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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Jul 15. 2022

켄드릭 라마라는 래퍼

어쩌다 보니 힙합을 좋아하게 됐다. '어쩌다' 수능 만점을 받았다는 말 같은 느낌의 겸손이 아니라, 순수한 사실이다. 그나저나 진짜 수능 만점을 받으신 분이라면 축하드립니다. 그건 진짜 대단한 일이니까요. 


고등학생 때 스마트폰 대신 들고 다녔던 공기계에는 다이나믹 듀오의 전집이 들어있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힙합이라는 장르가 순간의 취향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갈 습관 같은 게 됐던 게. 국힙과 외힙부터 시작해서 붐뱁, 트랩, 얼터너티브 힙합, 재즈랩, 싱잉랩 등등. 좋아하기는 하지만 사실 아직도 잘 모른다. 그렇게 유튜브를 찾아봐도 붐뱁과 트랩의 차이가 뭔지 아직도 모른다. 그래서 드럼을 치는 게 붐뱁이라는거지?라는 답답한 소리만 하고 있다. 무지한 사랑만큼 오래가는 게 없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오랫동안 힙합을 좋아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가장 좋아하는 외힙 아티스트는 켄드릭 라마. 켄드릭 라마는 이런 아티스트다. 아무 생각 없이 비트에 몸을 맡기고 있다가, 가사를 보고 그 의미를 아는 순간 '헉'하게 되는 아티스트. 최근 발매된 5번째 앨범 <Mr. Morale & The Big Steppers>에서는 이 노래가 제일 좋았다. 'Purple Hearts'.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고스트 킬라의 울부짖는 래핑은 소름이 돋는다. 그 가사의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문득 노래 제목이 궁금해졌다. 켄드릭 라마라면 단순히 <보라색 심장>이 아닌 뭔가 심오한 뜻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구글링을 해봤다. 연관 검색어: purple heart meaning bts. 켄드릭 라마를 찾다가 BTS의 위엄만 다시 느끼고 갔다.  


그래서 왜 그 노래가 제일 좋냐고 물어본다면 음악이 좋다는 말밖에 딱히 할 말이 없다. 그 영화가 좋은 이유는 설명할 수 있는데, 왜 노래가 좋은 이유는 설명하기 어려운지 모르겠다. 비트가 좋다, 아니면 가사가 좋다. 이 초라한 두 개의 선택지에서 항상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일단 'Purple Hearts'가 좋은 이유는 비트다. 사실 이번 앨범은 내 기준에서 조금 어려운 앨범이었다. 지난 앨범 <DAMN.>처럼 귀에 팍팍 꽂히는 부분을 찾기가 힘들다. 이쯤이면 이렇게 진행되겠지?라는 얄팍한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켄드릭은 아니? 그거 아닌데?라며 자꾸 딴지를 건다.  


엄청 실험적인 (이것 역시 내 기준) 트랙도 있다. 'We Cry Together'라는 곡인데, 이 노래 덕분에 평생 들을 욕은 다 들은 것 같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가사의 절반 이상이 'fxxk'이다. 남녀가 죽일 듯이 싸우다가 결국 탭댄스로 화해하는 스토리가 아주 인상적인 곡이다. 물론 탭댄스가 인상적인 건 아니었고, 스킷처럼 끝날 수 있는 설정을 아예 하나의 트랙으로 만든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듣고 있다. 마치 오디오 드라마를 듣는 것처럼 정말 버라이어티한 트랙이다. 꼭 이어폰을 끼고 듣길 바란다. 

  

'Die hard'라는 트랙도 좋았다. 적당히 여유 있는 비트도, 나는 다이하드라면서 너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반전 있는 가사도 좋다. 지난 앨범의 'Love.' 라는 트랙이 생각났다. 이럴 때 보면 참 로맨틱하기도 하고, 이래서 내가 좋아하지. 


오랜만에 플레이리스트를 업데이트했다. 새로 산 옷들을 옷장에 걸 때 느낄 수 있는 설렘이 여기서도 통한다. 내일은 어떤 노래를 들으면서 출근할지 생각하면 조금이나마 기대가 된다. 지하철을 타기 전, 타는 중, 타고난 후의 음악을 모두 정해둔다. 타기 전에는 그래도 신나야 하니까 'HUMBLE.'이 좋을 것 같고, 타는 중에 들을 노래로는 이미 'Purple Hearts'를 정했다. 내리고 나서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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