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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혁 Jul 15. 2022

무슨 예능 좋아하세요?

요즘 들어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줄여서 <꼬꼬무>. 드라마도 아닌 준교양 프로그램을 이렇게까지 챙겨보게 될 줄은 몰랐다. 밥 먹을 때도,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도, 자기 전에도 본다. 예능을 보며 마냥 생각 없이 깔깔대기엔 조금 죄책감이 들고, 그렇다고 교양 프로그램을 보기엔 정말로 인생의 낙이 영영 사라질 것 같아서 찾은 나름의 차선책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재밌다는 사실이다. 친구들이 썰을 풀어주는 것처럼 철저히 반말로 진행되는 설정. 썰을 푸는 사람도 풀 맛이 나는 게스트들의 찰진 리액션이 일품이다. 너무 과몰입해서 봤는지, 가끔 <꼬꼬무>에 게스트로 나가게 되면 어떻게 리액션을 해야 할지 걱정이 된다. 남들 다 알고 있는 역사적인 인물인데 나만 몰라서 멀뚱멀뚱 보고 있는 게 화면에 잡히지는 않을지, 그 모습을 본 방송국은 '옳다구나' 하면서 클로즈업 한 내 얼굴에 큼지막한 물음표를 띄어놓지 않을까 걱정된다. 다행인 점은 아직까지는 섭외 메일이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마음 편하게 시청자의 입장이 되어 즐기기만 하면 된다. 


제일 인상 깊었던 편을 꼽자면 '정치깡패 이정재'편이다.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이다. 우선 직업이 깡패인데, 이정재는 싸움을 못했다. 공부 못하는 학생, 허슬 안 하는 래퍼들은 많이 봤어도, 싸움 못하는 깡패는 또 처음이다. 그 대신 이정재는 머리가 좋았다. 전투력을 잃고 지력을 얻은 셈이다. 나름대로 판을 짜고, 판을 벌리는 능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정재의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찾아보시길. 


최근에 빠진 또 다른 예능은 <유퀴즈>다. 퀴즈를 맞히면 근처 ATM에서 바로 100만원을 뽑아준다는 초기 설정 대신, 이제 완전히 토크쇼로 자리 잡은 모양이지만 그래도 퀴즈는 여전하다. 유퀴즈가 좋은 점은 각자의 일상에도 특별함이 있다는 걸 알려준다는 것이다. 유퀴즈에는 유명 연예인만 나오지 않는다. 박사님이 나올 때도 있고, 웹툰 작가나 평범한 여고생이 나올 때도 있다. 그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전혀 다른 우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가끔씩 너무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그나저나 요즘 참 볼거리들이 많다. 구독하고 있는 OTT 서비스만 벌써 6개다. 이렇게 볼 게 많은데, 죽기 전까지도 다 볼 수 없는 예능이나 드라마가 있다는 건 좀 슬프다. 평생 존재조차 모르다 사라질 명작들이 있진 않을지 걱정된다.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 같은 크리에이터의 입장에서, 만든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한 번쯤은 슬쩍이라도 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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