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글을 시작으로 동물을 관찰하며 느낀 것들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야생동물에 대한 책을 감수할 기회가 생겨 작가님과 얘길 나누고서 기회가 되어 기고하게 된 글인데 아무래도 제일 먼저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일화여서 택한 새끼 까치들 이야기
야생동물센터에서 일하다 보면 강의를 하게 되는 기회가 생기는데 그런 자리에서 만난 분들이 묻는 단골 질문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동물이 있었느냐고. 사실 야생동물센터가 구조와 치료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니 가슴에 품은 동물을 일일이 다 말할 수도 없고 우선순위를 정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나는 그때그때 잠깐 고심해보고 생각나는 동물을 얘기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에 무슨 주제로 글을 쓸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더 이상 글을 쓸 수 있는 타이밍을 잡기 어렵겠다 싶어서 컴퓨터를 켜서 잠시 고민을 해보니 떠오르는 건 까치였다.
우리나라에 까치는 참 많다. 특히 우리 센터에는 유독 올해에 어린 까치가 많이 들어왔었다. 센터에서의 까치는 다치거나 갇혀서라기보다는 어릴 때 이소 중에 구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그런 까치를 잘 먹이고 잘 크게 도와줘서 다시 바깥에서 훨훨 날아다니며 살 수 있도록 돕는 게 일인데 부모 까치의 가르침 없이 살아가는 법을 깨우치는 건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어린 동물이 많이 들어오는 늦봄에서 여름의 이 시기 센터에는 같은 종의 다른 개체를 여럿 합사하는 일이 잦다. 공간의 한계와 그들만의 사회화 등 여러 이유가 있는데 까치나 까마귀 같은 동물은 같이 두면 스스로 먹이 먹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언젠가 어린 까치가 또 여럿 들어와서 따뜻한 인큐베이터에 있었던 적이 있다. 그중 두 마리가 한 번에 구조되어서 인큐베이터에 뒀는데 이삼일 후 비슷한 크기의 또 다른 까치가 접수되어 그 두 마리와 같이 지내게 했다. 후에 들어온 까치는 약간 탈진한 듯이 기력 없이 인큐베이터의 문 가까이에 서 있었고 다른 두 마리는 인큐베이터 생활에 적응해 눈이 감기면서 입을 벌리거나 날개를 늘어뜨리는 둥 너무 새 같지 않게(?), 편하게 지내고 있었다.
바쁘게 이 일 저 일 하다 보면 그런 모습을 다 잡지 못하지만 그 장면을 본 날 하필 나는 혼자였고 눈을 돌렸더니 입원실 복도 너머 인큐베이터 안에서 까치들은 내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먼저 들어온 까치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까치의 옆에 서 있었고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까치는 자기 날개에 뭐가 묻었는지 연신 부리로 깃털을 정리해보려고 노력 중이었다. 말하자면 사람의 어깨 쯤 부위라고 하면 다들 그곳이 부리로 정리하기에 얼마나 어려운 부위인지 이해하실 터. 사람이라면 아마 진작에 승모근에 담 와서 포기했을 곳.. 아차 사람은 손이 있었다는 걸 깜박했다.
여튼 그 어려운 부위의 깃털을 부리로 정리해보려던 까치도 잘 안되는지 그 모습을 발견한 내가 뭔가 싶어 도와주려고 발걸음을 돌리던 찰나, 그 옆에 서 있던 먼저 들어온 까치 한 마리가 부리로 살짝 살짝 닿이게끔 그 부분의 깃을 잡았다 떼주기 시작했다. 아마 그 까치도 계속 그 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행동은 점점 과감해지더니 자기가 그 깃털에 묻은 무언가를 떼 보이겠다는 듯이 열중했다. 그걸 보니 알게 됐다. 그 부분에 아주 작은 끈끈이 같은 게 묻어있었는지 아주 작은 덮깃이 몇 개 붙어있었고, 까치는 그걸 떼고 싶었으나 떼기 힘든 부위였으며, 그걸 본 다른 까치가 떼주려고 도와준 셈.
결론은 그 둘이서도 해결이 되지 않았고, 그래서 내가 그 까치의 깃털이 떨어지도록 해주었다. 끈끈이는 아주 미세했으며, 이 까치는 끈끈이가 묻어 들어온 게 아니었음에도 하필 거기에만 아주 미세하게 묻어있었고 그게 신경이 쓰였나 보다. 비록 그 광경을 찍어놓진 못했지만 그걸 본 나는 까치들도 서로 돕고 산다는 생각에 정말 큰 발견을 한 것 같이 부풀었었다.
아주 어릴 때 읽은 책 중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짧은 동화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 동화 속 사회는 조용하고 따뜻했으며 조건은 필요하지 않았다. 마치 촛불 하나 킨 걸로 온 집이 따뜻한 노란색으로 물들어 바깥의 칼바람에 살이 에려도 뭐든 품어줄 수 있다늣 듯한 느낌만 남아있다. 책과 현실은 많이 다르겠지만 가끔은 현실이 책보다도 더한 서사를 쓰기도 한다. 그런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끔 서로가 따뜻한 동화 같은 손을 건네주면 참 좋을 것 같다
야생동물을 다루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특히 동물이 서로를 챙기는 모습과 마치 사람처럼 느껴지는 눈빛을 보고 이렇게 글을 써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유는 뭘까.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기억하기만 해도 사랑스러운데 읽으면서 상상해봐도 작은 행복이 되지 않을까 싶다.