한다. 


한편 제이콥의 농사일이 드디어 빛을 발하고 성공을 앞에 둔 시점에서 제이콥과 모니카는 갈등한다. 성공과 가족이라는 갈림길에 선 두 인물은 결국 서로를 수용하지 못한 채 각자가 옳다고 믿는 길로 향하려 하지만 순자의 실수로 인해 제이콥의 농작물이 다 타버리자 아이러니하게도, 서로가 분열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순간에 이들은 극적으로 화합한다. 


건강이 좋지 않은 데이빗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뛰어가 순자를 붙잡고, 가족들 또한 삿대질 대신 서로를 포옹하며 곁에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한 채 앞만 보고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반성한다. 미신이라며 거부했던 제이콥은 결국 다우징 로드를 통해 수맥을 찾고, 다시 농사를 시작하며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각자 이방인으로서 생존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으며, 어느 하나가 옳은 방법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낯선 땅에서 어떻게든 뿌리를 내리려는 그들의 삶을 조용히 바라보며 마치 하나의 농사일처럼 적당히 거리를 둔 채 숭고한 자세로 지켜보기만 한다. 때로는 멀리 있는 것보다 곁에 있는 것을 바라볼 때 우리의 인생은 한 발짝 내디딜 힘을 준다고 말하는 영화, <미나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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