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플랫폼
친구의 권유를 마다하고 외면하다가 그 친구가 꾸준히 글 쓰는 걸 보고 브런치에서의 친구 모습이 어떨지 궁금해서 합류하게 된 브런치라는 곳. 나는 원체 긴 글을 쓰지 못해서 [아니야, 난 어울리지 않아. 아마 적응도 못 하고 바로 튕겨 나올걸?] 이렇게만 생각하다가 막상 들어와서 보니 슥슥 잘 읽히는 글이 보이고, 소재도 아무것도 아닌 것부터 대단한 것까지 또 아무렇지 않게 쓰이고, 댓글도 있어서 흥미가 생겼다.
일단 나는 어릴 적부터 약간의 기록 편집증(?) 같은 게 있어서 무조건 직접 써놔야 하고, 저장해놓고, 일기도 매일매일 썼던 애였다. 뭐 아주 어릴 적 얘기는 아니지만(그땐 그냥 다 귀찮고 노는 게 제일 좋았음). 근데 어떻게 그 글의 형태가 일종의 경험들을 지나더니 구체적인 건 사라지고 허상만 남는 글들이라 갈수록 짧아지고 단어의 반복도 없어지면서 짧은 글로 생각하게 만드는 글을 쓰는 걸로 바뀌었다. 순간의 생각을 잡아내는 한 문장 같은 글들이 좋았다. 특히 내 생각들이. 너무 나르시즘 같은가 .. 그렇게 글 형태가 시로 바뀌고 그럴수록 점점 긴 글을 쓸 때엔 집중도 못하 면서 길게 설명을 못 하게 되더니 이 모양. 거부 수준이랄까.
살다 보면 가끔 긴 글의 형태로 나의 능력을 알리거나 돈을 벌어야 하는 때가 있다. 그럴 때를 접하는 나는 항상 객관성이 사라진다. 뭘 어떻게 쓰려고 해도 잘 썼는지 모르겠고 글이 기니까 다시 검토해 보려고 해도 읽히지도 않는다. 내 정신의 문제일까, 노안인걸까, 습관된건가, 아님 내가 복기하는 걸 잘 못 하나? 그러던 차에 친구가 글을 쓰기 시작해서 성실한 독자가 된 나는 서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되었고, 소리 없는 재촉을 하면서도 [나도 해볼까?] 하는 설렘도 생겼다.
역시 긴 글을 쓴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래서 난 소설은 절대 발도 못 들인다. 그냥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서 그런지 사실 소설을 써보려고도 했다. 생각해보니 이건 아무한테도 얘기 안해봤네. 자면서 꾸는 꿈이 평범하지 않다 보니 그걸 어떻게 영화화 해보고 싶어서 대본같은 투의 글이나 소설 비슷하게도 써보려고 노력 한두 번 하고 접음. [아, 난 재능 없어] 하고 포기했다.
그러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을 갖게 되면서 워낙 특이한 직업인데다 내가 보는 걸 공유하지 못한다는 아쉬움 때문에 글을 자꾸 써보려고 노력했다. 주변 몇몇이 내가 해야 한다는 듯하게 당위성을 준 것도 욕구를 일으킨 듯. 근무하면서 글을 써야 할 상황이 몇 번 생겨서 써보기도 했다. 뭐, 20대 중반에 쓴 블로그 글은 누가 읽고 재미있다고 해주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피드백이 거의 안 돌아왔기에 n 수가 적어 신뢰할 수 없으니 버렸던 거고. 30대가 되어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 또 글을 써봐야 하나 하면서(이 생각이 일종의 관성 같이 있다. 어쩌면 인셉션처럼 뇌에 자리 잡아 기저에서부터 '아, 해야 하는데.' 싶을 수도) 그런 비슷한 업무가 주어지거나 해보라는 권유에 노력을 해봐도 쓰고 나면 내가 못볼 꼴이다. 한심해.
내 글의 요지는 "어떤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달라."나 "내가 유명해졌으면 좋겠다."가 아니다. 그냥 사랑스러운 것들 혹은 감정이 풍부해지고 생각이 많아지는 그 순간들을 같이 공유하고 싶은 거다. 그러면 사람들이(만약 읽어준다면) 읽고 나랑 같은 생각이든 다른 생각이든 많이 하면서 공감도 하고, 다른 의견으로 생각의 크기도 넓혀보고, 뭐 읽는 것만으로도 생각과 감정에 파동을 주면 좋을 것 같았다.
여튼. 먼 길을 돌아왔으나(이게 내 긴 글의 단점.. 평소에도 생각이 많아서 가지가 많고 길게 나감) 그렇게 흘러들어오게 된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날 이렇게 글 쓰게 만든 건 댓글과 좋아요와 피드 부분. 아 이런 걸 모르고 널 미리 판단해서 포기했구나, 물론 내가 글을 못 쓴다는 이유가 제일 컸지만 뭐 들어와서 남에꺼 읽기라도 할걸. 친구 글을 읽고 또 예전에 통화하면서 들었던 어떤 작가분의 댓글을 봤다. 모르는 사람인데 반갑고 또 알고 싶어서 그분의 브런치에도 찾아갔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댓글을 쉽게 잘 다는 구나] 라고 느끼면서 뭔가 나도 끼고 싶었다. 편하게 글에 대해 얘기하고 곁가지가 붙어가면서 소통하는 게 너무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나도 슬쩍 껴보려고 냅다 글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