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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May 23. 2022

무지개 너머에는 무엇이 있었나

영화 <주디> 리뷰

힙합을 좋아하지만, 가끔 어렸을 때 들었던 노래를 찾아 들을 때가 종종 있다. 어렸을 때 봤던 만화영화를 어른이 돼서 다시 보면 괜히 마음이 편해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오늘 고른 노래는 영화 <맘마미아>의 사운드트랙. 아이러니하게도 <맘마미아>라는 영화를 단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대신 영화에 나오는 노래는 전부 들어봤다.


신기하게도 어렸을 적 우리 집에는 <맘마미아>의 DVD 대신 OST 앨범만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맘마미아>는 생각보다 훨씬 유명한 영화였고, 그 노래들을 부른 그룹의 이름이 ABBA라는 것도 그제야 알게 됐다. ABBA의 명곡들 중 어린 시절 나의 픽은 'Dancing Queen'도, 'Honey, Honey'도 아닌 'Money, Money, Money'라는 노래였다.


돈, 돈, 돈. 이유는 단순했다. 단지 그 노래의 가사가 마음에 들어서. 부자들의 세상에서 돈을 위해 발버둥 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의 가사가 딱 우리 집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나에게 영화 <맘마미아>는 'Money, Money, Money'다.  

나에게 <맘마미아>가 Money, Money, Money였다면, <오즈의 마법사>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였다. <맘마미아>와 달리 다행히 <오즈의 마법사>는 볼 기회가 있었다. 도로시가 오즈에 도착하고, 영화가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는 순간 컬러 영화 시대의 개막을 알렸던 것처럼, 도로시가 노래를 부르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즈의 마법사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로 자리 잡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로시 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은 주디 갈란드고, <오즈의 마법사>를 찍으면서 스튜디오에게 약물 사용과 흡연을 강요받았다는 건 전혀 알지 못했다. 주디의 나이는 당시 16살이었다.  


도로시, 성공한 아역 배우, 20세기 가장 성공한 미국의 엔터테이너. 이 모든 타이틀의 주인공인 주디 갈란드의 일생을 다룬 영화 <주디>의 시작을 여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주디 본인이 아닌, 프로듀서의 대사다. 


"너보다 예쁜 아이는 널렀어. 하지만 너에게는 그들에게는 없는 한 가지가 있지. 바로 그 목소리야." 


불행 중 다행인지 그의 말은 옳았고, 도로시 대신 한물간 스타가 된 주디는 이제 목소리로 먹고살고 있다. 돈을 내지 못해 아이들과 함께 호텔에서 쫓겨나, 별거 중인 남편의 집으로 향하는 주디의 얼굴엔 더 이상 도로시라는 소녀는 없다. 그녀에게 남은 건 빚과 엄마라는 책임감뿐이다. 

<주디>에는 두 가지 세상이 존재한다. 세트장과 현실. 세트는 모든 것이 철저하게 계산된 완벽한 세상이다. 동선도, 의상도, 심지어 행동과 말까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 주디가 자유를 향해 뛰어든 수영장조차 사실은 세트장의 일부였다는 걸 생각하면 이 세상이 얼마나 주디를 억압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세트장에서는 모두가 그녀를 좋아하고, 모두가 그녀를 주목한다. 이곳에서 주디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원하는 그 누구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되지는 못한다. 


다른 세상은 현실이다. 이곳에서의 주디는 자유롭다. 사랑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세트장과 달리 이 세상의 주디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다. 약이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이들과 지방으로 공연을 다니며 간신히 먹고사는 왕년의 스타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영화는 이 과거의 세트장과, 지금의 현실을 오고 가는 연출을 통해 주디의 행동에 이유를 부여한다. 사실 '이유'보다 '변명'에 가깝다. 과거를 인물의 깊은 감정을 묘사하기 위한 연출로 쓰기보다는, 단순히 이런 과거의 아픔들을 안고 있는 인물이기에 우리가 이해를 해야 한다는 변명거리로 삼기 바쁘다.


영화 속 주디는 정을 붙이기 어려운 캐릭터다. 약에 취해 해롱거리고,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라는 핑계로 자신이 놓지 못했던 과거의 영광을 찾아 헤다. 


세트장의 화려함도, 현실의 자유로움도 포기할 수 없었던 주디는 결국 이 두 세상의 경계와도 같은 '무대'를 선택한다. 무대 위에서만큼은 주디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도로시'가 된다. 그러나 무대를 내려오는 순간 주디는 그저 나약한 개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인물이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한 불만은 전부 주변인들로 향한다. 주디가 다시 스타가 되지 못한 것은 모두 남편의 탓이고, 기껏 자신을 찾아준 공연장에서는 행패를 부린다. 

영화는 주디가 이런 현재를 살고 있는 이유를 단순히 과거에서만 찾는다. 이런 주디의 과거를 알 턱이 없는 주변인들이 그녀를 이해하고, 심지어 아무런 감정적인 유대나 교감도 없이 주디를 향해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모습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기 영화라기엔 너무 단순한 구조의 플롯이, 드라마라기엔 개연성이 떨어지는 연출이 발목을 잡는다. 주디라는 '시대가 낳은 비극적인 인물'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심도 있게 분석해 내지 못하고 단순히 우리가 그리워했던 '그 주디'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 것 말고는 별다른 것이 없다.   


결말부에서 지쳐 쓰러지는 주디를 위해 다 같이 떼창 하는 장면은 분명 감동적이지만, 이 하나의 명장면을 위해 지나치게 많은 것들이 생략된 느낌이다. 개연성이 생략된 채 관객들이 울기만 하면 된다는 한국의 신파극과 다를 바가 없다.  


시도는 좋았지만, 결국 남는 건 주디라는 사람 자체의 이야기보다 무대의 주디뿐이다.  마치 내가 <맘마미아>를 'Money, Money, Money'라는 노래 하나로 기억하듯, 주디 갈란드라는 사람을 도로시라는 역할로, 하나의 노래라는 단편적인 시선으로만 기억하던 실수를 반복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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