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현 Apr 19. 2023

아침

  오랜만에 먼저 출근했다. 대단했던 야근 일정이 끝나고 기다리는 시기여서 이전에 했던 내 프로젝트를 다시 켜놓고 기분에 맞지 않는 노래를 섞어내고 있는 도중에 들린 요란한 소리에 헤드폰을 벗어보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천둥도 치더니 아침인데 어두워졌다. 웃음이 나왔다. 이런 날엔 집에서 조용히 있고 싶은데.     


 오랜만에 듣는 빗소리에 [잔잔한 음악을 틀어야지] 하고 유튜브로 즐겨 듣던 <해일> 라는 제목의 피아노 영상을 틀었다. 그리고 따뜻한 율무차를 타서 호로록 마시며 자리에 앉으니 [아, 글을 써야겠다.]하고 아무 생각 없이 적고 있다.      


 글 쓰려고 적어둔 건 많은데 항상 내 단점이 써놓은 건 다시 수정할 생각이 안 든다는 것. 치명적인 단점이라기엔 그다지 내 글이 그렇게 팔리지도 않는다. 뭐 그래서 새로이 글을 쓰고 있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 이 분위기와 감정이 너무 편안해서 어떻게든 써놔야 할 것만 같았다. 마침 일기 마냥 글을 계속 써보자는 생각이었으니.     


 그럼 어떤 글을 써볼까.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도 쓰고 싶고 그간 있었던 피곤한 일들을 쓰고 싶기도 한데 그런 일들을 쓰려면 먼저 솔직함에 관해 써야 할 것 같다.          



 한동안 나는 내 글에서도 솔직할 수 없었다. 두려움이 컸다. 나의 솔직함이 나에게 상처를 줄 수단이 될까 봐 최대한 구름처럼 감정만 알 수 있게 쓰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현실을 쓰는 데에 덜컥 겁부터 먹는 내가 돼버린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다시 노력하고 있는 거지만 본질은 솔직하지 않으려고 지난 몇 년을 외면하고 숨겨왔다는 것. 덕분에 그렇게 꾸며진 나의 아기 같은 시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 그 길이 맞다 생각하고 사실을 써서 기록하는 걸 외면했다.     


 한 번 큰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난 나를 잘 못 잡고 있었고 추스르기 힘겨워 십 년을 넘게 해오던 습관을 버렸다. 쓰고 보니 거창하지만 스무 살 때 일기에서 내 상처에 딱지를 뜯을 만한 기록들을 하나하나 찢어버리면서 딱지를 뜯고 뜯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난 일기를 쓰지 않으리라, 쓰더라도 오롯이 감정만 읽을 수 있도록 아무도 내 현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쓰리라 다짐했다.      


 한때는 보물이라 여겼던 내 기록물이 담긴 초록 상자는 애물단지로 변해 내 눈에서 멀어졌고, 임의로 주어지는 단어에 글을 쓰는 <씀>을 쓰면서 단편적으로 쓰는 것에 더 매력을 느꼈다. 원래 긴 글 못 읽는 나란 사람의 성향이 맞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참을 솔직하지 못하다가 또 사건이 생겼다. 의외로 그때의 난 침착했는데 우리 엄마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이가 주는 무게가 엄마를 자꾸 동굴로 끌어내리려는 듯 어두운 기운을 몰고 다녔다. 어쩔 땐 발랄한데 어쩔 땐 다른 사람 같았던 우리 엄마. 엄마를 그렇게 만든 상황이 나도 미안해서 삐죽빼죽 튀어나오던 그 어둠을 내가 대신 삼켰다. 그리고 바로 휴대폰을 들고 시를 썼다. 머뭇거리다가 엄마라는 단어와 냉장고라는 단어로 현실을 묘사했고, 그렇게 다시 나는 돌아가 보려고 노력을 시작했다.     


 그때 쓴 시는 지금 봐도 그때의 감정이 오롯이 느껴지지만 남한테 보여주기 쉽지 않다. 이걸 보는 사람이 어쩌면 우리 엄마한테 뭐라고 할까 봐서. 그냥 힘든 상황에 빠진 사람의 한 장면일 뿐인데. [언젠가 나이가 많이 들고 행복한 얘기들도 많이 쓰면 그땐 괜찮겠지] 했었다.     


 그게 지금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는 다시 일기로 기록을 해보려고 하고 있고, 내 기억 속에서 나쁜 것들보다도 좋은 것들을 빼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니까. 좋은 것만 나오려 하지 않으니 뭐 나쁜 것도 같이 써야지. 그리고 그게 나쁜지는 볼 때마다 다르니까. 이렇게 쓰니 또 말이 이상해지네, 어찌 됐건.      


    

 나는 지금 꽤 행복하고 만족한다. 가끔 우울하고 힘들고 벅차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나와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더 나쁘지 않다. 그래서 이 비와 잔잔한 음악에, 그리고 따뜻한 음료로 행복해지자고 글을 썼다는 결론인가 보다. 그리고 앞으로 나는 내 글을 씀에 있어 사실대로 솔직하게 적을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는 다짐도 함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