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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May 01. 2022

햄버거여도 좋아

'오늘 뭐 먹지?' 


메뉴를 고르는 이 순간만큼은 나라도, 이념도, 사상도 없이 전 국민, 아니 전 세계인이 하나가 된다. 메뉴 선정에 있어서 가장 흔한 타입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음식도 신중하고 꼼꼼하게' 타입이다. 어떤 종류의 음식을 먹을지부터, 근처에 맛집이 있는지, 가격은 어느 정도인지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따지는 깐깐한 스타일이다.  


또 다른 하나는 '무엇이든 좋아! 빨리 배를 채울 수만 있다면'이다. 이들에게 사실 이 정도 고민은 사치다. 나 역시 이 타입의 사람으로서,  오늘 선택한 메뉴는 햄버거다. 건강에 대한 우려나, 살이 찌지 않을까라는 걱정은 살짝 접어둔다. <배고프다- 밥을 먹는다> 대략 이 정도의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비건이니, 맛집이니 하는 고민은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가성비다. 햄버거야말로 우리가(무좋파) 추구하는 가성비에 가장 적합한 음식이다. 


이런 햄버거의 핵심은 바로 '번'이다. 패티라는 대답을 기대했다면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치아가 가장 먼저 맛볼 수 있는 (나는 치아도 미각이 있다고 생각한다.) 햄버거의 가장 겉 표면은 바로 번(빵)이다. 아무리 맛있어 보이는 버거여도 번이 푸석하거나, 식감이 조금이라도 기대와 다를 경우 곧바로 실망감이 허기보다 앞서게 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번은 맥도널드의 번이다. 참깨가 솔솔 뿌려진 겉모습은 두말할 필요 없이 합격. 자, 이제 맛을 볼 차례다. 푸석푸석해 보이는 비주얼이지만 적당히 습기가 차서 수분기가 가득하고, 음, 무엇보다 쫄깃하다. 마치 사극에서 왕이 한 술 뜨기 전에 은수저를 음식에 가져다 대는 것처럼, 버거의 번이 맛있으면 혀의 미뢰들은 그제야 걱정을 내려놓고 마음껏 이 버거를 맛 볼 준비를 한다. 


패티는 그다음 포인트다. 가장 큰 선택지는 치킨과 소고기. 내 선택은 대부분 치킨이다. 치킨 패티의 대표적인 선발주자들은 맘스터치의 싸이 버거와 KFC의 징거버거. 이 두 버거들의 공통점은 산더미만 한 치킨 패티다. 턱이 빠질 정도로 최대한 입을 벌리고 번과 뒤섞이는 치킨 패티의 맛을 한바탕 느껴본다. 음! 버거를 먹는데 교양은 사치다. 토핑이 새서 입가에 묻고, 소스로 손이 뒤범벅되는 건 누구에게나 공평한 일. 부자도, 가난한 나도 이 순간만큼은 입가에 소스를 듬뿍 묻힌 채로 양껏 버거를 씹는다. 


햄버거에 빠질 수 없는 친구들도 와 있다. 단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장을 조금만 보태면 단품은 사실 편의점에서 파는 냉장 햄버거와 다를 바가 없다. 겉은 화려할지 몰라도 먹고 나면 뭔가 빠진 듯 헛헛하다는 소리다. 얼음이 조금 녹아 살짝 밍밍한 듯 단맛이 느껴지는 콜라와 바삭함과 눅눅함 사이에 있는 감자튀김. 이 둘이 있어야 버거는 비로소 완전해진다. 셰프의 소울이나 장인 정신은 잘 모르겠지만, 이 버거에도 아르바이트생들의 정성이 담겨 있다고 확신한다. 사실 우리가 먹는 음식들의 모든 원천은 자연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셰프의 오성급 요리가 될 수도, 패스트푸드점의 수많은 햄버거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선택지가 낫냐고 말할 수는 없다. 요리는 취향이며, 취향은 상대적이다. 누군가는 비싼 돈을 내면서 수제버거를 찾아야 만족하겠지만 패스트푸드의 공평한 공정과정을 거친 똑같은 맛의 햄버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나처럼! 서울에서 먹었던 그 햄버거의 맛을 먼 부산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 만으로 소울푸드의 조건 중 하나 정도는 달성한 셈이다.   


그래서 오늘도 햄버거를 먹는다. 모두들 각자의 이유로 식탁이나, 침대 위, 혹은 바닥에 앉아 끼니를 해결한다. 각자의 취향이 담긴 그릇, 종이 박스, 플라스틱 상자를 비워두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아! 집밥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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