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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현 May 09. 2023

임보

60일

  남편이랑 작은 신혼집을 꾸며 살기에 적당히 익숙해질 무렵, 집 근처에 있는 큰 공원에 산책하러 나가면 보이는 반려견과 같이 걷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한때엔 나도 저랬는데, 어릴 땐 내게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잘해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었다. 남편도 본가에서 반려견을 키우면서 산책을 잘 챙겼던 사람이라 남의 우린 반려견 구경에 진심이었다.


 어느 날 나는 인스타를 보다가 친한 동생이 올린 사진에 사로잡혔다. 마침 쉬는 날이라 남편이랑 누워서 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쉬고 있었는데 너무 귀여운 강아지 사진을 보게 되었고, 그 글에는 강아지를 임시 보호할 곳이 급하다고 써져 있었다. 사실 나는 본가에 고양이들이 나이 지긋하게 있는 터라 다른 동물은 키우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남편에게도 자주 얘기하고 있었는데 임시 보호 정도는 괜찮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남편에게 물어봤다.      


“너무 귀엽지 않아?”

“...”

“임시 보호할 곳이 필요하대.”

“답은 이미 정해진 거 아냐?”     


 남편이 그렇게 말하는 게 미웠지만 어쨌든 그 동생에게 연락해서 결국 우리에게로 온 새끼 강아지. 데려오는 동안 가방 안에서 얌전히 있던 강아지는 우리 집이 낯설지도 않은지 바로 침대 위에 올라서는 남편이랑 뛰어놀았다. 그러다 오줌을 몇 번 이불에 지린 뒤로는 급하게 같이 받아온 철장을 우리 침대 주변에 두르게 되었다. 너무 같이 자고 싶었지만 아직 많이 작고 어려서 둘이 자는 침대 위에서 문제 생길까 봐 우리를 우리에 가둔 셈.


 정리하고 나서 이름을 뭐로 할까 하고 고민하다가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 색이 딱 강아지 색깔이길래 [쏠티]라고 지으면 어떠냐고 남편에게 물었다. 하겐다즈 쏠티드 캬라멜에 마침 꽂혀서 하루에 한 통씩 먹던 때였다. 그전까지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감흥이 없었고 사료 소리에만 반응하던 아이였기에 그냥 쏠티로 했다.


이름 지어준 뒤에 찍은 사진 같이 찍으려고 하니 물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쏠티와 매일 출퇴근하면서 좋은 입양처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날들을 보냈다. 쏠티를 위한 소비도 아깝지 않았는지 좋아할 만한 간식과 장난감도 자꾸 장만하게 되었다. 대부분 쏠티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다 귀엽다고 해주었다. 쏠티도 사람을 잘 반겼고 쉽게 안기진 않았지만 잘 짖는 성격도 아니었다. 차만 타면 얌전히 누워서 자고, 산책하면 동서남북 활개치고, 사료 한 알로 구르기까지 하는 정말 귀엽고 똑똑한 강아지를 우린 임시 보호하고 있었다.


 그렇게 집 뒤 공원을 산책하다가 알게 된 다른 반려견 친구들이 생기고, 쏠티에 대한 걸 물어보면서 얘기하다가 “임시 보호 중”이라는 말을 듣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몇 분은 “이런 애는 엄청 클 거라 아파트에선 못 키우지.”라거나, “이런 개는 마당 넓은 데에서 살아야죠.”라는 말로 내 마음을 무너뜨렸다.     


‘아니에요. 실외 배변만 해서 집에서 사고도 거의 안 치고, 이동할 땐 얼마나 얌전하게 있는데요.‘     

 이런 내 의견을 난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나도 그저 임시 보호 중이지 않은가. 


 쏠티를 임보하면서 사람들이 진돗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꼈고, 블랙독 신드롬도 알게 되었다. 난 원래 대형견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색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새삼 우리나라가 반려동물에 대한 얼마나 색안경이 많은지 느꼈던 때였다.     


깊은 고민에 남편과 심각하게 대화해본 적도 많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린 아직 반려동물을 키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니, 사실 난 이미 본가에 있는 고양이들에 대한 마음에 점점 쏠티를 끝까지 데리고 있을까 싶은 마음이 죄책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랬던 내 마음을 쏠티는 알고 있을까.


 쏠티를 임보하는 시간은 나에게 회사에서는 휴식기였기에 가능했다. 일종의 비수기 비슷해서 주말을 모두 쉴 수 있는 때였다. 마침 현장 가서 했던 교육도 수료해서 타이밍 좋게 한 생명을 살려보자는 생각과 이 귀여운 생명을 지나칠 수 없었던 내 욕심도 있었다. 쏠티가 나에게 오기 전까지는 임시 보호를 한다는 건 정말 대단하고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쏠티 입양처가 나타나지 않는 게 불안해진 우리는 구조하신 분과 연락하게 되었다. 내 주변에서는 그저 귀여운 쏠티가 좋은 곳에 가길 바랄 뿐, 나서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다른 임시 보호하시는 분들도 있었기에 걱정이 더해졌던 것 같다. 나는 쏠티의 입양 홍보를 위해 인스타 계정을 만들고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구조하신 분도 트위터로 더욱 적극적인 홍보를 해주셨다. 나도 슬슬 주말 근무에 들어가야 할 때가 되어 결국 임시 보호를 계속할 수 있는 기한을 약속하게 되었다.


 더 이상 임보할 수 없다고 선을 긋는 게 우리에겐 얼마나 큰 죄책감으로 다가왔는지 설명할 수 없다. 쏠티에게 미안하면서도 나 스스로 임시 보호를 남편에게 같이 해달라 해서 남편도 같은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 미안하고, 그러면서도 본가에 있는 고양이들에게 신경을 못 써주는 내가 싫었다. 이렇게 되니 쏠티를 데려온 게 그저 내 욕심 같았다. 구조하신 분께서도 입양처 알아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같이 출근하면 얌전히 내 책상 옆에 앉아있다가도 심심해하면 의자로 올려 같이 일했다 열심히 모니터를 쳐다보는 쏠티



 다행스럽게도 입양처가 나타났다고 연락이 왔다. 갑작스럽게 쏠티를 다시 구조하신 분에게 데려다 드려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정말 다행이지만 쏠티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저 어린 강아지였을 뿐, 내가 하는 말도 아마 못 알아들었지 싶다. 마지막 날 남편과 만나기 전 집에 도착하고 차 뒷자석에서 나를 기다리는 쏠티의 안전띠를 풀고 쓰다듬으며 말했다. 부디 알아주었으면 했다. 말로 다 하지 못하는 내 마음을.


 그날 밤 남편과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만남을 기다렸다. 쏠티를 알려준 친한 동생과 함께 쏠티랑 놀아주면서 최대한 낯설지 않도록 해주려고 했지만, 오히려 쏠티는 아무렇지 않게 잘 뛰어놀았다. 그러곤 구조하신 분이 왔을 때 쏠티는 기억하는 듯이 반가워했다. 그것 또한 다행이었다. 그렇게 한시간 여를 대화하면서 앉아있다가 우리는 쏠티가 놀라지 않도록 먼저 나왔다.


 그 이후로 입양처로 가게 된 쏠티의 소식이 전해졌다. 그 집의 막내딸 노릇을 톡톡히 한다면서 얼마나 예뻐해 주시는지 사진으로 볼 수 있었다. 매일 여러 번 산책해주시면서 배변할 수 있게 해주시고 쏠티도 금방 적응했는지 사랑을 듬뿍 받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사진으로만 눈팅하다가 남편이랑 결심하고 혹시 쏠티를 한 번 만나러 가도 되냐고 연락했더니 보호자분께서 흔쾌히 허락하셨다. 


 쏠티를 보러 가는 날, 전날 저녁에 산 간식도 챙겨서 일찍 도착해 점심을 먹으면서 기다렸다. 설레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이윽고 약속 장소에서 만나게 된 쏠티와 우리는 예상과는 많이 다른 그림이었다. 쏠티는 우릴 향해 짖었고 우리가 주는 간식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보호자 분이 말씀하시길 간식도 잘 안 먹는다고. 그렇게 우리 만남은 그저 보호자 분이 쏠티를 산책시키는 걸 뒤에서 따라가며 구경하는 정도로 끝났다. 


 아마도 쏠티가 우리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이 서운함으로 남은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날 돌아오면서 우리는 그날의 기분을 말로 공유할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해서 조심히 꺼낸 우리 감정들 중에 하나, 남편은 그게 차라리 이렇게 된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쏠티는 우리를 미워해도 지금 가족이랑은 더 행복할 테니까. 나는 아니라고도 못 했다. 


 요즘 티비에 [캐나타 체크인]이 한다면서 유튜브에도 뜨더라. 평소였으면 보겠지만 보지 않았다. 그래도 짧게 뜨는 쇼츠를 보면서 생각했다. 쏠티는 정말 우리가 미웠나보다고. 아직도 쏠티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다. 그리고 쏠티한테 사줬던 방석에 한달 후기를 작성하라는 알림에 편지도 썼다. 그래, 뭐. 상처 줘서 미안해, 쏠티야. 거기에선 꼭 행복하길 바랄게. 

 그리고 우린 그 이후로 임시 보호를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지내서 너무 좋아 계속 행복하길
쏠티를 위해 구매했던 카시트 후기글. 카시트는 쏠티와 함께 떠났지만 한달 사용기 알람이 울려 문득 후기가 아닌 편지를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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