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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현 Jun 21. 2023

수라

아름다움을 본 죄

  

  보통 [야생동물과 대화할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다들 [다시는 보지 말자]라고 하지만 나는 달랐다. 지난 촬영 중에 인터뷰와 함께 PD님이 물어본 질문이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컷트는 편집되어 방송되지 않았다. 불행이라면 내가 나오지 않았다는 거겠지만, 나는 찌질하게 훌쩍거리며 찍었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4월, 인천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 원래는 이사로 정신없었을 상황이었는데, 마침 짬이 나서 급하게 영화 시사회를 다녀왔었다. 이리저리 바쁜 스케줄 탓에 못 챙기리라 예상했는데 하필 그날 아침 눈은 빨리 떠졌고, 남편도 흔쾌히 오케이 하고, 시사회 관계자마저 당일 예매를 받아주셔서 부랴부랴 입장할 수 있었다.

재단법인 EAAFP와 저어새 생태학습관이 같이 주최한 수라 특별 시사회



 대단한 배경지식은 없었다. 그저 sns로 접했던 남의 세상 이야기. 어떻게 보면 공부를 위한 관심일 수도 있고,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 내다보려고 한 것일 수도 있다. 뭐, 공부가 제일 큰 것 같다(하.. 공부 정말 하기 싫다). 그저 학문적으로 아는 우리나라의 갯벌과 상식 정도로 아는 개발 이야기들. 점점 나이가 들면서 무뎌진 거일 수도 있고, 와닿지 않기에 체감하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를 본다고 어떻게 스크린 앞에까지 가게 되었다. 나름 노력한 행동인데 굳이 비교하자면 난 생색도 못 내는 수준의 행동이다.


영화 시작 전의 이미지가 정말 귀여웠다


 영화 내용을 서술하지는 못하겠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영화를 본 지 두 달이 넘은 시점이고, 동시에 오늘 개봉하는 날이네? 어떻게 이렇게 타이밍이 맞는지. 전혀 의도하지 않았고 글 쓰려고 모아둔 메모들 안에서 골라 쓴 건데. 뭐지. 계시인가. 어쨌든, 내용은 찾아보시길 바란다(추천합니다). 다만 나오는 대사가 하나 있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을 수도 있다. 시사회 후 이 대사와 관련한 코멘트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그 대사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무기력하게 잃어가는 자연 앞에서 “아름다움을 본 죄”라고 표현하며 자책을 했다. 


 영화 속에서는 화자들이 딱히 눈물을 보이지도 않는다. 헌데 분명 표현은 꽤 날카롭다. 표정은 참 부드러운 것 같은데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뭉특허니 삼켜지지도 토해내지도 않는다는 걸 눈빛으로, 그리고 말로 표현한다. 더 이상 행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아서 깎이고 깎여졌는데도 포기가 안 되는 지금을 그들은 “아름다움을 본 죄”라고 설명하는 것 같았다. 참 인상적이었다.     


 약간 다른 얘기지만 요즘 나는 죄책감과 자책감 사이에서 내 마음을 정의 내리지 못하고 있다. 열심히 자책하지만 그건 타고났고, 죄는 안 저질렀는데 마치 이게 죄책감과 같이 무겁고 진득하다. 말하자면 가슴 중앙에 이 마음을 훌렁 빼다가 포근한 햇볕에 말려 가볍게 만들고 싶은 마음?     


 다시 후기로 돌아가서,

 그들을 우리가 봐서 그게 죄라면, 그 미안하다면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을 가진 걸로 우린 이미 죄인이었던 걸까. 최선을 다하지 못한 거라면, 그러면 그게 나의 죄였을까.



영화 관람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황윤감독님이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시는 중


 영화를 보고 난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난 기어코 행동을 하고 말았다. 아니 표현을 하고야 말았다. 가만히 있었으면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는데, 뭐가 얹혔는지 그럼에도 우리 다 아름답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스크린 속 세월이 영근 얼굴을 한 분에게 꼭 전달하고 싶었지만,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그 안에 있지 않으면 모르는 일들이 많다. 그래서 더 죄라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이제라도 돌이킬 방법은 있다고 난 생각하기에, 그래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죄가 아니라, 그마저도 의미 있는 삶이다. 나는 여태 그 의미 있는 삶을 모르고 살았던 것이지.     



 유튜브에서 본 어느 선생님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나 하나가 이렇게 행동한다고 해서 지금 변하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저 돌을 하나 놓는 것이라고. 언젠가 그 돌들이 모두 모여 거대한 의미를 만들어내면 그때 난 같이 행동했다는 그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이제라도 그 아름다움을 본 죄에 대하여 알게 된 나 또한 하나의 파동이 되고자 이렇게 글을 쓴다.     






 나에게 물어보는 [야생동물과 대화할 수 있다면]에 대한 나의 답변은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그동안 잘해준 게 맞는지, 괜찮았는지 듣고 싶다고 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뭐가 그렇게 찡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어쩌면 죄를 많이 지었던 것 같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거라면, 그러면 그게 나의 죄였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야생동물의 뒷모습으로 기억된다.


 미련 두지 말라고.

 언제나 항상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서로를 보듬고 아름답게 바라봐주자고.

 우리는 그래도 살아볼 테니 너희는 그대로 우릴 아름답게 봐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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