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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Jan 31. 2022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우리의 영웅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을 보고

모든 것이 빨라진 시대다. 생산도 빠르고, 소비도 빠르다. 어제 누군가가 만들어낸 제품이 유행에 뒤쳐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쉴 틈 없이 새로운 물건이 시장을 대체하는 이럴 때일수록 클래식의 변하지 않는 가치는 더 돋보이기 마련이다.   


단순히  시대를 풍미하는 작품이 아니라,  세대를 거쳐서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작품들이 있다. 지금 떠오르는 작품이라고 한다면,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영화나 <스타워즈>, <스타트랙> 같이  장르의 역사를, 하나의 문화를 대변하는 작품들이 있다. 제목만 들어도 영화의 메인 테마가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이 되고, 낯선 이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문화적 유대감을 느끼게 하는 영화들. 이런 영화들의 가치는 과거의 향수와 뒤섞일  더욱더 깊어진다.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을 만난  아마 초등학생 시절 영어학원에서였던  같다. 우리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방학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에 수업이 따분하기만 했고, 선생님의 교육적인 해결책은 바로 영화였다. 샌드맨이 누군지, 베놈과 스파이더맨이  싸우는지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하늘을 활공하고, 악당들과 맞서 싸우는 스파이더맨을 보고 아이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스파이더맨과의  만남이었다.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은 낯선 땅에서 만났다. 필리핀에 살기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됐을까, 영화관에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를 볼 기회가 생겼고 영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탓에 영화의 내용을 이해나 했는지도 모르겠다. 토비의 스파이더맨의 비해 앤드류의 스파이더맨은 좀 더 하이틴 무비의 주인공스러운 능글맞음과, '쿨함'이 가미된 캐릭터였다. 어렸을 때 만난 토비의 스파이더맨이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려봤을 영웅의 모습이었다면, 앤드류의 그것은 조금은 노력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하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선망의 대상과도 같았다.


그렇게 두 스파이더맨을 흘려보내고 성인이 되어서야 마침내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을 만났다.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불완전성'이다. 앞선 두 스파이더맨들보다 훨씬 앳되고, 소중한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떠나보내야 했던 영웅. 누구보다 더 아픈 성장통을 겪어야만 했던 소년. <홈커밍>과 <파 프롬 홈>을 지나 마침내 <노 웨이 홈>으로 마무리된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3부작은 그 어떤 스파이더맨이 겪은 고통보다 가장 고통스럽고, 잔혹하다.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스파이더맨이 마주한 윤리적인 논제는 팬들의 몫이다. 중요한 건 소중한 사람들, 재정적인 지원 등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야 비로소 스파이더맨이 우리가 알던 스파이더맨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좋은 이웃 스파이더맨’이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파이더맨의 정체성은 서민형 영웅이라는 캐릭터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가난하고, 이렇다 할 지원도 없이 쫄쫄이 슈트 하나만 입은 혈혈단신으로 악에 맞서는 모습은 그래서 더 처량했고, 더 애절하게 다가왔다. 사실 스파이더맨이 MCU 유니버스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면서 스파이더맨을 탄생시키는 중요한 변곡점인 벤 삼촌의 죽음이 생략되고, 그 빈자리를 아이언맨이 채우면서 우리가 알던 스파이더맨과 조금은 괴리감이 있는 모습이 완성됐다.


토비의 찌질함과, 앤드류의 성장통 대신 톰의 파이더맨은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풍요로웠다. 그리고 < 웨이 > 개봉했다. < 웨이 > 스파이더맨은 역대 시리즈  가장 비참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고, 모든 지위와 명성을 내려놓은 스파이더맨은 다시  몸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 역대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 가장 비참한 결말이지만, 희망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우리가 알던 스파이더맨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오랜 팬이라면 향수를, 새로 유입된 팬이라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스파이더맨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남기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시리즈만이 할 수 있는 스토리이자 결말. 이렇게 스파이더맨은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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