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과 반려동물
예전에 임시 보호를 위해 센터로 서벌캣이 들어왔었다. 사바나캣이라고 해야 하나. 그 당시 이런 쪽에는 지식이 별로 없었다. 그저 막연히 야생동물이 좋아서 과를 선택해 대학을 들어온 후, 할 수 있다면 국내에 있는 국제적인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이때 우리 집에는 이미 세 마리의 고양이가 나와 몇 년째 함께 하고 있었다. 나한테 반려동물에 대한 견해를 물어본다면 다음에는 나에게 또 여건이 된다면 도움이 필요한 동물을 데려와 평생을 하고 싶다는 건데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집에 키우는 세 마리의 성격이 서로 다른 고양이를 키운 지 세월이 좀 되다 보니 이 녀석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야생동물이면서, 한 편으로는 반려동물인 이 녀석은 여기에 오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곳도 없이 이렇게 센터 한켠에 자리하게 되었다. 임시 보호이기도 하고 이런 동물이 들어올 거라고 예상도 못 했던 터라 마련된 임시 계류장은 녀석이 부족하게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삵처럼 사람 인기척이 있을 때마다 경계 행동을 보이지도 않았고 그저 언제나 가만히 있기를 택한 듯 보여서 아마도 몸이 버틸 정도의 마음속 편안은 찾은 듯했다. 적어도 사방이 열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다니는 야외에서 자길 누가 거리고 데려오고 언제 두고 갔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별의별 소음 속에서 있지는 않으니까.
아마 사바나캣이 한 2주 넘게 같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이 녀석을 무서워했고, 어떤 사람은 이 녀석을 반려동물 보듯 슬퍼했다. 둘 다 이해된다. 잠시 우리와 같이 있는 동안 녀석은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이지만 사람들 보는 눈은 참 다르다. 각자 살아온 경험 때문이겠지. 가치관도 다를 테고.
녀석은 곧 큰 기관으로 이송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직원들이 모두 신경 써주는 걸 알았는지 센터에 있는 동안 큰 문제 없이 잘 지냈다. 가끔 하악거리곤 했지만 이내 익숙해졌는지 처음엔 졸려도 버텨가며 경계하던 녀석이 빵자세를 하고 눈 감은 모습도 보여주었다.
녀석이 지낼 곳으로 이송되고 나서 이듬해에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다. 훨씬 좋은 공간에서 지내고 있었지만 살갑지 않은 성격은 여전해 보였다. 동물들 생각을 알 수가 없으니 참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믿을 수 있는 곳에서 보호해준다는 게 참 듬직했다. 저 녀석은 날 기억 못할 테지만 적어도 난 세상에서 너라는 종을 본 게 너 하나뿐이니까 너로만 기억하지 싶다.
이 녀석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2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이 복잡하다. 야생동물로 강의할 때마다 꼭 듣게 되는 질문이 있었다. 삵과 길고양이가 교배를 할 수 있지 않냐는 질문. 비록 아직 영글지 않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자연적으로는 어려울 거라고 답한다. 가끔은 일부 사람들이 삵의 시선이나 고양이의 시선이 아닌 다른 어떤 시선으로 그들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뭐, 어려운 개념이라서 민감할 수도 있다.
이 글로 서벌과 사바나캣을 설명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나는 단지 이 녀석이 앞으로 지낼 삶을 응원하고자 한다.
부디 사는 동안 부족함 없이 지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