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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현 May 02. 2023

땃쥐

작은 불씨 

  작년에 야생동물 실태조사 전문인력 양성 교육으로 설치류 포획 조사를 배운 적이 있다. 사업단에서는 현장 교육을 대비하여 미리 신증후군출혈열 예방주사를 안내하였기에 직접 포획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가 들었다. 이론 교육으로 현장에서는 어떤 설치류가 관찰되는지와 어떻게 조사하는지를 배우고 나서 더워지기 전에 전문가이신 강사님들과 함께 설치류 포획 조사를 해보았다. 사실 난 그다음 날 출근 때문에 참여하지 못해서 포획된 쥐한테서 정보를 얻고 방생하는 걸 보지 못해 아쉬웠었다. 그렇게 바쁘고 더웠던 여름이 지나 교육에서는 심화라는 이름에 걸맞게 소조로 나뉘어 직접 센서카메라 조사와 흔적 조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격자별로 설치류 조사도 하게 되었다.      


 우리 조는 소조별로 흩어져 야생 쥐가 포획될만한 장소를 골라 트랩을 설치했고, 다음 날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트랩을 확인했다. 이날은 아마 교육하는 날 중에서도 이르게 기상해서 조사지로 향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도 그날 트랩을 확인해야 했기에 서둘렀을 것이다(설치류는 대사 빠르므로 포획된 후 확인과 방생하는 작업이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더군다나 새벽에 잠시 비가 내려 걱정도 되었다.


설치류 포획 조사할 때 쓰이는 작은 트랩. 셔먼 트랩이라고 하며, 빠른 대사로 금방 지치지 않게 하도록 유인 먹이(땅콩)를 조금 넉넉히 넣어 두었다.

     

 조사지에 도착해서는 각자 흩어져 트랩을 모아 확인했고, 그 안에서 우리 조는 등줄쥐 8마리와 땃쥐 3마리를 확인했다. 아무대로 새벽에 온 비에 약간 젖은 트랩이 쥐의 체온을 떨어뜨렸는지 몸이 작은 땃쥐 한 마리가 죽은 것 같다고 했다. 그 땃쥐를 보니 배가 가끔씩 들썩이는 게, 마치 호흡하는 것 같았다. 착각인가 싶어 다시 가만히 지켜보니 숨을 쉬는 게 맞았다.      


죽은 줄 알았던 땃쥐. 홀쭉해진 배가 가끔씩 들썩였다.


 교육생들에게 말하고 마침 한 조원이 마지막 카메라를 회수하러 간 틈을 타서 땃쥐의 젖은 물기를 거즈로 닦아주고 손에 따뜻하게 안아 들었다. 얼른 조교님의 응급 가방에서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찾으며 땃쥐를 따뜻하게 보온해줬고, 동시에 조원들은 일사불란하게 땅콩을 소분해왔던 용기에 포도당을 물에 녹여 얇은 풀 가지로 땃쥐에게 먹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저 살아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땃쥐에게 포도당을 먹이는 중


 정신이 들었는지 코가 찔끔 움직이더니 이윽고 코를 요리조리 씰룩거리며 얇은 가지에 묻은 포도당액을 핥아먹었다. 정신이 들었는지 다리를 집고 내 손에서 일어나더니 그렇게 정신없이 먹던 포도당을 외면하고 손에서 나가려고 했다. 강사님은 서둘러 얼른 땅에 놓아주자며 숲 쪽으로 들어가 내려주자 하셔서 헐레벌떡 들어가 내려주었다.      


땃쥐가 포도당을 먹다가 갑자기 나오려고 했다


 내려준 곳에서 움직이나 싶더니 가만히 앉았길래 걱정되어 다시 살펴보았다. 코가 조금씩 들썩이는 게 운 좋게 죽은 벌레 앞에 내려놔져서 그 벌레를 잘근잘근 씹어먹고 있던 거였다. 그렇게 자기 코만 한 벌레를 다 먹고는 도망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는 우리의 탄성은 땃쥐에게 응원이 되었을 것이다.     


마침 내려놓은 곳 앞에 벌레를 어떻게 찾았는지 잘근잘근 먹는데에만 열중이다.


 등줄쥐 한 마리도 땃쥐를 안아 들고 있는 동안 빈사 상태인 걸 확인하고 다른 조원들이 같이 돌봐주었다. 땃쥐보다 큰 등줄쥐는 땃쥐보다 더 적극적으로 포도당 식사에 임했고, 이미 땃쥐로 한 번 연습한 우리는 조금 더 조심히 등줄쥐를 내려주었고, 먹을 힘이 있으면 먹기를 바라며 땅콩도 몇 알 내려놓았다.     


땃쥐처럼 먹이다가 발을 딛는 힘이 세서 포도당물이 있는 용액을 직접 입에 대주니 잘 핥아먹어서 경이로웠다.


 땅콩을 손에 쥐고 먹는 듯하더니 바로 우리 발 사이를 가로질러 풀숲으로 도망갔다.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으면서 우리 손에선 어쩜 그렇게 힘없이 포도당을 먹었는지 신기했다. 무엇보다도 땃쥐와 등줄쥐 둘 다 달려갔기에 너무 다행이었다. 그 이후는 이제 그들의 생명력을 믿는 수밖에 없다.     


땅콩을 먹는 듯 자리잡다가 갑자기 달려나갔다.



 그렇게 트랩을 모두 정리하고 터덜터덜 내려와서 우릴 태우러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우린 모두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예전에 다른 생명을 구했던 일 얘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소감, 안타깝게 죽어가던 생명에 관한 얘기 등등. 그때 가슴이 벅차올랐던 건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에는 더 빨리 확인해줘야겠다고 다짐도 했다. 그날은 예상하지 못했던 날씨로 생긴 문제였지만, 산에서 내려온 교육생들이 모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쥐를 살린 건 우리 조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가슴 뭉클해지던 그날은 유난히 떠들고 싶지 않았다. 생명을 살리는 뿌듯함은 크기와는 상관없는 것 같다.



(덧붙임. 땅에 떨어진 거즈 등 다 회수하고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야생동물 조사 전문가님들의 조언과 사업단의 지침 등으로 안전하게 교육했고, 포획된 대부분의 쥐들이 정상적으로 방생되었습니다. 저체온인 쥐들은 소수였고 나중에 들으니 대부분 살리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조사하는 동안 조교 동행과 장갑 착용 등 안전하게 교육에 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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