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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Dec 05. 2021

영화와 현실이 부딪히는 소리가 만드는 불협화음

영화 <인질> 리뷰

영화에 현실의 농도를 얼마나 담을 것인가, 아마도 감독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 일 것이다. 현실감이 들면서 동시에 감독의 창의력이 제한되지 않는 이야기를 스토리에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블레어 위치>처럼 여러 연출적 장치와 마케팅 기법을 통해 관객들이 영화의 허구적 이야기를 현실실로 믿게 만들거나, 대부분의 실화 기반 영화들이 그렇듯 사실에 기반한 스토리에 영화적인 가공을 첨가할 수 도 있다. 


어떤 방법을 택하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이야기를 '납득'시키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관객에게 이 영화가 허구인지, 사실인지 아니면 적절히 섞인 결과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객들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공감하지 못하는 순간, 영화는 결국 영화로서의 방향성을 잃은 채 의미 없이 부유할 뿐이다. 

<인질>이 택한 방식은 관객들이 영화를 현실처럼 몰입할 수 있도록 국민배우 황정민이라는 존재를 스크린으로 그대로 가지고 오는 방법이었다. 탑배우 황정민을 연기하는 황정민이라는 하나의 설정만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끌기엔 충분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현실을 끌고 들어 온 이 영화 속 공간을 치밀하고 섬세하게 구성해내는 일뿐이다. 


흔히 범죄를 다루는 영화들의 큰 줄기는 비슷하다. 악을 쫓는 주인공과 그에 맞서는 악. 얼핏 보면 진부한 이 서사에 관객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해하기 쉽고, 재밌기 때문이다. 복잡한 플롯 대신 '악을 쫓는 선'이라는 소재는 관객들이 굳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나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관객들이 편하게 앉아서 선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도록 납득만 시켜준다면, 영화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또한 이런 영화들은 재밌다. 예로부터 구전으로 전해진 이야기들 중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야기들만 보더라도 권선징악이나 영웅의 서사를 담은 이야기들이 태반이다. 우리의 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런 소재들은 그래서 끊임없이 다른 형태로 재가공하여 스크린에 걸리곤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바로 재가공된 요소들이 식상하지 않게, 늘 새롭고 신선한 설정이나 시각을 부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질>의 패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영화가 시작한 지 8분 만에 납치당한 황정민을 보는 관객들은 당연히 이런 거물을 납치한 납치범들에게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국민배우 황정민이라는 실제의 인물을 스크린에 가져온 이상, 그의 존재감을 뛰어넘지 못하는 악역을 본다면 영화의 흥미도는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존파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 모습의 인질범들은 이런 관객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과하게 개성이 부여된 캐릭터와, 경찰들을 무능하게 만드는 사기적인 능력의 범인들을 등장하는 순간, 영화가 담아내려고 했었던 현실성은 순식간에 깨져 버린다. 영화의 인질범들을 보며 처음 든 생각은 바로 황정민의 절제되고 억눌러진 연기에 비해 지나치게 과하고, 몸짓이나 눈빛 같은 비언어적인 요소 대신 언어적인 요소에 지나치게 기대어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억이 넘는 차주를 골라 납치하고 돈을 뜯어 낸다는 이들의 동기 또한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이들은 어떻게 뭉치게 되었는지 영화는 지나가는 경찰들의 몇 마디로 그 설명을 대신하며 악의 디테일한 부분은 일부러 배제한 채, 관객들을 한시라도 빨리 황정민과 악의 대결이라는 서사구조로 억지로 이끌고 가려고 한다. 

진부한 악역 외에도 영화는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특성을 전혀 살리지 못한 채 평면적인 캐릭터로만 남겨둔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로 여성 캐릭터들이다. 납치범 중 하나인 샛별은 영화의 스토리에 필요하지도 않은 노출신이나 성적인 대사를 남기며 섹스어필 용 캐릭터로밖에 기억에 남지 않는다. 황정민과 같이 납치된 소연의 존재 또한 이들의 악행을 강조하기 위한 캐릭터로 등장할 뿐 영화의 서사에 어떤 영향을 주지 않은 채 붙잡힌 히로인으로서 마무리된다는 점도 아쉽다. 


납치된 황정민과 외부 세계를 보여주는 교차 편집도 영화의 긴장감을 전혀 살리지 못한다. 경찰과 황정민의 행동이 서로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 마치 따로 진행되고 있는 별개의 사건 둘을 억지로 갖다 붙여놓은 듯한 어색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결국 영화는 황정민 혼자 악을 무찌르는 기존의 황정민 식 액션 영화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스토리를 택한다. 현실적인 면을 강조하며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어내려고 했던 <인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현실성에 발목을 잡히며 그저 그런 영화로 마무리된다. 현실과 영화 속 허구가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하고 서로 부닺히며 불협화음만 남겼던 영화, <인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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