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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Oct 17. 2021

영화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 리뷰

기생에서 공생, 공생에서 마침내 한 몸이 되어

'Badass' 또는 멋있는 악당. 아마 베놈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수식어가 아닐까 싶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철저히 계획하고 직접 실행에 옮기는 <라이언 킹>의 스카나,  두말할 필요 없이 항상 최고의 빌런으로 언급되는 '조커'처럼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빌런들은 전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에 첫 등장하는 '베놈'이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졌던 것은 바로 이런 공통점에 부합하는 빌런이자, 열등감에 찌든 에디 브룩의 모습이 어딘가 '전능한 슈퍼 히어로를 바라보는 무력한 우리'의 모습을 닮아있기 때문이다. 

베놈의 첫 등장은 마치 성경에 등장하는 '뱀'과 같았다. 어둠 뒤에 숨어 인간을 유혹하고 결국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존재. 뚜렷한 형체도 없는 검은빛의 존재가 인간을 숙주로 삼아 자신의 욕망을 채운다는 캐릭터 설정은 한창 '멋진 빌런'에 빠져있던 대중들에게 짙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언제나 범접할 수 없는,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르는 빌런으로 남아있을 것 같던 베놈은 과감한 노선변경을 택한다. 성경 속의 뱀 대신 데드풀의 B급 정서와 유머를 택한 것이다. 소니 픽처스가 키를 잡은 이후로 <베놈>은 유혈이 낭자하는 안티 히어로의 모습 대신, 관람등급을 낮추고 베놈과 에디 브룩을 동등한 관계를 넘어선 '친구'같은 관계로 재설정하며 관객들의 진입장벽을 대폭 낮췄다. 


이 과정에서 베놈의 잔혹성을 상징하는 액션의 수위를 대폭 낮추고, 극악무도한 빌런을 겨우 말 많고 '착하지만 모자란' 친구로 만들어 버리며 캐릭터성을 해쳤다는 혹평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베놈> 시리즈가 보여준 성공을 보면 관객 풀을 넓히기 위한 어느 정도 영리한 판단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전작 <베놈>에서 베놈과 에디 브룩의 관계가 기생에서 공생으로 마무리됐다면, <베놈 2>는 이 둘의 관계를 더 진전시키는데 초점을 맞춘다. 감독 앤디 서키스가 인터뷰를 통해 원래의 제목이 <베놈: Love will tear us apart>였다고 밝혔듯이, 사실 연쇄 살인범과 외계인이 등장하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놀랍게도 '사랑'이다. 


평면적으로는 에디와 옛정이 남아있는 앤의 관계, 또는 메인 빌런인 클리터스와 프랜시스의 '사랑'이야기를 말하고 있지만 영화는 에디와 베놈의 관계에 더 집중하고 있다. 영화 초반부 에디와 베놈의 사이가 틀어지고 앤이 다시 등장하며 앤과 에디의 관계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반대로 앤은 철저히 베놈과 에디를 연결해주는 역할로만 등장한다. 


이번작의 메인 빌런 클리터스도 마찬가지이다. 우연히 얻게 된 '카니지'라는 존재를 철저히 자신의 사랑을 이루는데 이용할 뿐, 카니지와 어떤 정신적인 유대감을 갖거나, 서로를 이해하는 듯한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카니지가 자신의 연인인 프랜시스를 공격하려는 행동을 취하자 클러티스는 카니지를 거부하며 저항하기도 한다. 이렇게 <베놈 2>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을 뜯어보면 모든 동기는 바로 '사랑'이다. 


베놈과 에디의 관계도 그렇다. 영화 초반부 베놈은 에디를 떠나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다른 누군가를 찾아 나서지만 결국 그 누구도 베놈을 감당하지 못한다. 이 부분을 '사랑'이라는 주제에 맞춰 조금은 섹슈얼하게 바라본다면 에디는 유일하게 베놈을 육체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결말부에서 이 부분은 조금 더 노골적으로 묘사된다. 에디가 베놈에게 '방금 나 사랑한다고 말했어?'라고 반문하는 장면은 앞으로 이 둘의 관계가 단순한 파트너를 뛰어넘어 한 몸 같은 관계로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에디가 베놈을 규칙으로 다스리고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겼다면 이번 작에서는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이자, 자신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다. 

사실 바로 이점 때문에 카니지의 존재감이 조금은 약한 편이기도 하다. 물론 등장부터 괴기스러운 형체와 화려한 CG, 웅장한 연출로 화려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기 무색하게, 후반부터는 그저 베놈과 에디의 사이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도구적인 빌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존재로 전락한다. 무엇보다 카니지라는 빌런이 빛나지 못했던 이유는 탄생의 빈약한 서사와, 숙주인 클리터스의 캐릭터성에 있다. 


단순히 연쇄살인마 클리터스가 심비오트를 흡수해 탄생했다고 설명하기에는, 베놈을 향한 카니지의 무조건적인 적대감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또한 신나게 살육을 즐기던 클리터스가, 자신의 연인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카니지를 거부하는 장면은 클리터스가 카니지와 완전히 결합해 막강한 전투력을 뽐낼 것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다소 맥 빠지는 장면 중 하나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클리터스의 행동을 이해하기엔, 클리터스가 잔혹한 연쇄 살인마라는 점도 한 몫한다. 


영화는 클리터스의 입을 빌려 '사람들은 연쇄 살인마를 좋아한다'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이는 범죄를 혐오하면서, 동시에 저널리즘의 미끼로 이용하는 에디와 대중들의 이중성을 겨냥한 말이다. 하지만 영화 또한 자신들이 지적한 그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오히려 범죄자에게 공감하기 어려운 서사를 부여하려고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인 것을 생각하면 불쾌함까지 느낄 수 있는 설정이다. 마치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성을 통해 '인간은 모두 똑같아. 연쇄 살인범도, 영웅도'라며 관객들에게 억지로 공감을 강요하는 듯하다.

이런 점을 떠나 우디 해럴슨의 연기는 주목할만하다. 차분한 광기에 휩싸인 눈빛이나, 불필요하게 동작이 큰 연기 대신 조용히 관객을 압도하는 모습은 전작의 라이엇과는 대비되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반면 클리터스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나오미 해리스의 프랜시스는 초능력을 지닌 특수한 빌런으로 등장한 것이 무색하게, 후반으로 갈수록 붙잡힌 히로인 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미약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마치 이번 작에서 앤이 베놈과 에디의 관계 회복을 위한 캐릭터로 이용된 것처럼 프랜시스 또한 카니지와 클리터스의 관계에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로만 쓰이고 버려진다. 


결국 카니지도, 앤도, 클러티스 조차도 베놈과 에디의 완전한 결합을 위한 배경 인물들로 등장했다는 점을 보면 전작부터 지적을 받아온 부실한 서사 구조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액션'에 초점을 두고 영화를 보면 그럭저럭 팝콘무비용으로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쿠키영상을 빼면 볼 게 없다.'라는 대다수의 평을 보면 <베놈 2>는 그저 마케팅의 승리 또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인기에 묻어가려는 얄팍한 작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액션 신이나 CG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전작보다는 훨씬 뛰어난 결과물이지만, 전작에서도 지적된 서사적인 측면에서 부실함을 극복하지도 못하고,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하는 스토리 구조가 계속된다면 이후의 성공은 보장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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