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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현 May 19. 2023

파랑새

오해와 오류



  파랑새를 얘기하면 보통 사람들은 유럽 동화에서 나오는 Blue bird를 연상한다. 오죽하면 이걸 아는 사람들은 굳이 안 물어봐도 부연 설명을 보탤 정도. 나도 어릴 적에 그림이 바래도록 읽은 동화책이 왕자 동상과 파랑새가 나오는 이야기였다. 내 기억 속 파랑새는 이제 와서 떠올려 보니 제비 같은 V자 꼬리를 가졌던 것 같다.



 어제 연구실에 앉아 열심히 레퍼런스 검색은 제쳐두고 딴짓하는 중에 헤드셋에서 나오는 음악을 뚫고 "괙괙" 소리가 나서 설마 하고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향했다. 보통은 잘 보여주지도 않던 실루엣이 맞은편 건물 옥상에서 발견됐다. '설마 까치나 물까치인가.'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부랴부랴 휴대폰 카메라로 줌 해보니 어렴풋한 라인은 까치가 아니었고 밝기를 올리니 보이는 색깔.      


저 멀리 옥상위에 앉은 파랑새


 와, 드디어 야외에서 얌전히 앉은 파랑새를 보는구나!     

 탐조가 취미이신 분들은 허허 하고 웃으시겠다. 그저 생활 속에서만 관찰하는 나한테는 대단한 일이니까.

 "괘개개개객!" 하고 우는 파랑새가 느긋하게 "괙. 괙객. ... 괙. .. 객." 하고 소리 내면서 요리조리 살피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누가 쟤를 보고 동화 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파랑새라고 생각할까.      


 우리나라에서 쟤를 보고 파랑새라고 할 때, 유럽에서는 [The blue bird] 라는 연극과 함께 그 지역에서 관찰할 수 있는 파란색 계열의 깃을 가진 새를 보며 행복을 가져다주길 기원했다. 뭐, 알고 보면 연극 내용에서도 그렇지만 행복은 깃의 빛깔과는 상관없이 어느 새든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란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교훈이 참 어렵게 시각화되었나 보다. 그것도 하필 파란색으로. 음 ... 파란색 계열의 새가 많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아예 blue bird라고 통용해서 부르는 파란색 깃을 가진 새가 존재하기도 하나 보더라. eastern bluebird나 mountain bluebird가 있다는데 내가 본 동화에는 아마 mountain bluebird 느낌이 크다. 어쩌면 indigo bunting이라는 새도 약간 그럴싸 하지만 이름에 blue가 아니라 indigo가 들어갔다. blue bunting도 왠지 그럴싸 하고, 파란 깃을 가진 jay류도 여럿 있단다. 얘네가 유럽에도 있는지 프랑스 이름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언어를 몰라서 그렇지, 이 중 누군가가 정말 그 동화의 파랑새로 영감을 줬을 수도 있다고 봐도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철새라면 더더욱 멀리 있는 행복이 올 때를 바라면서 계절성의 의미도 들어가는 이야기가 이해되니까. 알고 보면 철마다 오는 행복인건데 말이지.


 이런 오류는 다람쥐에도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오류인데 번역가가 정말로 직역(?)을 해서 생긴 오류라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서양에서는 청설모 종을 얘기하는 squirrel이 아직도 영화나 만화에서는 다람쥐로 통용된다. 실제 우리나라 다람쥐 종은 chipmunk라고 해서 둘이 같은 설치류여도 과가 다르다. 참고로 산속에서 다람쥐가 "췹!칩!" 이런 소리를 내서 그렇다고 하더란다.


 이런 오류는 우리나라 동물의 명칭보다 해외로부터 들어와서 사람들이 받아들인 동물의 어감이 차이가 커서 부각되는 듯하다. 이건 또 우리나라의 언어가 독자적인 동시에 서양 문화를 폭넓고 쉽게 받아들여 토종 문화보다 더 대중적인 인식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쪽에 전문가가 아니어서 추정으로 생각만 해봤다. 뭐 ... 어느 분야에서도 전문가가 아닌건가 ...


오묘한 빛깔의 깃털과 쨍한 부리, 검은 머리가 포스를 풍기는 파랑새. 눈은 예쁘다. 넓은 장에서 잘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없어졌다. 예쁘다고 자랑하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파랑새라고 불리는 이 새는 broad-billed roller라고 한단다. 학명도 Eurystomus orientalis 라고 해서 넓은(Eury) 입(stomus)이라고 역시 broad한 bill을 가져서 붙은 이름이다. 아마도 roller라는 표현은 날면서 사냥하기에 화려한 비행이 마치 하늘을 뒹구는 것 같아서 지어진 게 아닐까 싶다. 듣기론 화려한 비행을 하다가 큰 입을 벌려 나는 벌레들을 잡아먹는다고 들었는데 실제로는 보지 못했다. 내 눈앞에 파랑새는 직선으로 유유히 날아가기만 했다. 그 큰 입은 야생동물센터에서 자주 봤으니 넓다는 거 내가 보증한다. 쏙독새와 비슷하다. 실제로 요즘 sns에 돌아다니는 호주 새로 tawny frogmouth가 개구리입쏙독새로 번역된다. 그치만 쏙독새와 파랑새는 엄연히 다른 목에 속한다(서식 습성이 다르기도 하고 유전적 거리가 있으니 그러리라 나만 추정함).


파랑새 입 안이 저렇게 넓습니다



 그래서 파랑새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소리도 같이 나온다. 역시나 틀어보니 "깨개객개객 꽥깩객" 거린다. 나는 뭔가 개구리 울음소리가 새한테서 적응하면 저렇겠다 싶기도 하다. 깃 색은 말해 뭐하나, 파란색과 초록색이 예쁘고 검정과 조화되어서 빛 받으면 더 예쁘다. 부리가 빨개서 그렇지. 참 부리로 말하자면 얘는 잘 익은 빨간 고추색이고, 호반새라는 새 부리는 말린 빨간 고추색이다. 라고 나는 느꼈다.



잘 익은 빨간 고추색의 부리를 가진 호반새



 여튼 생각보다 쉽게 보이는 새는 아니다. 생긴 것 때문에 그놈의 동화 속 파랑새와 언제나 비교되지만 나는 안다. 파랑새의 부리 끝은 엄청나게 뾰족하고 굽어있어서 한번 물리면 그 상처는 황조롱이한테 물린 것보다 오래 간다는 걸. 그래도 난 너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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