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미안함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주로 맡게 된 첫 동물이 새끼 삵이었다. 모든 동물을 다 같이 보살피고 구조와 방생도 다 같이 하는 거지만 업무를 하다 보면 각자 주된 포지션이 생겼는데 아직 초기 조직이었고, 나는 들어가자마자 사용하는 먹이 정리 및 기록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늦가을에 근무하러 급하게 들어오게 된 나는 아직 야생동물의 생태를 배우는 단계였고, 센터는 언제나 바빴다. 새끼 야생동물이 들어오는 따뜻한 철에는 본의 아니게 사람과 닿아 각인되는 경우도 있다는 걸 배우기만 했었지 실제로 그런 상황은 겪어보지 못했었다. 그 해에 새끼 삵은 5월 중으로 혼자 구조된 한 마리와 다음으로 구조된 세 마리로 총 네 마리가 접수되었다. 뽀실뽀실한 삵들은 아직 우유를 먹어야 할 정도로 어렸다. 하루에 다섯 번 정도는 체중 재고 먹이고 배변 유도하면서 닦이고 밥 준비하고를 반복했고, 그 와중에 새끼 너구리들도 들어오면서 전적으로 어린 동물을 집중해서 관리해야 하는 때를 맞이했었다.
구조되자마자 인큐베이터에서 따뜻하게 지내면서 우유를 스스로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이유식으로 넘어가니 체중이 늘면서 활동량도 많아졌다. 그때 썼던 글을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약 10년도 더 된 일인데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처음이라는 기억은 참 강렬한 것 같다. 인큐베이터에서 늘어져 자던 새끼 삵들은 몇 주 만에 풀숲을 뛰어다니며 나무도 타고 하악질도 했던 것 같다. 그중 제일 활발했던 게 삵이라고 이름 붙인 혼자 구조된 새끼 삵이었는데, 이름도 사실 붙였다기보다는 종 이름 그대로 부르다 그게 이름이 된 것.
한동안 우유를 먹으면서 이빨이 날 때를 기다렸고, 넓은 장으로 옮겨 큰 나무 둥치 두 개를 주워다 엇갈려 놓으니 거기에서 서로 뛰어다니며 사냥하는 듯한 행동도 자주 보였다. 천천히 고기를 다져 우유와 함께 이유식으로 주면서 키웠다. 나중에 구조된 세 마리중에 가장 작은 새끼 삵은 구조했을 때 이미 앞 다리 한쪽이 부러졌다가 붙어서 방생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걱정했지만 보란 듯이 불편한 다리로 먹이를 지키며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기가 주식이 되면서 새끼 삵들의 체중은 나날이 늘어갔고 점점 야생성을 보여 야외장으로 옮겼다.
그렇게 숨을 곳이 많고 사람의 기척이 드문 계류장으로 넘어가니 더 이상 우유를 먹이던 새끼 때처럼 체중을 잴 수가 없었다. 삵 특유의 경계음을 내기도 하면서 야생성을 보여주어 다행이었다. 처음 돌보게 된 야생의 새끼 포유류였던 지라 내심 각인될까 봐 불안했었다. 다리가 불편했던 가장 작은 새끼 삵도 체중이 비슷해지고 다른 삵들과 비슷하게 다리를 쓰면서 나무에 올라타 발톱을 가는 것도 능숙해졌다. 홍보를 위해 사진을 찍으러 들어갈 때면 조용히 문을 열고 한 구석에 자리 잡아 사진을 찍었던 게 생각난다. 그 이후로도 넓은 장에 있는 야생동물 사진을 찍어야 할 때면 그렇게 한다. 그러면 처음 들어올 때 경계하고는 내 움직임이 없을수록 동물들도 경계를 조금씩 내려놓아 안전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서로 같이 자랐지만, 그중에도 유난히 경계가 심한 삵이 있는가 하면 유난히 경계가 없는 삵도 있다. 같이 지내면서 사람과 멀어지면 경계가 살아날 수도 있지만 모든 걸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결국 처음에 들어온 한 마리가 그랬다. 넷 중 유난히 경계가 없어 먹이 주러 들어가는 직원에게 의심 없이 다가왔다. 수의사 선생님한테도 쉽게 다가갔고 결국 삵이는 방생 불가 판정이 내려졌다.
성장을 기다리면서 야생에서도 쉽게 적응해서 사냥할 수 있도록 먹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주었고, 날이 갈수록 새끼 삵들은 길어지고 무거워지면서 점프력도 대단해졌다. 가을이 다가올수록 방생을 기다리는 내 마음에는 작은 불안이 자리했다. 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다. 하지만 보란 듯이 세 마리 삵 모두 방생되었다. 그 중 한 마리는 예상치도 못하게 수영을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우린 놀란 것도 뒤로한 채 바로 영상을 찍고 금세 흙 사이로 사라진 삵을 어렵게 찾으면서 이렇게 보호색이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그때 안도와 함께 타고난 수영 실력을 보여주는 어린 삵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다. 이게 바로 본능인 건가.
방생으로 벅찬 마음도 얼마 가지 않아 다른 어린 동물들도 방생 순서를 밟았고, 혼자 남은 삵이는 같이 지내던 계류장을 독차지하면서 점프도 더 높아졌다.
재작년엔가, 그 센터를 그만두고 오랜 시간 후에 다시 삵이를 만날 기회가 생겼었다. 이제는 사그라는 이름으로 노년을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내가 들었던 정보는 잘못되어서 나도 언제는 닿을 수 있었던 곳이었는데 이제야 찾아와 보게 되었고, 그 사실에 안도감과 미안함이 몰려왔다. 죽었다고 들었었기에.
사그와 가까운 사이로 항상 돌봐주시던 국장님께서는 쿨하게 사그를 보여주시며 웃으셨다. 날 기억하지 못했지만 건강해 보였다. 그때 마음이 많이 정리됐던 것 같다. 가끔 센터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동물 얘기해달라는 질문을 받으면 삵이를 말하곤 했는데, 이렇게 와서 보니 형언하지 못하는 생각들로 오히려 편안해졌다.
그러고 계절이 지나서 들려온 소식에 사그가 죽었다고 한다. 이제 내 마음에 묻은 동물이 하나 더 생겼다. 이다음에 만나면 꼭 아쉬웠던 내 마음을 전해주고 싶다.
(*각인을 피하기 위해 종사자분들이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는 오해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삵이 이후로 영원히 저희와 지낼 개체가 아닌 개체에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습니다. 혹시 불편하게 읽으셨다면 설명이 서툰 저의 잘못이니 부디 에세이로만 봐주시고 불편해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